산업별 노조(산별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부·지회는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일 뿐 독립된 노조가 아니어서 조직형태를 전환할 권리가 없다는 기존 노동법 해석을 뒤집은 것이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별노조 중심으로 진행된 노동운동에 일대 변화가 예상되면서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기업노조로 전환한 총회의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발레오전장 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경북 경주 자동차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노조는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가 2010년 6월 조합원 총회를 열어 기업노조인 발레오전장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노사분규로 직장폐쇄가 장기화되자 금속노조의 강경투쟁에 반발한 조합원들이 조직형태를 주도했다. 총회에는 조합원 601명 중 550명이 참석해 97.5%(536명)가 기업노조 전환에 찬성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금속노조 산하 지회장 등은 금속노조 규약상 총회를 통한 집단탈퇴가 금지돼 있고 기존 노동법 해석을 뒤집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발레오만도 지회 규칙상 금속노조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없고 임금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도 금속노조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독립된 노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금속노조를 비롯한 산별노조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는 노조 자주성과 강력한 교섭력 등을 위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활발히 설립됐다.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 80%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이윤경 교육선전국장은 "노동운동의 역사는 산별노조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번 판결은 악의적으로 법 해석을 변경해 그동안 노조가 일군 결과물을 무위로 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진영 권용휘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