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득의 부산항 이야기] 의식 잃어갈 때쯤 일본이 보였다

이용득의 부산항 이야기 <46> 조난어부의 귀환(하)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6-08-14 20:02:30
| 본지 15면

- 표류 12일째 간절한 구호요청
- 전마선에 구조돼 일본 수용소로
- 야마모토호 타고 부산항 귀항
- 위령제 준비하던 가족과 상봉

그동안 오징어잡이를 하면서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간 울릉도였지만, 표류하는 입장에서는 자력으로 다가설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배는 울릉도를 곁에 두고 파도 따라 바람 따라 무심하게 떠내려갔다. 저녁 무렵에는 독도를 지나치기도 했다. 어둠과 함께 선원들의 얼굴에는 더욱 실망감과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식료품은 바닥이 나도 식수가 조금 남아있어서 생명을 지탱하는 데는 여유가 있었다.


	부산 영도는 개항 이후부터 바다로 향한 전진기지이자 항만배후도시로 발전해 왔다. 1930년대의 부산항 전경.

5일째가 되자 해상 날씨는 평온을 되찾아 갔지만, 이제는 식수가 문제였다. 7일째 아침 나침반을 통해 선박위치를 추정해 보니 어느새 일본 서해안 부근까지 떠내려와 있었다. 선원 모두는 심한 갈증에 빠져 있었다. 표류 10일째 되는 날에는 드디어 멀리 수평선 너머로 시커먼 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일째 되는 날에는 거의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누가 들었다 놓았을까? 커다란 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본 도삼호 선장은 갑자기 기운이 솟구쳤다.

선장은 "이곳은 일본이 틀림없다"고 일행에게 환기하면서 닻을 내리게 했다. 멀리서 드문드문 어촌마을이 보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쳤다. 간절한 조난구호 요청이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에 조난선 곁에 다가온 것은 이 지역의 순경과 양복 차림을 한 관리 두 명을 태운 전마선(배와 육지, 배와 배 사이에 연락을 맡는 배)이었다. 이들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물은 후에 배의 책임자인 도삼호 선장을 비롯한 세 사람을 인근 어업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한 시간에 걸쳐 본격적인 심문이 있었다. 조사가 끝나자 해안경비대에서 쌀, 고구마, 땔감 등이 구호품으로 전해졌고 모처럼 선원들은 죽을 끓여 먹으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이후 조난선원들은 관할경찰서 보호실에서 며칠간 연금 상태로 있다가 다시 교도소로 옮겨 구금이 되었다. 해방 이후 남해안 인근에서는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기상악화에 의한 조난자라 하더라도 일단 무단입국자로 취급했다. 그리고는 재판을 받게 한 후 나가사키에 있는 오무라수용소로 이감시켰다. 오무라수용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으로 밀항하다가 잡혔거나 조난표류자가 되었을 때 반드시 거쳐 오는 수용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수용소 생활을 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이들에게 석방조치가 내려졌다. 조난자들은 곧 야마모토호를 타고 꿈에 그리던 부산항으로 귀항하게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두 달 넘게 아무런 소식도 흔적도 없다 보니 선원 모두 실종 처리가 된 상태였다. 심지어 묵호어업조합에서는 사망 어부에 대한 위령제라도 지내주려고 유가족 앞으로 통지서까지 보냈다. 영도 오징어잡이선의 선장 모친도 이 통지서를 받고 아들의 위령제에 참가하려고 묵호로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집배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통의 편지를 던져 주고 갔다. 그건 일본 오무라수용소에서 보낸 아들의 편지였다. 죽었다고만 믿고 있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한순간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