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찍히면 혼 달아난다 믿던때
- 강압·무력 의미 묻어나 씁쓸해

우리나라에서 일반 백성이 카메라와 접촉하는 최초의 계기는 1871년 6월에 벌어진 미국 군함과의 전투, 즉 신미양요에서 비롯된다. 당시 종군기자들은 전투기록의 일환으로 50여 점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뿐 아니었다. 1885년 영국군이 남해안의 거문도를 점령할 당시도 카메라의 가치는 빛을 발했다. 영국군은 거문도 전경과 현지 주민들의 실상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 놓았으니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카메라에 사진으로 찍히면 혼이 달아난다고 믿는 때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주 진일보한 사례로 보일지 모르지만, 대부분 사진 속에서 무력과 강압의 의미가 피어나서 씁쓸하다.

사보담 목사가 1905년 복병산에서 일본인 거류지역을 찍은 사진 5컷을 연결한 부산항 파노라마 사진의 일부. 당시 부산항의 가장 번성한 곳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부산항을 카메라에 담은 최초의 사진은 언제쯤일까? 일본은 운요호사건과 관련해 무력시위를 벌이기 위해 4척으로 편성된 구로다(黑田) 함대를 1876년 1월 중순 부산항에 파견했다. 이 함선에는 일본인 사진사 가와타 키이치(川田紀一)가 승선하고 있었는데, 그는 함선에서 초량왜관의 선착장이 있었던 용두산 동쪽 해변을 보고 카메라 세트를 눌렀다. 며칠 후 이들 함선은 포탄훈련을 마치고 강화도로 향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강화도 연무당에서 구로다 일행은 우리나라와 조일수호조규라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당시 조약체결 장면을 찍은 이가 가와타 키이치였다. 이처럼 부산항 최초의 사진은 강제 개항을 불과 한 달 앞두고 강압적인 무력시위 속에 구로다 함대의 전속 사진사에 의해 탄생한 셈이다.

부산항을 보다 광범위하게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파노라마(panorama) 형태로 찍은 사진은 1905년에 등장한다. 이 사진을 촬영한 사이드보탐(Richard H. Sidebotham : 謝普淡) 목사는 미국 미시간주 출신으로 1899년 6월에 결혼과 동시 우리나라에 건너온 선교사인데, 부산교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사보담 목사는 한국어에 능통하면서 사진에 남다른 조예와 기술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사보담 목사가 8년 동안 한국에서 사역을 하고 1907년 안식년을 맞아 모처럼 6개월간의 장기 휴가를 받아 귀향할 때 북장로교 선교부에 보고용으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3년 그의 외손녀 그린필드 여사가 자신의 어머니 태생지이자 고향인 부산을 찾아와 기증했다.

부산항을 촬영한 최초의 컬러 파노라마 사진은 1954년 초 6·25전쟁 복구를 위해 미44공병대(부산 자갈치 인근주둔)에서 근무한 클리프 엘 스토로버(Clifford L. Strovers) 상병이 찍은 것이다. 지금의 코모도호텔 아랫자락에서 부산항을 슬라이드필름 2컷에 담았다. 이 두 사진을 합성하면 당시의 부산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항 제1·2·3·4 부두를 비롯해 중앙부두 뒤쪽에는 아직 매축이 끝나지 않아 물웅덩이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2010년 우리 정부가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해외 참전용사들을 초청할 때 그 일원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는 근무지였던 부산을 찾아 부산타워에 올라 상전벽해가 된 현장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표시했고, CD에 담아온 여러 사진을 이곳에 기증하고 돌아갔다.

현재 부산항을 찍은 파노라마 사진은 30여 점 남아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처럼 부산항 사진은 부산항을 찾아와서 볼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 보인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