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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장의 재발견] 조선 대표 청백리 이안눌은 송덕비마저도 가장 얇고 낮았다

이야기 공작소-동래온천장의 재발견 <2> 금강공원 동래부사 송덕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6-19 18:53:3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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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임기간 업적·선행 기린 빗돌
- 금강공원·동래향교·동헌 등
- 부산 곳곳에 그 흔적 남아있어

- 어떤이는 이름만 달랑 적고
- 또 다른 이는 뒷면에 산문 새겨
- 높낮이·두께·장식·글 형식 등
- 부사 스타일따라 모양도 제각각

- 눈에 계속 밟히는 부서진 비석
-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 얼마나 지엄한 일인지 깨닫게 해

동래부사는 조선시대 부산시장이었다. 힘은 시장보다 셌다.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과 외교권, 병권까지 쥐었다. 품계도 다른 지역 부사보다 높았다. 다른 지역은 종3품이 부사를 맡았지만 동래는 한 품계 높은 정3품이 맡았다. 정3품 중에서도 통정대부 당상관이 맡았다.

   
그림 =서상균 기자
당상관과 당하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전회의가 열리면 당상관은 당상에 앉았고 당하관은 당하에 섰다. 당상관은 정책 입안자였고 당하관은 실무자였다.

당상관이 왔다는 건 동래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방증이다. 임지로 떠나기 전 임금과 대면하는 영광을 누리는 동래부사 양손에는 당근과 채찍이 주어졌다. 망아지는 왜, 곧 일본이었다. 동래는 외교와 국방의 최일선이었고 그 대상이 일본이었다. 조선에게 일본은 불가근불가원이었다. 가까이 두지도 못하고 멀리 내치지도 못했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으르며 대일관계를 조정하는 게 동래부사에게 주어진 특명이었다.



#임진왜란 때 송덕비 대거 유실

   
동래 온천장의 금강공원 내에 옮겨져 있는 동래부사 선정비들.
동래부사는 모두 256명이었다. 동래부사 송덕비는 재임 기간 업적이나 선행을 기린 빗돌이다. 256명 모두가 송덕비를 세웠다는 기록은 없지만 송덕비를 세우고 싶은 욕망은 동래부사 누구라도 품었을 것이다. 지금 남은 송덕비는 부사 수보다 턱없이 적다. 금강공원에 20기 정도가 남아 가장 많고 동래향교에 11기, 동래부 동헌에 4기가 있다. 수영 민락동 옛길, 부산진구 가야공원과 정묘사 등지에 산발적으로 몇 남아 있다.

동래부사 송덕비가 적은 건 이유가 있다. 임진왜란 전란의 여파가 가장 컸다. 왜적 수중에 들어간 동래는 온통 불바다였고 피바다였다. 부수고 태울 수 있는 건 죄 부수고 태웠으며 피 흘리는 건 죄 도륙했다. 그래서 부산에는 임진왜란 이전 목조건물이 하나도 없다. 조선 관리의 덕을 기리는 송덕비 역시 온전할 리 없었다.

송덕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또 수난을 겪었다. 일제가 지배하는 세상에 조선 관리의 송덕비라니! 부수었고 매장했고 수장했다. 목 좋은 자리에서 변두리로 밀어내기도 했다. 정교하고 아름다워 일본으로 빼돌린 보물급 송덕비는 왜 없을 것인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의 비석은 또 한 차례 수난을 겪는다. 피난민들 집터 초석으로 쓰였고 길거리에 굴러다녔다.

금강공원 동래부사 송덕비는 몇 기라고 단정하기가 모호하다. 건립 시점에 따라 다르고 보존 상태에 따라 다르다. 금강공원 송덕비는 모두 22기. 건립 시점을 100년쯤 전으로 보면 20기가 되고 그중에서 절반만 남은 채 드러누운 비석을 빼면 19기가 된다. 외따로 떨어진 곳에 지 씨 일문에서 1988년 세운 지석영 송덕비와 절반만 남은 채 드러누운 박내정 송덕비를 빼고 100년은 되지 않았지만 오제봉 선생이 비문을 쓴 이홍만 부사비를 포함하면 금강공원 동래부사 송덕비는 모두 20기가 된다.

20기는 임진동래의총 경내에 있다. 임진동래의총은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의로운 이들을 모신 무덤. '오호 차육총'으로 시작하는 비문은 냉가슴을 뜨겁게 한다. 동래부사 정언섭이 쓴 의총 비문은 비분강개를 불러일으키는 명문장이다. 동래부사 송덕비를 보러 의총에 가게 되면 높다란 봉분 의총에 반드시 참배하고 비문 앞에 서서 묵례하길 권한다.



