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사관 일본인 술집서 소동
- 과장된 보도로 양국 감정 나빠져

얼마 전 우리나라에 몇 차례 큰 지진이 나고부터 자연현상이나 생물체들의 움직임을 지진과 관련지어 전조현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많은 요즘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해양세력과 내륙세력 간의 다툼이다. 흥미가 있는 것은 이러한 큰 전쟁을 앞두고 부산항에서 이들 양 민족 간에 먼저 미묘한 감정이 개입된 전초전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개항 이후 부산항은 외국군함이 가끔 찾아들어 마치 무력시위의 결전장과 같았다. 사진은 1887년 9월 복병산 해관장 관사에서 본 영국군함의 항내 정박 모습.

먼저 청·일전쟁 직전 부산항에서 청국인과 일본인 간 벌어진 선상소동이 그렇다. 이러한 소동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당시 이 배에 타고 있던 오스트리아 여행가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이었다. 그는 훗날 그의 여행기 '조선 1894년 여름'에서 소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1894년 6월 말이었다. 부산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일본우선회사 소속의 화객선 켄카이마루(玄海丸·1427t) 선상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이 배에는 애초 일본에서 출발할 때부터 인천행 일본인 짐꾼 150여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용공간이 부족한 이 배에 갑자기 300여 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승선을 하면서 양측 간 자리를 두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얼마 있지 않아 단검이 번쩍이고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한순간에 선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선장은 선내 질서를 잡기 위해 선원들로 하여금 단호히 대처토록 하여 일단 중국인을 선수부에 배치토록 해 겨우 두 무리를 갈라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감정을 삭이지 못해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출항과 동시에 닥쳐온 기상악화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하나 둘 배멀미로 떨어지면서 선내는 다행히 평온을 찾게 되었다. 이들 중국인들은 러시아 극동해역에서 우무가사리와 같은 해조류를 채취해주고 돈 벌러 갔던 산동지방 출신의 노동자였다. 채취기간이 끝나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화객선 블라디미르호를 타고 부산항에 온 이들은 고향 산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때마침 인천으로 향하던 이 배에 옮겨 타면서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기득세력이 더욱 조선에 뻗치고 있던 무렵 부동항을 구하기 위해 호시탐탐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던 러시아군함이 부산항에 자주 출몰하곤 했다. 1899년 7월 11일 오후 4시께 지금의 광복동 1가 용두산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쯤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기생술집 경판정(京坂亭)에는 부산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군함의 사관 고리우바키스 사관이 일본기생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러시아 사관은 술 시중드는 기생의 매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얼굴을 몇 차례 후려쳤고, 이를 말리던 남자 종업원까지 손찌검을 했다. 이후 그 사관은 군복휘장과 모자를 떨어뜨려 놓고 군함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이 주정사건(酒酊事件)은 일본의 여러 신문에 '러시아 사관이 정조의 요구가 거부되자 이를 트집 잡아 폭력을 행사했다'는 과장된 보도가 실렸다. 이를 본 러시아 요오래츠 함장은 부산 주재 일본영사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서울의 자국 공사에게는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했다. 결국 당시 나가무라 일본영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신문 기사가 과장, 보도됐다는 것을 밝혀 이 문제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주정사건으로 인해 러·일양국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러·일전쟁의 험악한 풍전을 예고라도 하듯 앞서 부산항에서 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고나 할까.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