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국회도서관 분관을 안겨준 정의화 국회의장은 "정치문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인간만사(人間萬事)라 한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색깔이 있다. 색깔은 다양성과 공존의 질료다. 색깔이 때깔을 내면 아름답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길을 여는 사람, 자신의 꿈과 열정을 불태우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사람, 끝없이 상상하고 도전하고 창조하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그들이 있음에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 제대로된 독서가 세상을 바꾼다

- 부산 지식지형도 달라질 기회로

# 입지 변경·사업비 축소 아쉽지만

- 무산 위기에 직면…대승적 결정

# 영남당·호남당으론 희망 없다

- 4월내 새로운 정치결사체 발족

# 끝까지 부산 지킬 사람 키워야

- 중앙 예속 아닌 자체 비전 절실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돌린다고 한다. 굴은 고향이요 안식처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왜 아니랴. 대한민국의 국회 수장은 임기 두어 달을 남기고 고향을 향해 미쁜 선물 하나를 안겼다. 국회도서관 분관(자료보존관)이다.

지난달 28일 부산을 찾은 정의화 국회의장은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도서관 분관 문제가 해결돼 도장을 찍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도서관 분관 성공적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석했다. 협약식 때문에 부산에 온 건 아니었다. 막내아들 결혼식이 있어 내려왔던 참에 짬을 내 시청을 들른 것이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쓴다는 대한민국 국회의장, 그가 낸 짬의 짬을 얻어 부산시청 옆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달 28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도서관 분관 업무협약식. 왼쪽부터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정의화 국회의장, 서병수 부산시장.

#고향에 안긴 선물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국회도서관 분관을 가져온 때문이겠지요.

"신경 써온 것이 성사 되었으니 일단 기쁘죠. 부산의 바람도 컸고 여러 사람들이 도와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평소에 책과 독서에 대한 남다른 지론이 있었다는데요.

"독서가 세상을 바꿉니다.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독서죠.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도 독서라고 봅니다. 그런데 어디서 독서를 하나요. 명색이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에 변변한 도서관이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국회도서관 분관과 부산대표 도서관이 들어서면 부산의 도서관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걸로 봅니다."

-막판에 사업이 자칫 떠내려갈 뻔한 상황도 있었잖습니까.

"원래는 접근성과 상징성을 내세워 부산시민공원에 세우기로 했죠. 그렇게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와도 조율이 되었고요. 그런데 부산시가 서부산권 균형발전과 향후 확장성을 들어 강서구 명지신도시를 고집하는 거예요. 타당성을 따져 예산이 반영된 터라 입지 변경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의장님이 대승적 양보를 한 거군요.

"막판 초읽기에 몰려 내가 돌을 거뒀다고 할까요. 4·13 총선이 다가오고 제 임기도 거의 다 됐잖아요. 입지 선정이 3월 내로 결정되지 않으면, 조사용역 및 설계비 명목으로 확보한 국비 24억5000만 원이 불용처리될 수도 있다고 하고, 사업 자체가 무산될 것 같았어요."

-당초 계획보다 규모가 줄어들어 아쉽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확정된 사업비는 397억 원이며 전액 국회에서 부담합니다. 사업비 500억 원이 넘으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는 등 추진이 복잡해져요. 요즘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더군요. 작으면서도 내실 있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회도서관 분관이 들어서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부산 분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라키비움(Larchiveum) 형태입니다. 일종의 통합형 문화공간인 거죠. 부산을 지식 허브로 만드는 견인차가 될 겁니다."

-이제 공은 부산시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부산시에서 원하는 장소로 갔으니 애정과 관심을 갖고 역할을 다해줘야 합니다. 외형보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부산시와 지역의 대학, 시민사회가 합심해 명품 도서관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거침없는 정치 하이킥

-최근 의장님의 거침없는 '정치 하이킥'이 화제입니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아주 나쁜 사천(私薦)', '정당민주주의 파괴'라고까지 비판했습니다.

"문제있는 걸 문제있다고 지적했을 뿐입니다. 새누리당은 공천이란 이름으로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렸어요. 이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면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겠다고 하셨지요?

"새로운 정치 질서가 필요합니다.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4월말께 모임을 발족할 계획입니다. 언제까지 영남당, 호남당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까? 공천 혁신과 분권형 개헌, 시민 민주교육 등 해결해야 할 정치 사회적 과제가 수두룩합니다."

-모임은 사단법인 형태가 되나요?

"독일의 한스자이델재단이나 미국의 민주화기금(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같은 형태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정치문화 발전과 사회교육, 국제교류를 꾀하는 단체들이죠. 그쪽과 적극 네트워크화 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부산만의 희망 전략

-오는 5월 29일 국회의장을 공식 퇴임한다지요. 퇴임 후 구상은요?

"기본적으로는 신경외과 의사(봉생병원) 정의화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부산시민 덕분에 국회의원 5선 고지에 올랐고, 운이 좋아 국회의장까지 맡았습니다. 여기서 무슨 욕심을 더 내겠습니까.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정치문화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최근 강성 발언들이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확대해석은 하지 마세요.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있습니다. 차기 대권 주자보다 내겐 정치 과제를 풀고 대안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본 부산은 어떤 모습입니까?

"서울에서는 7대 광역시의 하나, 즉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봐요. 존재감이 크게 없지요. 부산출신 서울사람은 많은데, 진짜 부산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부산 출신으로 끝까지 부산을 지키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산은 부산에 대한, 부산을 위한 자체 비전과 뚜렷한 발전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중앙에 예속된 부산으로는 희망을 갖기 어렵습니다."


◇ 핸드폰 번호 밝힌 '거침없는 명함'

■ 인터뷰 언저리

명함(사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장 정의화'라 적혀 있다. 간결함의 무게감이 다가왔다. 이름 아래 사무실 번호가 아닌 핸드폰 번호를 노출한 것은 의외다. 누구든 전화하라?

그동안 그는 국회 수장으로서 저항도 하고, 중재도 하고, 할 말도 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영호남 화합 전도사' '건강한 보수' '합리적 뚝심의 소유자'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여의도 이단아'란 별칭도 붙어 있다. 청와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통렬하게 꼬집으며 새로운 정치질서가 필요하다고 일갈한 대목에선 속시원함, 후련함 같은 게 전해졌다.

그의 관운은 보기에 따라 롤러코스터다. 부산시장 경선에서 떨어졌고 당 최고위원도 안됐다. 그런데 국회의장이 되었고 대권 앞에까지 서 있다. 정 의장은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문화 마인드가 있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국회도서관 분관 유치도 그렇지만, 2000년초 국립부산국악원을 가져올 때 예결특위 계수조정 소위에서 처음 예산을 배정한 것도 그였다. 초기 조선통신사 사업을 지원했고, 개인 사진전을 열 정도로 사진도 잘 찍는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곧 국회의장 직에서 물러나지만, 그는 여전히 할 일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대망을 꿈꾸는 바로 지금이 그의 전성기가 아닐는지. 바야흐로 형형색색 봄꽃이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