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양 조업 중 허벅지 부상
- 2개월간 달걀만 먹으며 투병
- 나포 뒤 해적 두목으로 지목
- 현지 국영방송 뉴스에 나와
- 외국인 선원들 선상 하극상
- 헤엄쳐 도망온 한국인 구호
- 유자망 어선 사망사고 잦아
- 유가족에 종종 얻어맞기도

그는 1959년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장남인 그는 부친이 돌아가신 뒤 집안을 책임져야 했다. 평소 고향을 떠나 먼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진로를 원양수산 쪽으로 잡았다. 1977년 부산 수산대에 입학한 그는 1981년 졸업하고 그해 2월 부산항 3부두에서 신라교역 소속 한길호(1500톤급 트롤선)를 타고 첫 출항했다. 그때 나이 23살이었고 3항사 지위였다.
■잊을 수 없는 기억

"제가 탄 한길호가 미국령 베링해에서 조업하고 있었어요. 아마 세인트로렌스 섬 근방이었을 겁니다. 새벽 당직을 서고 있는데, 갑자기 '살려달라'는 무선연락이 왔어요. 그 선원이 막 고함을 쳤는데, 아마 어획물 운반선이었던 것 같아요. 배에 불이 나서 긴급 구조요청을 했는데, 그때 우리 배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히브 투(Heave-to) 상태였죠. 그래서 피항 중이었는데, 3~4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고함치던 그 배 1항사의 목소리가 새벽녘에 딱 사라졌습니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 코만도르스키예 제도 근처였어요."

첫 출항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을 무렵에 침몰사고를 접한 것이었다. 그는 다급했던 그 1항사의 고함소리를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다.

1983년 북태평양에서 귀국한 그는 삼원어업 소속 17삼원호에 초사(1등항해사) 지위로 승선해 인도양 파키스탄 어장에 진출했다.

"인도양에서는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조업 중 와이어가 터졌는데, 내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어요.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다리가 절단될뻔 했죠. 응급치료를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요. 아무리 항생제를 투여해도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피고름이 나면서 낫지를 않는 거예요. 그때는 사람 아픈 것보다 조업이 더 우선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조업 끝나고 파키스탄 카라치 병원에 입원했어요."

당시 카라치 병원에 홀로 남겨진 그는 달걀을 하루에 40~ 50개씩 먹어야 했다.

"나는 입이 짧은 게 아닌데, 중동 음식은 도저히 못 먹겠더라구. 그래서 달걀을 사서 한 끼에 후라이로 5개, 삶아서 5개, 날로 5개 이런 식으로 매일 먹었어요. 그렇게 1주일 먹으니 달걀똥이 나오더군. 2개월을 그렇게 달걀만 먹으며 버텼지.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이란 어장에서 나포

인도네시아 어장에 진출해 활동할 무렵 101동원호 선상 지휘실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정진욱(왼쪽) 선장.

1985년 선장이 된 그는 이란 쪽 어장으로 나갔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고, 중동 연안국들의 정정(政情)도 매우 불안했다. 어느 날 같은 선단 배의 선원 한 명이 사고로 숨졌는데, 그의 시신을 육지에 묻기 위해 이란 항구에 들어갔다.

"이란의 호메이니가 집권하던 시기였는데, 사회 분위기가 엄청 살벌했어. 이란-이라크 앞바다(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미국 영국 오만 등의 군함과 마주치면 검문을 받으면서 조업을 했지. 당시 상선이나 유조선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때 '생명수당'을 덤으로 줬는데, 그래도 가능하면 그 쪽으로 안 들어가려고 했어. 너무 위험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란에 들어가 육지를 밟아봤지. 아무튼 죽은 그 선원을 전쟁 중인 나라의 황량한 모래밭에 묻고 나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는 1986년 이란 어장에서 조업하다 연안 침범으로 나포된다.

"이란 차바항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갑자기 총격을 받아서 배를 멈췄어요. 현지 무장선박이었는데, 우리 배에 올라타서는 총구로 내 등허리를 밀더군. 조금만 허튼짓하면 총알이 내 몸을 관통할 거 같았어. 우리 배가 그렇게 나포되고, 선장인 나는 군대 감옥에 끌려갔지. 곧 사형이 선고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어. 나는 감옥에서 사흘간 아무 것도 못 먹고 물만 마셨어. 그러고 있는데 본사에 연락이 갔고, 기지장이 나를 찾아왔죠. 감옥에서 기지장 얼굴을 보는 순간,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인도네시아 어장으로

1991년 조업 중이던 정진욱 선장의 배에 접근하는 파키스탄 경비정.

이란에서 돌아온 그는 1987년 9월 동원산업의 101동원호를 타고 인도네시아 어장에 투입된다. 인도양에서 사선을 넘나들었지만, 그 이후로 바다에 나오면 마치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인도네시아 어장에 들어가 한 달 정도 조업했는데 20톤밖에 잡지 못했어. 그 정도면 실패지. 본사에서는 고기 못 잡는다고 자꾸 뭐라 그러고, 속이 탔어. 그래서 두 번째 출어 땐 이판사판 심정으로 모험을 하기로 했지. 아예 처음부터 연안 쪽부터 훑어가기 시작했어. 그러던 중 한치 산란장을 발견했죠. 운이 좋았지. 매일 10여톤씩 고기를 처리하면서 양껏 어획했어. 그렇게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니까 당초 내가 들어갔을 때 2척이었던 것이 1988년, 1989년에는 그곳 어장에 80척 가량의 한국 트롤선들이 몰려왔지."

