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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1-1> 개금 '노인마을' 리포트- 혼자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빈곤의 섬에 남겨진 이들 "더 아프지 않고 죽는게 소원"

  • 권혁범 김영록 기자
  •  |   입력 : 2017-06-18 22:03:30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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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통의 65세 이상 노인들
- 이혼·사별 뒤 경제적 고통

- 30여 년 전 세상 등진 남편
- 20대 때 같은 날 숨진 두 아들
- 60년 피워온 담배 못 끊어

- 홀로 남은 삶 10년간 청소일
- 이젠 파킨슨병과 지독한 사투

호기심에 배운 담배는 아니다. 60여 년 전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했다. 입덧을 견딜 수 없었다. 희한하게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마시면 입덧이 멎는 것 같았다. 담배에 손을 댔다. 박미자(79·가명) 할머니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 수급비로 한 달 50만 원이 안 되는 돈을 받아 20만 원을 담뱃값으로 쓴다.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경남 합천에서 살았다. 남편은 군대에서 작업에 동원됐다가 뒤집힌 굴착기에 깔려 숨졌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보상금은 시댁에서 전부 가져갔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두 아들이 언제 죽었는지는 흩어지는 담배 연기보다 더 흐릿하다. 첫째가 22살, 둘째가 20살 때였나 보다.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덤프트럭에 부딪혔다.

혼자가 된 박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슈퍼마켓 카운터에서 물건 계산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다. 여기서 살다, 지금보다 더 아프지 않고 죽는 게 소원이다. 영세민이라 나라에서 초상 치를 돈 75만 원을 준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본지 취재팀이 셋방살이를 시작한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엔 65세 이상 어르신 218명이 산다. 전체 인구 876명의 24.9%, 4명 중 1명꼴이다. 어르신 218명 가운데 81명(37.2%)은 홀몸노인이다. 가슴속 풀지 못한 응어리가 이들의 외로움을 더 지독하게 만든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10통 마을 전경. 대단지 아파트 아래 푹 꺼진 지형이다. 김영록 기자

■고독의 틈새로 질병 스며들다

정순이(71·가명) 할머니는 젊어서 고무공장, 남편은 연탄공장에서 일했다. 남편은 술을 많이 마셨다. 가난과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20년 전 간 경화를 앓던 남편이 쓰러졌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그게 남편의 마지막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홀로 딸과 아들을 키워 시집·장가 보냈다. 10년 넘게 아파트 청소 일을 했다. 계속 몸이 뻐근하고 아팠다. 그때는 병든 줄도 몰랐다. 몇 년 전에야 알았다. 정 할머니의 몸엔 오래전부터 파킨슨병이 진행되고 있었다.

몸은 점점 굳어간다. 평생 가난과 싸우느라 한글도 못 배웠다. 정 할머니는 주 2회 방문하는 가사도우미(재가복지서비스)에게 부탁해 이제야 한글을 배운다. "조금만 더 젊었으면 마음껏 공부하면 좋겠어." 정 할머니는 매일 작은 상을 펴고 삐뚤빼뚤 한글을 쓴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양순호(76·가명)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전남에서 돈을 벌러 이곳으로 이사했다. "자식은 없다"고 했다. 자세한 사연은 말하지 않았다. 췌장암에 걸린 아내는 23년 전 양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기초연금 20만 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다. "쌀이 없어. 먹을 게 없어."

양 할아버지는 하루의 대부분을 무허가 슬레이트집 방 한 칸에 누워서 보낸다. "숨이 가빠 걷지도 못해. 담배꽁초 줍는 공공근로를 하다가 포기했어. 의사도 '치료가 어려우니 정말 아파서 죽을 것 같을 때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라고." 양 할아버지는 3년 전 폐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은 다니지 않는다.

■고생의 대가는 가혹했다

19살에 중매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물색없는 '한량'이었다. 그래도 이순덕(69·가명) 할머니는 딸을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난감공장 일, 막노동, 식당 설거지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렇게 경남 의령, 부산 서부민동 등지를 떠돌다 이곳에 무허가 집을 지었다.

19살에 결혼한 남편과는 19년 전 이혼했다. 남편은 "이혼하는 게 우리 집안 유전"이라고 우겼다. 황당하고 억울했다. 이혼만은 막으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버티는 이 할머니를 때렸다. 반대하는 자식들도 때렸다. 결국, 혼자 이 마을에 남았다. 이 할머니는 이웃에게 "사업하는 사위가 용돈을 많이 준다"고 자랑한다. 사실 사위의 용돈이 끊긴 지는 제법 됐다. 사위는 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다수는 '바람피우는 남편' 탓에 생고생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뭘 해보고 싶냐고? 딴 거 필요 없고, 좋은 신랑 만나고 싶어." 경로당에서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던 배명선(82·가명) 할머니는 "저런 남자를 만나야 해"라고 말한다. 중년의 남자 가수가 아내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중이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이 핀잔을 준다. "이 할매야 노래 가사가 그렇지, 저 가수가 그렇나."

배 할머니는 남편의 바람기를 막으려 강원도의 군부대까지 들어가 비닐하우스를 치고 살았다. 결혼 후 입대를 회피하다 강제 징집된 남편은 배 할머니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쯤 바람을 피웠다. 남편은 전역 후에 '두 집 살림'을 했다. 배 할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넷째를 낳았다.

더는 남편과 함께 살 수 없었다. 이혼했다. 26년이 지났다. 남편은 부산 해운대구 어디쯤 새로 얻은 아내와 살았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은 최근에 들었다. 배 할머니는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뼈를 갈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산 곳곳에 남편이 만든 건물이 많다"며 은근히 남편 얘기를 꺼낸다. 남편은 솜씨 좋은 목수였다.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사연 없는 이가 없다. 누구보다 고생하며 산 만큼, 남은 날을 활기차고 유쾌하게 보낼 권리가 있다"며 "이들은 단기간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서로 협동하고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후원=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개금3동주민센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10통 노인 생활 실태]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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