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지난해 '원양어업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방안' 연구용역사업을 추진해 최근 완료했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 원양어업 개척사와 관련된 부산 고유의 스토리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전체 사업 가운데 (사)부산스토링텔링협의회가 맡아 진행했던 원양어업인들에 대한 인터뷰 채록 내용을 요약해 지면에 게재한다.

- 공무원 생활 접고 뱃사람 길로
-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첫 진출
- 실패 끝 최고급 참가자미 대박
- 외국어선 관찰 레드피쉬 잡아
- 마지막 항해때 최악 폭풍 만나
- 모든 계기 고장…감으로 귀환

그는 1946년 부산 반여동에서 태어났다. 1965년 고교 졸업 뒤 철도청에 취직했지만, 공무원 월급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박봉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만두고 하급선원으로 1971년 말 25살 때 처음 원양어선에 올랐다. 태창수산 소속의 350톤급 PARTERA NO32호였다. 이 배는 우리나라 최초로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개척선으로 운영된 가다랑어 채낚기 어선이었다.
■악천후 속 조업

"아무리 개척선이라고 해도 4개월이 다 되도록 어창의 반도 못 채웠어요. 그렇게 어려움을 겪다가 처음으로 만선을 이뤘지. 정확히 210톤으로 6만 달러가 넘는 어획고였습니다. 그때까지 시행착오가 허다했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군."

1980년 가나에서 돌아온 그는 해외어업회사의 씨버드 8호(냉동운반선)에 1항사 신분으로 타고 일본, 괌, 파푸아뉴기니 등지를 돌아다닌다.

"그때는 외국으로 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나갈 때는 반공교육 같은 걸 받고 그랬어. 혹시나 북한 어선하고 접촉하고 그럴까 봐."

그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삼원어업 소속 삼원호(트롤어선)에서 일했다. 이 배는 한국 어선 중 최초로 북대서양 뉴펀들랜드(캐나다 동부) 해역에 진출했다. 그가 선장을 맡았고 승선인원은 모두 60명이었다.

"우리는 그 해역을 '뉴펀들랜드 뱅크'로 불러요. 기상이 험하기로 세계 최악이지.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는 곳에서 하루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특히 그곳은 '허리케인'의 최종 집결지라 더 그래. 허리케인이 아래쪽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뒤 플로리다 반도를 거쳐서 미국 동해안을 따라 1000마일 이상 올라오면서 엄청난 열대성 저기압으로 발달하는데, 이런 허리케인이 어떤 때는 두세 개씩 겹쳐서 올라올 때도 있단 말이야. 거기다 뉴펀들랜드 위쪽에 그린란드가 있는데, 거기 만년빙 위에 항상 묵직한 고기압이 버티고 있어. 그 차가운 공기와 밑에서 올라온 열대성 저기압이 딱 부딪힌다고 생각해봐. 그곳에서 햇살을 보는 건 한 달에 하루 이틀뿐이었어. 우리가 그런 악천후 속에서 고기를 잡았지."

어황이 좋지 않던 어느날 그는 최고급 참가자미떼를 만난다.

"네트 레코드(어군탐지기)에 뭔가 잡히는데, 참가자미가 아닐까 싶더라구. 그때 북쪽에서 쿠웅, 쿵 하는 소리가 들렸지. 엄청난 빙산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주변에 장애물이 없어서 투망을 했지. 그런데 그물을 올려봐도 뭐가 없는 거야. 어망 밑바닥이 길게 갈라진 채로 빈 그물만 올라왔어. 밑바닥이 찢어져서 (고기가) 모두 빠져나간 게 아닌가 싶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반 마일 가량 비켜난 곳에서 역코스로 그물을 풀었지. 그런데 이번에도 그물 밑판이 찢어진 거야. 미치겠더라구. 그물을 고치려면 3시간 정도는 까먹거든. 딱 보니까 선원들이 투덜대는 눈치였어. 그래서 한 번 더 해보고 실패하면 뱃머리를 돌릴려고 했지. 다시 투망해 그물을 올리는데, 모두 흥분했어. 어획한 참가자미가 냉동팬으로 600개나 됐어. 20톤 정도 되는 물량이지. 처리실에 가니 등때기에 쩍(따개비와 파래 등)이 붙은 참가자미들이 바닥에 쫙 깔려 있었어. 마리당 3㎏이 넘었지. 쩍이 붙은 고기, 그런 게 최고급 참가지미거든. 그런 대박이 사흘간 계속 됐어. 100톤 가까이 채웠지. 조금만 더 하면 만선을 이루겠더라구. 하지만 빙산 두 개가 떠내려왔어. 그래서 접었지. 아쉬웠지만 그럴 땐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레드피쉬(빨간고기)

	삼원호(원양 트롤어선) 선장 시절의 정효모 씨.