그는 1990년 초 동진원양 소속 505이스트벨호를 타고 다시 인도양 파키스탄 어장에 나갔다. 감회가 남달랐다. 여러 번 목숨을 잃을뻔 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고향 같은 파키스탄 어장에서 그는 다시 아찔한 일을 겪는다.

"그때 우리 배가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조업을 하는데, 파키스탄 경비정이 다가왔어. 배를 세우라며 경고사격까지 하더군. 우리 배에 군인들이 올라와 선원 전부를 무릎 꿇리고 조사를 했어. 선장인 나는 많이 맞았지. 그리고 우리 배는 카라치항으로 끌려갔어. 파키스탄 방송기자들이 배에 올라와서, 나포되는 순간을 재연해 보라고 시키더군. 나중에 들은 얘긴데, 당시 파키스탄 국영방송 뉴스에 그것이 보도되었다고 하더군. 내가 해적 두목으로."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인도네시아 암본에서 기지장으로 일했다. 그때 암본 투알(TUAL)항에 우리나라 배가 입항했는데, 현지 선원과 한국 선원 간에 충돌사고가 생겼다.

"외국 선원들과 같이 일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서로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일을 해야 해요. 그때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하급선원이던 현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한국 선원들을 몽둥이로 마구 때렸는데, 우리 선원들이 전부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헤엄쳐 도망왔어요. 기지에 찾아온 선원들이 치료를 받았지요."

그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고 회상한다.

"상륙비가 넉넉지 않으니 선원들이 현지 항구에 내려서도 충분히 놀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돈을 마련하려고 옷을 팔고 그랬죠. 한 번은 우리 배의 통신장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렸는데, 통신장이 말을 잘 하니까 현지인과 친해졌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그 집에 초대를 받아 파티문화란 걸 처음 접했죠. 그때까지 우리는 기껏해야 해변에 도시락 싸들고 가서 놀고 이랬는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죠. 그런 식으로 놀다가 현지 여성과 눈이 맞아서 혼인한 선원들도 있고 그랬지. 당시만 해도 그렇게 눌러앉아 사는 한국 선원들이 많았어요."

■육상근무의 어려움

나포될 당시의 정 선장.

1991년 귀국한 그는 두양수산에서 육상근무를 한다. 하지만 원양어선에서 일할 때보다 힘든 일이 더 많았다. 당시 유자망 어선들이 북태평양에 200척 정도 출어하면 6개월에 한두 명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북태평양의 무라사키(대왕) 오징어 조업은 굉장히 고되고 조업 강도가 셌어요. 나는 당시 본사의 수산과장으로 있었는데, 어선의 전보를 들고 선원 집에 찾아가서 아들이 죽었다고 통보하면 (유가족으로부터) 많이 맞았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죠. 자식 잃은 부모님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또 빈소를 차리면 회사 직원들이 유가족에게 얻어맞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죄인의 심정이었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그러다가 저는 과로로 쓰러져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2004년 5월에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항에 정박해 있던 201성경호에서 암모니아탱크 폭발사고가 터졌다. 그로 인해 선원 63명이 다쳤다.

"그 배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이었데, 선내 냉동시설의 암모니아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암모니아 가스가 주변으로 퍼져 날아갔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새벽시간이었고, 배에 베트남 선원 4명만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가스가 누출되면서 인근에 있던 한국 어선 7척 쪽으로 퍼졌습니다. 내가 사고를 수습하러 현지에 가서 한 달간 병원을 매일 돌아다녔어요. 다친 선원들이 8곳에 분산 치료를 받고 있었거든요. 그때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명규 선교사라는 분이 많은 지원을 해줬지요. 외국에서는 우리 대사관보다 오히려 민간에서 도움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는 원양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시대가 다시 오기를 바란다.

"그동안 내 가족을 먹여 살려준 고마운 직업이라는 생각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 원양어업은 기피업종이 되었죠. 그래도 아직까지 원양어업 사람들을 만나면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선진 해양국가들처럼 뱃사람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과거 원양어업 역군들이 국가 경제발전의 초석을 놨다는 것을 국민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원양어업의 미래를 걱정했다. 지금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약하지만, 국가식량산업이고 안보적 차원과 통일 한국에 대비해 북한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보탬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원양어업이 다시 각광받는 시대가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트롤 어업

1970년대 세계 주요 연안국들은 자국 이익과 자원보존·관리 등을 위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앞다퉈 선포했다. 이에 우리나라 원양 트롤어선들은 어장을 많이 잃었고, 입어조건도 매우 까다로워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어장은 다른 곳보다 입어계약과 입어조건 등이 비교적 괜찮았다. 입어료는 연간 척당 3만 달러 이내로 저렴했다. 게다가 자원 상태와 수리시설 규모, 유류보급 문제, 운반선 배선 관계 등이 다른 연안국들의 어장보다 편리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와 가깝고 시차가 크지 않아서 선상 업무에 불편함이 적은 어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조기, 새우, 갈치, 오징어, 한치, 민어, 도미, 가오리 등이 주로 잡혔다.

강성민 소설가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산학협력단,(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