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서관(西館)이라 불리던, 용두산 서쪽에 있는 일본인거류지 전경. 솔숲이 우거진 곳이 지금의 국제시장 부근이다. (T.Priy 2대 부산해관장 촬영)

- 日정부 금지령에도 바다 건너
- 남녀가 함께 목욕 '탕집' 운영

개항 이후 부산을 찾아온 많은 외국인은 바닷가 인근에 펼쳐진 도심을 보고 '왜색의 도시'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밤새워 일본 나가사키에서 증기선을 타고 미지의 나라로 달려왔지만, 부산은 일본과 다름없는 형태의 도시였다. 용두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일본인 전관거류지역은 이들에게 의아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대마도인들이 선점한 초량왜관이 자리한 곳으로서 '부산 속의 일본'을 싹틔운 중심공간이었다. 이 땅에 병원· 전기·수도·우편·전신 등 근대개화시설이 일찍이 상륙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에 일본문화도 하나둘 건너와 접목됐는데, 그 중 하나가 목욕문화였다.

일본은 덥고 습한 섬나라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고 쉽게 체력이 소모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일본인들은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목욕을 통해 피로를 풀고 원기를 찾곤 했다. 에도시대 이후 열도 곳곳에 지금의 사우나 방식의 후로(風呂)와 목욕탕의 원조인 유(湯), 즉 '탕집'이 생겨나면서 대중목욕시설이 서서히 갖춰져 나갔다. 당시 공중목욕탕은 상반신은 뜨거운 증기로 데우고 허리 아래는 뜨거운 욕조에 담그는 형태였다. 여기에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혼탕이 유행했다.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갔던 신유한은 여정 견문을 '해유록'에 남겼는데 그 부록 편인 '문견잡록'에 일본의 풍습을 언급하면서 "집집마다 반드시 목욕탕의 설비가 있는데, 남녀가 함께 벗고 목욕을 한다"며 음탕하고 더러운 행실이라고 악평을 했다.

혼탕문화에 대한 이런 부정적 시각은 서구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을 개항시킨 미국 페리 제독도 이들의 혼탕문화를 접하고서 큰 충격에 빠졌던 모양이다. 그는 귀국 후에 쓴 '일본원정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앞선 일본국민인 줄 알았더니 혼욕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혹평을 가했다.

이 견해를 전해 들은 메이지정부는 1858년에 혼욕금지령을 발포하고 변화를 모색했지만, 지방 온천지 등에서의 혼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자 혼욕문화는 바다 건너 일본인거류지가 있는 부산에 뿌리를 내렸다. '탕집'에 대해 1880년 일본영사관에서는 나체풍습으로 인해 조선인으로부터 경멸을 사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우연히 목욕을 한답시고 이곳에 들러 재미를 본 사람은 1887년 부산항감리서에서 감리서기로 근무하던 민건호였다. 그는 정초에 고향을 못간 동료와 함께 찾았던 곳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탕집'이었다. 그의 일기 '해은일록'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관의 욕실에서 목욕했다. 일본 여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옷을 벗고 함께 목욕하니 대단히 해괴한 풍속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법으로 보면 상심할 것은 아니다." 당시는 조선에 유교사상이 만연할 때다. 그런 시기였으니 어떻게 문화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으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민건호가 개항장의 글로벌맨답게 일본의 혼욕문화를 수긍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