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후반기 광복동서 활보
- 세관원 영국제 제복 입고 출퇴근
- 밀수꾼도 밀수품으로 맞춰 착용

해방 이후 한 시대를 풍미하던 마카오신사가 한국전쟁 후반기에 부산의 최고 번화가인 광복동을 활보하고 다녔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여성들이 입술과 손톱을 빨갛게 칠하고 화려한 옷에 '삐딱구두'라 부르는 하이힐을 신고 날 보란 듯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유엔 사모님'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이에 질세라 일부 부유층 사내들은 밀수품 외제양복에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속칭 '제비구두'를 신고 날라리처럼 행세하던 모습이 임시수도에서 볼 수 있었던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사치와 유행의 대명사 마카오신사까지 등장해 거리를 누빈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러니다.

1951년께의 임시수도 광복동 거리. 도로변에 군용 지프가 늘어선 가운데 정장을 한 시민들이 활보하고 있다.

해방은 우리에게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서구식 유행도 몰고 왔다. 당시 사내라면 한 번쯤 '양복 입은 신사'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영국제 복지로 양복을 맞춰 입고 맥고모자나 파나마모자를 쓰고 스프링코트에 조끼, 재킷, 와이셔츠, 넥타이를 맨 신사를 말이다.

마카오신사란 말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해방 이후다. 1947년 3월 17일 인천항에 페리오드 호가 입항을 하게 되었는데, 이 무역선에는 마카오에서 생고무와 양복지 그리고 신문용지 2000t을 싣고 들어왔다. 이 배가 입항한 이후부터 마카오무역, 마카오신사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카오신사란 말이 초창기에는 무역과 관련지어져 불렸지만, 1950년도 이후에는 마카오나 홍콩 등지에서 밀수입해 온 복지로 양복을 지어 입은 사람을 흔히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홍콩도 마카오 못지않은 무역도시인데 왜 마카오신사만 유행의 모델이 되어 있는 걸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카오는 홍콩보다 무역에서뿐만 아니라 도박과 사치, 환락 면에서도 상당히 앞서있는 역사문화 도시였다. 여기에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마카오신사의 8대 특징'에서 그 당시의 품격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정통 마카오신사가 되려면 8가지 외제명품으로 치장해야만 했다. 그 첫 번째가 영국산 복지로 된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어야 했고, 여기에 이탈리아산 발리구두, 스위스산 고급시계, 이탈리아산 악어가죽 벨트, 프랑스산 손가방, 필그램 파나마모자, 미국산 여행용 트렁크 등을 갖추어야 했다. 이 정도의 외국산으로 감싸려면 비용이 만만찮은 데다 구색 또한 갖추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밀수입된 명품으로 부분적으로 치장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는 두 종류의 마카오신사가 버젓이 활보했다. 어느 나라 없이 관문을 지키는 세관원은 그 나라의 얼굴로서 깔끔한 제복을 입히려 한다. 당시 부산항에는 외교사절과 외신기자 등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정부수립 이후 세관원들은 미군의 바지를 염색해 입는 등 제대로 된 제복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전시예산을 긴급 편성해서 홍콩에서 영국제 양복지를 수입해 맞춰 입혔다. 그러다 보니 하루아침에 세관원이 마카오신사가 되어 버렸다. 일부 직원은 이걸 입고 매일 출퇴근까지 하였으니 감히 국가가 공인한 마카오신사가 부산항 주변을 누빈 셈이다. 여기에 밀수꾼들도 밀수입한 양복지로 슬쩍 맞춰 입고선 마카오신사가 되어 과시하기에 바빴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마카오신사였지만 밀수에 대해서는 서로 쫓고 쫓기는 앙숙 관계였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