북위 42도의 뉴펀들랜드 해역은 볼락의 일종인 레드피쉬(빨간고기) 주서식지이다. 그는 이곳에서 수심 80m가 넘으면 가급적 투망을 피했다. 수심이 깊으면 어떤 고기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와프(와이어로프·끌줄)가 절단되는 등의 피해를 입기도 하기 때문이다. 트롤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통걸이(그물이 암초 등 해저 장애물에 걸려 로프가 절단되면서 그물 한 틀을 몽땅 잃어버리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예비 그물이 있지만, 그것만 믿고 조업에 나서기는 불안했다. 그는 참가자미 어황이 시들해지자 레드피쉬 어획에 용기를 냈다.

"그동안 외국 어선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니까, 걔들은 수심 100m 넘는 곳에서 겁도 없이 막 투망하는 거야. 그래서 무슨 고기를 잡나 예의주시했지. 요즘 흔히 얘기하는 빨간고기였어. 그때는 국내 어시장에 한 번도 반입된 적이 없었지. 한국 어선으로서는 내가 최초였어. 수면에 그물이 올라왔는데 온통 새빨갛더라구. 그래서 본사에 레드피쉬 시장조사를 요청했는데, 상품(上品)이 톤당 400달러 정도라고 하더라구. 하지만 참가자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어. 굉장히 신경 쓰고 잡았는데 어가가 낮아서 실망했지. 그때는 눈에 참가자미만 보였어. 그래도 참가자미 대박이 나면 버릴 요량으로 레드피쉬를 계속 잡았지. 참 많이 잡았어."

북위 45도 45분, 서경 47도 20분. 뉴펀들랜드 동북부인 이 해역은 '고구마어장'이라 불렸다. 해저 모양이 고구마 같이 생겨서 정 선장이 붙인 이름이다. 그곳에서 조금만 북상하면 그린란드. 뉴펀들랜드 뱅크의 해저 대부분은 암초로 뒤덮여 있지만, 그곳은 장애물이 없는 평저라고 한다. 그때까지 스페인 어선이나 포르투갈 어선들은 그 어장의 존재를 몰랐다. 지금은 그 어장이 가자미와 레드피쉬로 어획판도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대구와 광어를 주로 잡았던 곳이었다. 1987년 12월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 조업에 나선다.

"그때 어창 한 곳이 비어 있어서 이를 다 채우고 귀항하려고 고구마어장으로 뱃머리를 돌렸지. 그런데 기상이 좋지 않았어. 늘 그렇지만. 통신장이 기상도를 보니까 꼬리 두 개 달린 열대성 저기압 하나가 노스캐롤라이나 앞 케이프하테라스에서 돌고 있더라구. 멕시코만에서 발생해 플로리다 반도로 우회한 놈이었어. 그냥 소멸하거나 방향을 틀 것 같지 않더라구. 딱 보니까 기착지가 뉴펀들랜드이겠다 싶었지. 거리를 재보니 우리 배하고 400마일 가량 됐어. 이동속도로 볼 때 며칠이면 영향권에 들 것 같았어. 그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조업하기로 결심했지. 하루 이틀 더 하면 만선을 이룰 것 같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창에 있던 레드피쉬 전부를 버리라고 명령했어. 참가자미 욕심이 나서 각오를 다진 거지. 그리고 결국 만선을 이뤘어. 어창이 넘쳐 가지고 부식창고하고 육류창고에도 나누어 넣을 정도였으니까."

■마지막 항해, 절체절명의 순간

만선을 이뤘지만 그가 뉴펀들랜드 어장과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의 배 주변에 한국 어선 네 척이 있었는데, 모두 축하전문을 보내줬다. 이를 받은 그는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뱃머리를 생피에르(뉴펀랜드 남쪽 군도) 항구로 돌렸다. 원양어업에 몸담은 지 16년 만에 하선을 앞둔 길이었다.

"야간 항해에 대비해 눈을 좀 붙이고 있었는데 밖에서 노크를 했어. 통신장이 그러는데 기상도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래서 보니 그린란드 상공에 붙박이 고기압이 있고 새로운 고기압 하나가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더군. 그 두 개가 세력다툼을 벌이면 북대서양 기온이 완전히 떨어지거든. 거기다 아래서는 저기압 두 개가 올라오고 있었지."

