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양이 꼬리를 왜 잘라야 하죠?
A. 고양이가 나간 뒤 문을 빨리 닫아야 난방비를 아끼니까요

- 구두쇠라는 자신의 약점도 풍자의 소재로 삼는 사람들
- 유머 박물관, 풍자 비엔날레, 농담꾼 대회, 실험풍자 극장…
- '웃음 때문에 세상은 지속된다'는 시구를 슬로건으로 삼은 도시

- 고향과 전통을 소중히 보전해 위트와 풍자, 스토리텔링의 원천으로 삼는 도시

불가리아의 도시 '벨리코(위대한) 타르노보'에서 가브로보를 가도록 권유한 것은 이미 거쳐 간 배낭여행자들이 남겨 둔 안내판의 메모였다. 그 메모들은 아르바나시, 가브로보, 에테르 등을 순서대로 추천하고 가는 방법까지 자세히 적어 놓았다. 어떤 메모는 게스트 하우스 입구의 책장에 있는 '가브로보 유머'(Gabrovo Humor)라는 책을 먼저 읽고 가도록 권유했다.

1975년 불가리아 가브로보에 문을 연 '유머와 풍자의 집 박물관' 앞에 돈키호테와 로시난테, 산초와 당나귀 조형물이 서 있다.

책장에는 눈에 쉽게 띄는 자리에 '가브로보 유머'가 2권이나 있었다. 손때에 너덜너덜 닳고 찢겨진 책은, 저자명과 출판사명이 '세계유산백과사전'으로 돼 있고 '가브로보, 불가리아 희극과 유머, 유머와 풍자의 집, 세블리에보'가 주제어로 되어 있었지만 발행연도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비교적 새것 같은 다른 한 권은 '가브로보 사람들에 관한 일화와 농담'을 부제로 하고, 코자레바(Veneta Georgieva-Kozareva)와 찬코바(Tatiana TSankova)가 저자였다. '불가리아 가브로보, 유머, 위트'를 주제어로, '가브로보 : 유머와 풍자의 집'이라는 출판사에서 2006년에 발간한 것이었다.

그 책들은 가브로보를 '불가리아 유머의 수도'로 명명하면서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유머도 소개하고 있었다.

'고양이 꼬리를 자르면 고양이가 밖으로 나갈 때 빨리 문을 닫고 방의 온기를 저장할 수 있다' '밤에는 톱니바퀴의 마모를 줄이기 위해서 시계를 정지시킨다' '당나귀에게 초록 안경을 씌워 키운다면 무엇이든 건초라고 생각하기에 주인은 사육비를 절약할 수 있다'….

■웃음을 연구하고 유머를 브랜드로

유머와 풍자의 집 박물관 전경.

가브로보는 유머를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로, 고양이에 관한 유머에서 '꼬리 잘린 검은 고양이'을 지역의 상징으로 채택하여 널리 선전한다. 그 선전은 지역의 역사적인 문화 전통이 유머에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브로보는 1972년 4월 1일에 연 '유머와 풍자의 집'을 1975년 박물관으로 개관함과 동시에 '독창적인 현대문화 연구소'를 설립한다. 그 연구소는 '웃음 때문에 세상은 지속된다'라는 풍자시인 레린(Radoy RalinBorn, 1923~2004년)의 시구를 슬로건으로 하여 전 세계에 걸쳐서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예술작품을 수집한다.

아울러 1973년 국제 유머 풍자 비엔날레, 1981년 국제 희극 영화 축제, 1985년 전국 이야기꾼과 농담꾼 대회 등을 개최한다. 1985년에는 불가리아 실험 풍자 다양성 극장을 개관하기도 한다.

유머와 풍자라는 단어는 지역의 모든 행사와 기관, 기구 그리고 지역민들까지 지배하게 된다. 지역민도 스스로 서로의 특성을 유머로 이야기한다.

"왜 가브로보 사람들은 냉장고를 사지 않습니까?" "냉장고의 문이 닫힐 때 냉장고 안의 불빛이 꺼지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왜 가브로보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램프를 켜고 끄고 합니까?" "사람들은 페이지를 넘기는 도중에도 에너지를 절약합니다." "왜 가브로보 사람들은 결혼식 중 양말만 신고 춤을 추나요?" "사람들은 이웃 마을(부촌인 세블리에보)의 음악을 듣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느낌이 와 닿지 않는데, 지역민의 특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고향과 풍속을 소중히 여기다

에테르 건축 생태환경 복합지구 민속촌의 전통 가옥.

마을을 가로지르는 얀트라 강을 따라 8㎞ 정도 가면 그 지역의 역사적 문화 전통을 재현한 에테르 건축 생태환경 복합지구에 이른다. 그 지구 자체가 지역 출신 건축가 라자르 돈코브(Lazar Donkov, 1908~1976년)가 1964년 9월 7일 설립한 야외 박물관이다. "고향을 떠나지 말고 옛 관습을 낮춰보지 마라"라는 그의 신조를 바탕으로 하여 박물관은 그 전체가 공동 주거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거리와 골목으로 이어지고 전통 가옥은 아래층의 작업실과 위층의 가족실로 되어 있다. 거리와 골목에는 하천이 흐르고 그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 곡물저장고, 빨래터 등이 있다. 작업실은 다양한 일을 하는 장인과 그 가게들, 철공상과 철물점, 무두장이와 모피상, 은세공인, 목공예인과 공예품 가게, 목수, 방직공 등으로 되어 있다. 가족실은 전통 의상과 의복들, 가재도구를 비롯한 생활 도구들을 모아 뒀다.

민속촌을 이루고 있는 거리와 골목, 전통 가옥의 모습은 전시관에서 사진과 그림으로 다시 재현된다. 그림 전시관은 지역 출신 화가와 그 작품을 간단한 이력을 붙여서 같이 보여준다. 그 가운데 마을의 산과 들, 가옥들, 거리와 골목을 풍경화로 그린 루시 간체브(Rusi Ganchev, 1895~1965년)의 그림은 유난히 돋보인다.

그 역사적 문화 전통을 미술, 음악, 영화, 만화, 웹툰, 스토리텔링 등을 기반으로 한 축제로 현대화하고, 박물관으로 보존하면서 도시 브랜드로 가꾸는 지역을 여행한 것은 우연이지만, 행운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도 도시의 자산이다

지역 면적이 부산의 반에 반도 미치지 못하고 주거 인구도 겨우 6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세계적인 도시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더구나 도시 스토리텔링 사업이나 축제가 5년 남짓한 세월을 지나고 있는 부산 지역 보다도 훨씬 빨리 전국 이야기꾼(story-teller)과 농담꾼(joke-teller) 대회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랄 뿐이다.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