#금강공원에 옮겨진 송덕비 20기

   
선정비를 자세히 보면 화려한 문양(왼쪽)을 찾을 수 있고, 이 가운데는 깨진 비석(오른쪽)도 있다.
동래부사 송덕비 20기는 의총 외삼문 오른쪽에 서 있다. 비석 생긴 것은 들쭉날쭉 삐쭉빼쭉 제각각이다. 높거나 낮고, 두껍거나 얇고, 지붕이 있거나 없는 비석 20기가 저마다 '나는 이렇게 살았소' 인생 역정을 들려준다. 의총 기다란 담벼락 너머 절에선 '알아들었소, 알아들었소' 화답하듯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송덕비 20기는 다시 나뉜다. 개석이 있는 비석이 17기고 없는 비석이 3기다. 개석은 비석 지붕이다. 참고로 비석 몸통은 비신이라 그러고 비석 받침돌은 대석이라 그런다. 개석도 멋지고 대석도 멋진 비석을 귀부이수라 하고 개석도 없고 대석도 그저 그런 비석을 방부원수라 한다. 벼슬이 높으면 귀부이수, 낮거나 없으면 방부원수 비석을 썼지만 후대로 오면서 구별이 없어졌다. 고관대작이면서 방부원수를 쓰면 귀해 보였다.

20기 가운데는 부사 비석이 아닌 게 하나 있다. 현명운 부윤 송덕비가 그것이다. 구한말은 격변의 시대였다. 대외관계가 중국과 일본 일변도에서 열강으로 확산했다. 내부적으론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 내면은 갈등과 땜질 봉합의 연속이었다. 지방 행정체계는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었다. 과도기였다. 조선 8도가 23부가 되었다가 다시 13도로 되는가 하면 부사가 관찰사가 되었다가 군수로 되었다가 부윤이 된다. 부윤은 다시 시장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금강공원 동래부윤 현명운 송덕비는 구한말 격변을 상징한다.

20기 송덕비 주인공은 누굴까. 무슨 업적을 남기고 무슨 덕을 쌓았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청백리가 있고 수능시험에 출제되는 시를 쓴 시인이 있고 한국 관세청 창시자가 있다. 어떤 송덕비는 이름만 새긴 반면 어떤 송덕비는 이름 양옆에 시를 새겼고 어떤 송덕비는 비석 뒷면에 산문을 새겼다. 비석 앞면을 비양이라 하고 뒷면을 비음이라 한다. 비음에 새긴 글은 음기라 한다. 비석에 새긴 시는 명(銘), 산문은 서(序)라 한다.

비석 주인공 대부분은 영전을 거듭했다. 동래부사 이후 승승장구해 중앙정부 요직을 꿰찼다. 그런데 비석 생긴 것만큼이나 재임 기간도 들쭉날쭉 삐쭉빼쭉 제각각이다. 7개월이 있는가 하면 3년이 있다. 동래부사 정식 임기는 900일. 2년 6개월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동래부사 맡기를 꺼렸다.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서 꺼렸고 왜와 말썽이 잦은 변경이라서 꺼렸다. 동래부사를 맡더라도 이 핑계 저 핑계 임기를 채우지 않았다. 핑계는 주로 병이거나 집안일이었다. 동래부사 256명 가운데 임기를 꽉 채운 부사는 20명이 될까 말까다.



#송덕비가 전하는 지역사

송덕비 내용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세금 감면과 악습 폐지, 식량 방출, 경작지 확충, 국경 강화 등이다. 그러한 공덕을 비양에 명으로 새기거나 비음에 서로 새겼다. 성수묵 부사 송덕비는 음기 한자가 빽빽하다. 세우는 데 수고한 사람과 세운 날짜를 빼고 본문만 120자다. 120자 본문은 여섯 가지 선정을 조목조목 소개한다. 창고 열어 백성 먹여 살린 것, 둔전 설치, 좌수영 무관시험을 동래읍에서 주관한 것, 부산진 급료 배당 해결, 어민들 어로 비용 해결, 무너진 성채 보수가 그 여섯 가지다.

'간역당률'도 성수묵 부사 업적이다. 송덕비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당시로선 사회적 반향이 컸다. 간역당률(奸譯當律)은 요즘으로 치면 특별법이었다. 간사한 통역관을 다스리는 법률로 풀이하면 되겠다. 조선과 대마도 도주는 외교문서를 주고받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통역관 임의로 글자를 바꾸거나 문장을 다르게 써서 조정을 우롱하는 경우가 잦았다. 의금부는 성 부사 건의를 받아들여 특별법을 제정, 비행 통역관을 엄히 다스리고 유배시켰다.

