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8년 두모진서 용두산 이전
- 일본공관 될 때까지 194년 존재
- 축조공 왜관 의미 담지 않았을까

부산은 산세가 강한 도시다. 해안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크고 작은 산들이 이를 말한다. 그 가운데 부산의 랜드마크인 용두산도 있다. 해발 49m의 나지막한 산이다. 마치 동산과 같아서인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쉽게 이 산을 오르내렸다. 그래서인지 세월 따라 시대 따라 붙여진 이름도 많다.

1900년 무렵의 부산항과 용두산 전경.

조선시대는 이 지역이 초량이라 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소나무 숱이 울창하다고 해서 송현산(松峴山)이라고도 불렸다. 개항 이후는 용두산, 중산(中山), 해방 이후 한때는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를 붙인 우남공원이 되었다가 4·19혁명 이후는 용두산공원으로 불리면서 격동의 역사를 겪어왔다. 이처럼 용두산은 붙여진 이름만큼이나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가 스민 유서 깊은 산이다.

용두산이 사람들의 품 안으로 더욱 가까이 들어오게 된 때는 1678년부터다. 지금의 동구 수정동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던 일본인의 마을 두모진왜관이 협소해 초량소산 쪽으로 이사했다. 이후로 이곳은 초량왜관이라 불리면서 대마도에서 건너온 사내 400~500명이 거주하는 금녀의 공간으로 유명했다. 또한, 당시는 조선의 해금정책(海禁政策)으로 인해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이곳만은 열려 있어 막부(幕府)의 위임을 받은 대마도 번주가 운영주체가 되어 조선과의 외교통상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니까 번주는 무역독점의 수혜를 누리면서 대조선의 막후창구역할을 한 셈이다.

어디 세상일이란 게 항상 특혜로서 호시절을 누릴 수는 없을 게다. 1868년 막부가 무너지고 새로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량왜관은 일대 변혁을 맞게 된다. 대마도의 향토사학자 나가도메(永留久惠)가 저술한 대마국지(對馬國志) 연보에 따르면, 1872년 8월 17일 대마도 일원을 나가사키현 관할에 둔 메이지 정부는 한 달 후인 9월 16일에 아예 왜관 명칭을 일본공관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는 왜관의 수장인 관수를 외무성에서 근무명령을 내려 대마도주와 완전 결별을 시키면서 이곳에 근무하던 필요인원 83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귀국조치를 했다. 이로써 초량왜관은 1678년 4월 23일에 오늘의 용두산으로 이사를 와서 1872년 9월에 외무성에서 완전히 접수할 때까지 자그마치 194년 동안 존재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조선과 쌓아온 교린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자 대마도 번주로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종전 대마도민만이 거주하던 공간은 서서히 본토에서 건너오는 비대마도인이 합류하면서 일본인 전관 거류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초량왜관 시절 용두산에 모셔두고 통상선의 안전을 빌었던 대마도인의 사당도 세월 속에 일본인의 신사로 바뀌어 가면서 초량왜관의 흔적도 하나둘 사라져 갔다.

1916년에는 일본인들이 용두산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아마 이 시기에 광복동에서 용두산으로 오르는 돌계단도 만들어졌을 테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1964년 고봉산이 불렀던 '용두산 엘레지'에 나오는 계단이 194개다.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 놓은 그 사람은 어데 갔나'라며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다. 오늘날 용두산에 194계단은 없다. 그 자리에 에스컬레이터가 놓이면서 계단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그 옛날 돌계단을 축조하는 인부들 가운데는 초량왜관을 의식하며 194년의 아쉬움을 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