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월 참혹한 실상 목격
- 사진·영상 모으고 외부에 알려
- 7년 뒤 부산가톨릭센터서 전시
- 민주화 불꽃 다시 커지는 계기
-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 인연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이 7년 뒤 부산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의 주역이었다.

1987년 부산가톨릭센터에서 5·18 사진전을 개최한 박승원 신부. 박 신부는 "6월항쟁 당시 구속되거나 쫓기던 사람들을 노무현·문재인 변호사 등 인권 변호사들에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

18일 부산 금정구 오륜동에서 만난 박승원(77) 신부는 1980년 5월의 광주와 1987년 6월의 부산을 뚜렷이 기억했다. 박 신부는 1987년 6월 8일부터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에서 광주 사진전을 열었다. 전두환 정권의 감시에도 사진전을 찾은 행렬은 400m 떨어진 메리놀병원까지 이어졌다.

박 신부는 "상인은 물론 경찰도 참혹한 사진을 보고 '이게 나라냐'고 했다. 광주의 모습에 누구나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37년 전 부산 송도성당 주임신부였던 박 신부는 우연히 일본 방송을 보고 광주에서 큰일이 났다는 걸 알았다. 광주의 윤공희 대주교에게 돈을 전달하려고 멕시코 국적의 신부 1명과 함께 '광주 원정대'를 꾸렸다.

그가 목격한 1980년 5월의 광주는 '죽음의 도시'였다. "윤 대주교님을 겨우 만났는데 흐느껴 우시더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똑바로 정치하라고 이야기한 대가가 그렇게 무서웠다."

그는 서울로 향했다. 광주의 비극을 알리려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또 외신 기자들이 남긴 사진과 영상을 수소문했다. '광주'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광주를 찾은 박 신부는 1987년 6월 부산에서 5·18사진전을 열었다.

부산 시민은 분노했다. 서울에서 사그라져가던 6월 항쟁의 불꽃이 부산에서 다시 튀었다. 사진전을 계기로 부산 가톨릭센터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됐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노동자와 대학생 800여 명이 경찰에 쫓겨왔어. 그들에게 '보호막을 제공하는 대신 절대 폭력은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해."

박 신부는 당시 구속되거나 쫓기는 시위대와 부산의 인권변호사들을 연결해줬다. "민주화를 외치던 많은 부산 시민이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렸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인연을 맺은 게 노무현과 문재인이야."

박 신부는 문 대통령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6월항쟁 당시 이태춘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숨졌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측에 유족 위로금을 보내야겠다고 사정해 1000만 원을 받았어. 당시 문재인 변호사를 만나 이 돈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지."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광주 시민께 드리는 글'에서 "5공 군부 독재정권 시절 부산의 민주화운동은 '5월의 광주'를 부산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6월항쟁 전야 5월, 노무현과 제가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연 광주 비디오 관람회를 보려는 부산 시민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열기는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부산 가톨릭센터는 부산 6월항쟁의 중심이 됐습니다"고 했다.

박 신부는 5·18민주화운동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키웠다고 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서 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해. 넘어져야 다시 걸을 수 있고. 광주는 지금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의 밑거름이야. 촛불 집회가 그것을 보여줬잖아."

5·18 광주 사진전부터 6월 항쟁이 두 명의 대통령을 낳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 했다. "계속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어도 우리나라에 큰 어른이 됐을 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허망하게 간 게 아쉽지."

박 신부는 6·29선언을 계기로 평범한 신부로 돌아갔다. 2006년 은퇴하고 회동수원지 주변에 정착해 성서 원문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