임의백 송덕비는 개석이 정교하고 섬세하다. 용 두 마리가 마주 보며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늘을 건드리면 여의주를 내뱉고선 건드린 손모가지를 깨물 것 같다. 쌍용을 떠받친 구름은 여기가 천상임을 알린다. 임의백은 동래부사로 있으면서 동래부를 금정산으로 옮기고 산성을 견고하게 쌓자고 조정에 건의했다. 일본 정치와 해선(海船)의 실태를 파악하고서 그에 대한 대비책이 동래부 이전이었다.

가장 낮고 가장 얇은 비석은 이안눌 부사 송덕비다. 이안눌은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였다. 특이한 건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청백리로 녹선됐다는 것. 살아생전 검소한 삶이 알려지는 것조차 꺼렸다는 의미다. 그래도 소문은 퍼지기 마련. 소문이 돌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수령직을 맡아 일하면서 어찌 허물됨이 없었겠는가. 다만 부인이 집안을 다스릴 줄 몰라 나의 의복이나 음식, 거처 등이 다른 사람들처럼 좋지 못했을 뿐인데 나를 보는 사람이 잘 보지 못하고 나를 청백리라고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 부사 송덕비가 낮고 얇은 건 청백리 삶과 무관하지 않다.

이안눌은 시인이기도 했다. 동래부사로 있을 때 임란의 참상을 노래한 '동래맹하유감'과 금정산 범어사 시를 비롯해 4천 수가 넘는 시를 남겼다. 이태백에 비유된다. 시라 하면 조존성 부사도 뒤지지 않는다. 그가 쓴 '호아곡' 시조 연작은 수능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면 달달 외워야 한다. 그게 무슨 시냐고? 호아곡 연작 한 편인 '서산채미'를 읽으면 대개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야, 구럭 망태 거두어라 서산에 해 걸렸다. 밤 지난 고사리 아마 아니 늙엇시랴. 이 몸이 푸새 아니면 조석 어이 지내리.'



#송덕비를 보는 다의적 시선

오한원 송덕비도 눈여겨봐야 한다. 동래부사 임기 900일을 채운 이도 드문데 그는 1,000일 넘게 재임했다. 대역사를 맡았던 까닭이다. 폐허가 된 금정산성을 다시 쌓는 대역사가 오 부사 진두지휘로 1807년부터 시작되었다. 임금은 오 부사가 시작한 일 오 부사가 마무리하라고 임기를 연장했다. 오 부사가 산성을 다시 짓는 과정은 장전동 금정산성 부설비에 상세히 나온다. 오한원은 1814년 의주부윤으로 있으면서 관세청을 창설했다. 무역품에 세금을 부과해 공경비로 썼다. 이후 홍삼 무역규모가 커지고 세입이 증가하면서 관세청은 효자 관청으로 등극했다. 한국 관세청 창설자가 오한원인 셈이다.

조태동 송덕비는 제액 양옆에 시를 새겼다. 제액은 비석 제목을 말한다. 제목은 통상 비석 중앙에 세로로 쓰거나 상단에 가로로 쓴다. 세로 제액을 종액이라 하고 가로 제액을 횡액이라 한다. 조 부사 송덕비에 새긴 시 마지막 구절은 '기영천억(基永天億)'이다. 공덕이 천억 년을 간다는 뜻으로 세금 감면과 학문 부흥 공덕을 기린다. 비석엔 언급되지 않지만 금정산성을 쌓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정산성 부설비에 언급된 '금정산성은 계미년(숙종 29년, 1703) 처음 창건된다(계미 시창산성, 癸未 始創山城)'의 주인공이 조태동이다. 동래부사 이후 요직을 거쳐 숙종 28년 10월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서는 한 달 뒤 '동래는 바다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이고 해적이 침입하는 첫 길목인데도 작은 성조차 없어 방비가 매우 허술하다'며 금정산성 쌓을 것을 건의하여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송덕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의적이다.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닦달해 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탐관의 강요로 세운 송덕비는 왜 없을 것인가. 물론 모든 송덕비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악정을 일삼은 자의 송덕비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선정을 베푼 자의 송덕비만 우리 곁에 남았다고 믿자. 그렇긴 해도 금강공원 송덕비는 온전한 비석보다 부서진 비석이 눈에 오래 밟힌다. 부서진 비석은 이름 남기는 일이 얼마나 지엄한지 새삼 돌아보게 하며 이름 남기는 일에 연연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절 목탁소리는 담벼락을 연이어 넘어온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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