그는 뉴펀들랜드 어장에 들어온 뒤 그런 기상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기상도는 그를 더욱 긴장시켰다.

"그린란드 상공의 두 개 고기압이 뭉칠 기세더라구. 남쪽에서는 993·996헥토파스칼의 저기압 두 개가 올라오고, 피항처는 사방 어디에도 없고. 배 전체에 긴박감이 흘렀어."

그는 선내를 돌며 빠짐없이 점검했다. 주위 해면은 고요하고 하늘은 오랜만에 맑았다. 마치 폭풍전야 같이.

"저기압이 계속 하강했어. 바람은 초속 32m까지 강해지고. 저기압은 975까지 내려앉고, 초속 35m 강풍이 배 우현을 밀어붙였지. 1045헥토파스칼 되는 고기압에 975헥토파스칼 저기압, 기압차가 70이었어. 거기서 엄청난 바람이 유발되거든. 선체가 파도에 진저리치면서 초강풍의 중심부로 점점 휩쓸려 들어갔지. 파도 더미가 브릿지(배의 상부 구조물)를 강타해 유리창이 박살났어. 깨진 창 안으로 물보라가 쏟아져 들어오고, 영하의 바닷물에 모두들 신음소리가 처절했어. 전원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명령했지. 최악의 순간이 왔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구."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삼원호의 배 키까지 고장났다. 설상가상, 그는 최후가 왔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런데, 키 조작을 수동으로 전환하니 키가 돌아가는 거야. 갑판에 바닷물이 가득하고 배수구는 막히고, 그렇게 이틀을 버텼어. 그 와중에 거대한 파도 하나가 우현 뱃전을 넘어 갑판을 휩쓸어버렸지. 건물 10층 높이 되는 파도였어. 배가 한참 동안 못 일어나더라구. 나는 침몰로 받아들이고 포기했지. 그런데, 그 순간 '덴스 포그(짙은 안개)'가 우리 배를 구했어."

덴스 포그는 북대서양의 특이 기상현상이다. 갑자기 날이 밝으면서 안개가 몰려오는 것이다. 그는 선박을 순찰했다. 조타실은 아수라장이었고, 모든 계기가 작동불능 상태였다. 통신실도 마찬가지라 배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엔진은 꺼지지 않았다.

"내가 어림짐작으로 계산한 뒤 배를 생피에르 방향으로 몰았지. 가는 도중에도 안개하고 눈발이 장난이 아니었어. 그 사이에 통신장비를 수리해 생피에르 기지와 연락이 됐어. 조금 있으니까 항구의 등댓불이 보이기 시작했지. 관제탑에서 연락이 왔어. 어떻게 계기 하나 없이 항구를 찾아냈느냐고? 나는 '주님의 인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어. 그게 내 마지막 항해였지."

당시 그 허리케인으로 뉴펀들랜드 뱅크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여덟 척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저기압의 무덤'이라는 그곳에서 살아 귀환한 배는 그가 이끈 삼원호 한 척뿐이었다고 한다. 배에서 내린 그는 대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을 보고, 늘 자식들에게 거짓 없이 솔직하게 살라고 말해왔다. 그의 부산 남포동 사무실 벽면에는 원양어업 기지가 있던 가나의 테마항 지도가 붙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갈치시장 앞바다를 바라보며 해양소설을 쓰고 있다.

※ 뉴펀들랜드 뱅크(Bank)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 앞바다에 펼쳐져 있는 수심 200m 이하의 뱅크. 이 섬 남서쪽의 노바스코샤 반도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여러 주(州)의 앞바다에 널리 걸쳐 있다.

이 해역에서 최대 면적은 뉴펀들랜드 남동쪽의 그랜드 뱅크. 이를 중심으로 서쪽에 생피에르 뱅크, 밴쿠로 뱅크, 세이블섬 뱅크, 라헤브 뱅크, 브라운스 뱅크 등이 차례로 있다. 이들 뱅크에는 대구 청어 고등어 새우 등의 어류가 풍부해 일찍부터 세계 4대 어장의 하나가 됐다. 미국 글로스터·보스턴·포틀랜드, 캐나다 루넨버그·세인트존스는 뱅크 어업의 기지를 이룬다.

강성민 소설가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산학협력단,(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