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도 실력"이라 비웃던 정유라
- 그에게 온갖 특혜 제공한 재벌
- 정경유착·특권사회 민낯 드러나
- 분노한 민심이 촛불 추동력으로

- 민생안정·교육기회 확대 이뤄
- 양극화·계층 고착화 해소하고
- '공정사회'로 가자는 국민 열망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은 '법치'의 확인이었다. 법 위에 군림하던 대통령을 법이 끌어내린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우리 사회의 적폐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탄핵은 개혁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1600만 명이 촛불을 든 것은 국정 농단과 함께 양극화와 차별·엘리트의 특권이라는 고질적 병폐에 짓눌린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부산참여자치연대 김종민 공동대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상이 '어이없는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촛불이 타올랐다. 아직 대통령 파면 말고는 우리 개인의 삶이 나아진 게 없다"고 진단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선서하는 장면.

■ "돈도 능력"…일상의 배신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 씨의 딸 정유라(21) 씨는 촛불 민심을 타오르게 한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최 씨가 장막 뒤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동안 정 씨는 소위 '학사 농단'으로 이화여대에 특혜 입학했다. 중고생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시점이 이 무렵이다.

정 씨가 2014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정 씨는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면서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 욕하기 바쁘니 다른 거 한들 성공하겠니"라는 글을 남겼다. '금수저·흙수저' 표현이 큰 공감을 얻던 시점과 맞물려 국민의 분노가 타올랐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인 교수들은 정 씨가 시험을 보지 않거나 과제물을 내지 않았지만 알아서 학점을 줬다. 권력에 순종하는 엘리트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기업 역시 정 씨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 정 씨는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받아 말을 샀고 전지훈련 비용으로 썼다. '최순실 국정 농단'은 권력을 넘어 경제공동체로 뭉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실망과 환멸로 변했다. 지난 9일 닐슨 코리아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또 '공정한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계층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1.3%에 불과했다. 가능성이 10% 이하라는 답은 50.5%에 달했다.

■ 특권끼리 뭉친 '경제 공동체'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국제신문DB

"보통 사람은 아등바등 월급을 쪼개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그래도 정유라처럼 명문대에 갈 확률은 낮다. 어떻게 모았는지 모르는 막대한 돈을 가진 엄마는 세상만사를 휘둘렀다. 이런 '일상의 배신'을 목격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촛불집회에서 자주 등장한 발언이다.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사유 역시 특권이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탄핵심판 선고에서 "피청구인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보통 사람들은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 후 경찰서를 찾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한 검찰 수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부터 특검 수사가 끝난 지난달 말까지 박 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의 '성역'으로 존재한 셈이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사회는 공정사회의 첫걸음으로 양극화·계층 고착화 해소를 제안한다. 주요 개혁 과제를 보면 비정규직 권리 보장을 비롯해 경제·노동 분야에 집중돼 있다.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삶'이 보장돼야 교육 기회가 확대되고 계층 이동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현 수준의 최저임금으로는 '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안정'이라는 취지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체제 개혁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시민단체는 ▷재벌총수의 범죄수익 환수 특별법 제정 ▷골목상권 파괴하는 유통재벌 규제와 중소상인 살리기 입법 ▷순환출자에 의한 재벌총수 일가의 부당 경영 개입 금지 입법을 내놨다. 부산대 진시원(사회교육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정의는 노력한 만큼 결과는 누리되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선 박 전 대통령과 국정 농단에 연루된 재벌총수들을 단죄해 법적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