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정 조정
- 국공립·대학병원서 원천 차단
- 매진 항공권 요청도 이젠 불법

- 골프장 주말 예약률 절반 뚝
- 대리운전기사·골프장 캐디 등
- 수입 감소로 생계에 큰 타격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시행되면서 병원·항공업계 종사자를 비롯해 내심 쾌재를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동안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는 식의 비행기 표, 입원실 부탁에 골머리를 앓아왔지만, 이제는 거절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대리운전기사와 골프장 캐디처럼 생계형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손님이 끊겨 울상을 짓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둘째 날인 29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수납 센터에 법 관련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전민철 기자

■병원·항공업계 관계자 웃고

부산의 한 대학병원 내과 전문의 이모(58) 씨는 29일 "지인들로부터 진료를 봐 달라는 청탁을 자주 받았다. 예약진료 일정이 빠듯한데도 거절할 수 없어 난감할 때가 많았다"며 "이제는 그런 부담에서 해방돼 진료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진료일정 조정, 입원실 부탁 등도 부정청탁에 해당한다. 청탁 압박에서 벗어난 의사는 물론 병원 관계자들도 김영란법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부산대병원 김득남 홍보팀장은 "청탁을 일절 안 받기로 원칙을 세웠다. 업무 특성 탓에 입원·진료 일정을 당겨달라는 등의 각종 부탁을 많이 받지만 앞으로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김영란법을 반기고 있다. 매진된 항공권을 구해달라는 유력인사들의 청탁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항공업계에는 유력인사들이 이미 매진된 항공권의 구매를 요청하면, 해당 인물을 우선 대기 순위로 지정하거나 초과예약(오버부킹) 처리한 뒤 취소되는 표가 나오기만을 기도하는 처지였다.

만약 취소되는 항공권이 없어 유력인사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경우 괘씸죄에 걸려 난감한 상황에 몰린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매진된 항공권을 구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업무를 처리하는 전담 직원이 있는 회사도 있다"며 "실제 지난 27일까지 항공권을 구해달라는 부탁이 많이 왔는데,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요청이 없다"고 말했다.

■대리기사·골프장 캐디 울고

부정청탁을 막자는 김영란법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고급 음식점 일자리는 물론 골프장 캐디, 대리운전기사들의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법 시행으로 술자리가 줄면서 대리운전사들의 수입이 급감하고 있다. 낮에는 일용직으로,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이정록(42·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씨는 김영란법을 앞두고 하루 평균 6건이던 대리운전 횟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시행 첫날 밤인 지난 28일에는 2건에 그쳤다. 야식 비용과 차비를 빼면 남는 게 없어 허탕을 치는 셈이다. 이 씨는 "저녁 일찍 시작해도 호출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골프장 캐디들도 우울하다. 법 시행으로 '부킹 절벽'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회원제 골프장의 예약이 눈에 띄게 줄면서 캐디들 역시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기장군 아시아드컨트리클럽(CC)의 경우 평소 주말 예약률은 95%에 달했지만 다음 달 1일, 2일 주말부터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아시아드CC에서 13년째 캐디로 일하고 있는 신모(여·36) 씨는 "하루에 1, 2회 일주일 평균 11회 정도 일하면 한 달에 300만 원 정도 번다. 예약 상황을 보니 다음 달에는 절반밖에 일을 못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권용휘 김준용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