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임시허가 때 이행각서 근거
- 이참에 30여 곳 자진 철거 요구
- 조합 "상인 120여 명 생계 막막"

부산 서구의 명물 암남공원 조개구이촌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1일 서구 암남동 암남공원 매립지 주차장 옆 조개구이촌. 지난 5일 부산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차바'로 조개구이촌은 폐허가 되었다. 천막은 뜯겨 나갔고 자재창고는 같은 날 발생한 화재로 사라졌다. 현장에는 상인조합에서 동원한 굴착기가 무너진 천막구조물을 정리하고 상인들은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부서진 철제 구조물에 상인들을 내쫓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암남해변조합 양창훈 총무는 "태풍으로 해녀촌 조개구이 가게 30곳 전부가 영업할 수 없게 됐다"며 "상인들이 사비를 들여 복구 중인데 구는 무관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서구가 조개구이촌 자진 철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조성된 조개구이촌은 2000년 임시허가를 받아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태종대 감지해변 자갈마당과 같이 가건물 아래에서 조개를 구워 먹는 곳으로는 드물게 신용카드를 받고 영수증을 발급했다.

그러나 지난달 서구는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 관광벨트 조성에 따른 주차공간 확보 등을 위해 조합 측에 시설물을 철거하도록 요구했다. 서구와 조합은 2000년 임시허가 당시 이행각서를 쓰면서 서구가 요청하면 자진 철거한다는 내용을 넣은 것이 그 근거였다. 조합은 서구 측에 현재 가게가 쓰고 있는 땅 중 약 20%에 달하는 자산관리공사 소유 땅만이라도 가건물을 세우고 영업하겠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대로 조개구이촌이 사라지면 이곳에서 일하는 120명가량의 상인 생계도 막막해진다. 암남해변조합 서광수 운영위원장은 "이대로 서구의 관광 명소인 '해녀촌'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조합원 모두가 똘똘 뭉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저항하겠다"고 다짐했다. 일각에서는 서구 측이 송도 해상케이블카에 들어설 위락시설과 상권이 맞물리는 것을 우려해 철거를 요구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만근 송도발전추진위원장은 "상인들이 20년 가까이 명소로 꾸며놓은 곳을 민간사업자들 이해를 위해서 쫓아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는 조개구이촌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김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