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박 좇다 살림밑천 잃은 이야기
- 스톡홀름항 '아이언 보이'처럼
- 형상물 제작 부산항 관광명물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원도심 감라스탄에 가면 관심을 끄는 관광명물이 하나있다.'아이언 보이(Iron Boy)'란 미니동상이다. 휴대폰 크기인 14㎝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동상이라 자칫하면 찾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이드의 도움으로 막상 이 동상과 마주치게 되면 한순간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 너무 얄밉고 보잘 것 없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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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도개교인 영도다리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다리로서 명성이 높다. 1954년 미공병 스토로버스가 촬영했다. |
옛날 스톡홀름항 부둣가에서 짐을 나르며 살아가던 고아가 있었다. 평소 이 소년은 자기보다 어리거나 또래의 고아들을 잘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날 이 고아는 감라스탄의 한적한 골목에서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사연을 두고 1954년 스웨덴의 아티스트 리스 에릭슨은 '달을 바라보는 작은 남자아이'라는 제목으로 작은 동상을 세우게 됐는데 이게 바로 '아이언 보이'다. 그리곤 여기에 스토리를 입혔다. 동전 한 닢을 던지며 동상머리를 쓰다듬으면 행운과 지혜를 안겨준다고. 그러다 보니 숱한 관광객이 이마를 매만져 동상의 머리가 대머리가 되어 빛난다.
겨울이 되면 추울까봐 목도리에 털모자까지 씌워지고 모인 동전은 동상이 서 있는 뜰의 소유주인 핀란드 교회가 수거해 고아를 돕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항만도시 부산에도 이에 견줄만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없을까. 명소 영도다리 밑에서 세월 속에 감춰진 애환의 이야기 하나를 들춰보자. 1950년대 후반 즈음 영도다리 옆에 구두수선 노인이 살았다. 어느날 모처럼 산 애국복권이 당첨되는 횡재를 만났다.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기쁨에 도취된 노인은 평생 자기 밥벌이 밑천이었던 구두수선통마저 귀찮아 보여 이걸 영도다리 밑 바닷물에 시원하게 던져버리고 말았다. 이게 운명의 장난이 될 줄이야. 당첨금을 찾으려고 애지중지 감춰둔 애국복권이 없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두수선통 틈바귀 속에 끼워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난 것이다. 가슴을 치며 통탄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지만 애국복권이 당첨됐는데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되레 구두수선장비까지 사라져 더욱 참담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으니 이게 바로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람의 향기가 스민 스토리를 담은 형상물을 부산항에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영도다리 인근에 구두수선공 '할배 동상'을 세워 행운과 재기의 힘이 실린 사랑의 동전을 던지게 하자는 것이다. 스톡홀름항에 '아이언 보이'가 있다면 부산항에는'아이언 그랜드파더(Iron Grandfather)'가 있도록 말이다.
부산항은 6·25전쟁으로 많은 피란민이 내려왔고, 이들 이산가족들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가 영도다리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꿈을 갖고 영도다리를 찾았지만 대부분 만나지 못해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애국복권으로 허탈감에 빠진 구두수선공 노인의 이야기는 당시 우리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처지를 대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