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재충전을 위해 걸어 보자. 파도 소리와 해풍을 맞으며 거니는 해변 길, 역사문화유산을 찾아가는 답사길, 세상 시름을 잊고 천천히 거닐 수 있는 탐방로, 어느 길이라도 상관없다. 경남지역 곳곳에 조성된 '걷기 좋은 길'을 연재한다.
- 6개 섬 둘레길 중 첫 번째
- 미래사~희망봉~달아공원
- 총거리 14.7㎞ 5시간 소요
- 일부 구간 가팔라 숨 차지만
- 능선서 본 바다 풍경 압권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은 '바다의 땅'이라고 불리는 경남 통영의 6개 섬을 묶은 둘레길이다. 각각의 섬이 하나의 코스가 돼 총 6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섬 길을 합하면 42.1㎞(100리)에 달한다. 그래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백리길로 불린다. 미륵도 달아길(14.7㎞), 한산도 역사길(12㎞), 비진도 산호길(4.8㎞), 연대도 지겟길(2.3㎞), 매물도 해품길(5.2㎞), 소매물도 등대길(3.1㎞)이 그것이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북한산국립공원의 둘레길,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해변길에 이어 섬 탐방 인프라 구축을 위해 조성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인 통영이 간직한 570개의 섬 가운데 경관이 가장 빼어난 섬 6곳을 골라 조성한 만큼 탐방객이 급증하고 있다.

이 바다백리길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아니다. 예부터 섬 주민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지겟길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용하던 길을 탐방하기 좋게 다듬어 놓았다. 천천히 걸으면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 백리길의 시작

미륵도 달아길은 이 바다백리길의 첫 번째 길이자 유일하게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나머지 섬 길은 모두 배(여객선)로 이동해야 하지만, 미륵도는 통영 시가지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출발지와 종착지는 미륵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미래사와 달아공원이다.

코스는 미래사~미륵산 정상(461m)~미륵치~야소마을~산양스포츠파크~희망봉(230m)~중화전망대~연명전망대~연화전망대(망산 쉼터)~달아공원. 14.7㎞ 구간으로 천천히 걸으면 5시간 이상 걸린다. 바다백리길 중 가장 길고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탐방로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일부 구간은 가파르지만 힘들 때쯤이면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압권이다. 땀 흘린 만큼만 바다 풍경을 허락한다.

여유로운 탐방을 원한다면 오전 코스(미래사~미륵산 정상~미륵치~야소마을)와 오후 코스(산양스포츠파크~희망봉~중화·연명·연화전망대~달아공원)로 나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걷기를 권한다.

이 코스의 출발지인 미래사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곧장 갈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면 미륵산 상부 정류장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결코 미래사의 아름다운 편백 숲을 감상할 수 없다.

■ 미래사의 울창한 편백 숲

본격 탐방에 앞서 미래사 입구 맞은편 미륵불로 가는 편백 오솔길을 찾는 것을 빠트려서는 안 된다. 500여 m에 달하는 이 오솔길은 교통 약자를 위해 평탄 작업을 거쳐 걷기가 편하다. 이 오솔길을 다시 나와 미래사 뒤편의 편백 숲 쉼터에서 탐방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미륵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전형적인 산길, 흙길이다. 그다지 가파르지도 않아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산 아래로 발길을 옮겨 8부 능선에 이르면 미륵치(미륵고개)에 도달하고 야소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미륵치는 옛날 야소마을로 갈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고개였다. 고갯길을 따라 내려가면 대나무 숲길과 돌담길이 나오고 곧 마을로 접어든다. 임진왜란 당시 무기를 만들었던 대장간이 있어 야소골, 옛날 산속에 여우가 많이 살아 야시골로 불리기도 하는 이 마을은 이전부터 인물을 많이 배출한 명당으로 소문났다.

■ 능선 굽이굽이 바다 절경

야소마을 길 건너편인 산양스포츠파크 뒤편 야구장에서 희망봉으로 오르는 길은 '미륵도 달아길'의 최대 난코스다. 230m의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깊어 오르기 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등산로 나무 덱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지칠 때쯤이면 정상이 보인다. 구슬땀을 닦으며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방금까지 고생에 대한 넉넉한 보답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부터는 오르락내리락 능선이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전망대가 나오고, 또 길을 걷다 지칠 때쯤 전망대가 탐방객을 반긴다. 걷는 게 지루해질 시점에 바다가 보이고, 또 산길만 가다 지루해질 즈음에 바다를 볼 수 있다.

연명전망대에서 만난 대전 시민인 60대 남성은 홀로 산행 중이었다. 그는 "바다백리길이 좋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내려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어촌 마을과 바다 풍경이 정말 환상적"이라며 흡족해했다.

[걷고 싶은 길]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