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팀, 개금 재생 첫 프로젝트
- 자원봉사자 80여 명 동참 '훈훈'
김선자(81·가명) 할머니는 집안으로 새 들어오는 빗물을 막으려고 수십 년 전 옥상에 노란 장판을 깔았다. 장판은 비 새는 걸 조금 막아줬지만, 이젠 물때 끼고 모기가 알을 낳는 골칫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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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주승철 사무처장이 개금3동 8통 박숙희(82·가명) 할머니 집 옥상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쿨 루프 작업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록 기자 |
박숙희(82·가명) 할머니 집 옥상은 겹겹이 발라 놓은 페인트가 세월을 못 이겨 들고일어났다. 옥상 한가운데엔 다리가 부러진 낡은 평상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벽돌이 잔뜩 방치돼 있다.
이옥남(85·가명) 할머니 집 한 평 남짓 좁은 옥상은 사용하지 않는 낡은 장독으로 꽉 찼다. 장독은 건장한 성인이 팔을 최대한 벌려도 끌어안기 어려운 크기다.
지금까지는 지난 22일 이전의 얘기다. 취재팀이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노인마을' 재생을 위한 첫 프로젝트로 '쿨 루프(Cool Roof)' 사업을 진행하자 이곳 어르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몰라보게 달라졌다. 어르신들은 남들에게 의존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쿨 루프 사업 하루 전 취재팀은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과 함께 페인트 바를 집들을 찾았다. 옥상의 짐을 옮기고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곳곳에서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이달 초 사전 점검을 위해 방문했을 때 옥상을 빽빽하게 메웠던 짐들이 흔적도 없이 치워졌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시멘트 조각들도 청소돼 있었다.
김 할머니는 짐을 치우러 온다는 소리를 듣고 혼자서 2시간 동안 옥상을 쓸고 닦았다. 김 할머니는 최근 골다공증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아 움직임이 불편하다. 자원봉사 학생들이 도착하자 장판 걷는 일도 거들었다.
박 할머니 집 옥상엔 그 많던 벽돌이 사라졌다. 큼지막한 비닐 밑에 모아뒀던 잡다한 물건들도 없어졌다.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평상만 하나 남아 있었다. 박 할머니는 며칠 동안 옥상에 올라 땀을 흘렸다.
이 할머니 집 옥상엔 취재팀조차 옮길 엄두를 못 냈던 장독이 하나도 없었다. 그 큰 장독들을 이웃의 도움을 받아 말끔히 정리했다. 취재팀은 사전 점검 때 어르신들에게 "짐 옮기는 거랑 청소랑 모두 저희가 할 테니 손도 대지 말고 계시라"고 당부했었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이 할머니는 "내 집이 더 나아질 거란 생각을 못 하고 살았다. 나이가 들고, 돈도 없고… 그냥 포기했었다"며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도와준다니 미안해서라도 가만있을 수 있냐"고 수줍어했다.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개금3동주민센터가 한 몸이 된 쿨 루프 사업은 어르신들의 참여 속에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22일 8통, 10통 20집의 옥상과 지붕이 시원한 하얀색으로 칠해졌다. 짐 정리와 청소를 포함해 이틀간 20집을 페인트칠하는 작업엔 80여 명이 동원됐다.
류승락 부산지역본부장을 비롯해 부산 울산 경남에서 일하는 국민연금공단 직원 50여 명이 10개 조로 나뉘어 땡볕 아래서 페인트를 발랐다. 녹색도시부산21은 예산 지원과 함께 전체적인 작업을 관리했다. 사회복지연대와 우리마을은 귀찮은 일을 도맡았다. 개금3동주민센터는 550㎏의 페인트를 배달하고, 폐기물을 남김없이 수거했다. '더 컬러 공간 디자인' 이석현 실장은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했다.
한여름 집안 온도를 4도가량 떨어뜨리는 쿨 루프는 8통, 10통 어르신들의 냉방비 부담을 줄여 '10만 원의 간극'을 좁히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녹색도시부산21 주승철 사무처장은 "어르신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놀랍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변화"라며 "덕분에 쿨 루프 작업 시간도 훨씬 단축됐다"고 말했다.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