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지난 22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마을에서 '쿨 루프(Cool Roof)' 작업을 하던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자원봉사자들이 본지 취재팀의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 마을 홀몸노인들은 평균 월 고정 소득보다 필수 지출 금액이 10만 원가량 더 많다. 쿨 루프는 이곳 어르신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선물하고, 냉방비 부담을 줄여 월 소득과 지출 간 '10만 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마련됐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기초생활비도 못받는 85세 할머니
- 자활의지없는 50대 백수 아들 탓
- 혼자 사는 노인보다 고달픈 생활
# 무허가 천막집 거주 84세 할머니
- 매일 폐지주워 1년 동안 모은 돈
- 이행강제금 내고 나면 빈털터리
# 8·10통 65세 이상 71가구의 실태
- 홀몸노인 월 고정소득은 42만원
- 주거비 등 필수 지출비는 52만원
- 기존 지원정책으로는 생계 불가
김봉숙(85·가명) 할머니는 본지 취재팀과의 심층 면담 때 "폐지를 줍지 않은 지 꽤 됐다. 예전엔 폐지라도 모아 팔았지만, 지금은 몸이 아파 힘들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홀몸노인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아니다. 함께 사는 50대 아들이 있다. '딱히 폐지를 줍지 않아도 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건 김 할머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취재팀이 김 할머니가 폐지 줍는 장면을 본 건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마을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다. 토요일 늦은 오후,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대형마트. 쪼그려 앉은 김 할머니는 기름기가 잔뜩 묻은 피자 상자를 맨손으로 쌓고 있었다.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은 옆을 무심코 지나갔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후. 경로당에 나온 김 할머니는 구겨진 3000원을 꺼냈다. 밀린 경로당 회비를 냈다. 회비 명부의 김 할머니 이름 옆에 드디어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어르신들이 파는 폐지는 ㎏당 100원을 쳐준다.
장남은 당뇨병을 앓다 10년 전 숨졌다. 남편과는 5년 전 사별했다. 지금 같이 사는 아들은 둘째다. 아들은 종일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한다. 군대를 다녀오고 3년이 지난 다음부터 아들은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다. 장가도 안 갔다.
김 할머니의 한 달 소득은 기초연금 20만 원과 장남 사망보험금 18만 원을 합쳐 38만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매달 10만 원 안팎의 각종 공과금 등 필수 경비를 낸다. 아들이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는 탓인지 특히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 당뇨병과 신장 질환이 있는 김 할머니는 매달 두세 차례 병원 치료를 받는다. 약값으로만 7만~8만 원을 쓴다. 틀니를 새로 할 때도 됐다. 최소 50만 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다 아들에게 용돈을 주고, 매일 세 끼 밥상도 차려줘야 한다.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나갈 구멍은 천지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노인은 홀몸노인보다 훨씬 고달프게 산다.
지난해 주변의 도움으로 5개월 동안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은 적이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국가는 근로 능력이 있는데도 자활 의지가 없는 아들에게 5개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아들은 법적으로 김 할머니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들은 김 할머니의 부양을 받는다.
다시 말하지만, 김 할머니는 홀몸노인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아니다. 함께 사는 50대 아들이 있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많은 걸 판단한다.
이 마을에서 최미순(84·가명) 할머니처럼 부지런한 사람도 없다. 26년 전 남편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날 때 병원비와 장례비로 집을 날렸다. 당시 손에 남은 돈은 600만 원뿐이었다. 600만 원을 털어 넣어 살던 집 바로 옆 한국철도시설공단 땅에 직접 천막으로 새집을 지었다. 지금도 무허가 천막집에 혼자 산다.
최 할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폐지를 모은다. 매일 목장갑을 끼고 테이프 등 상자에 붙은 이물질을 뗀다. 그다음 끈으로 폐지를 묶어 집 앞에 쌓아둔다. 어느 정도 분량이 차면 손수레에 실어 고물상에 판다. 최 할머니는 지난주 폐지 220㎏을 팔아 2만2000원을 벌었다. 하루 동안 2차례에 나눠 220㎏을 고물상에 실어 날랐다.
폐지 판 돈은 10원도 건드리지 않고 그때그때 저금통에 넣는다. 저금통은 1년에 딱 한 번 깬다. 매년 초 무허가 천막집 이행강제금을 내야 할 때다. 이행강제금은 33만 원가량이다. 매달 생활비는 기초연금 20만 원과 자녀가 보내주는 용돈 5만~10만 원에 맞춰 쓴다.
최 할머니처럼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 대부분은 고정 소득에 맞게 소비한다. 그달 지출이 소득을 넘을라치면 병원 가는 일을 한 번 건너뛰든, 반찬 가짓수를 줄이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10만 원의 간극'은 있다. 심층 면담(홀몸노인 40가구, 동거노인 31가구) 때 소득과 소비 금액을 밝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보니, 홀몸노인은 한 달 평균 42만5000원을 받아 52만6000원을 썼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 수급비 등 고정 소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10만 원'이 존재한다. 이 돈은 폐지를 줍든, 어디서 쌀을 얻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채워 넣어야 한다. 돈 나올 구멍도 없지만, 빌릴 구멍도 없다.
8통, 10통 홀몸노인과 동거노인을 합한 전체 면담 참여 어르신들의 한 달 평균 고정 소득은 61만7000원, 지출은 63만 원이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김일범 팀장은 "마을마다 어르신들이 처한 환경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8통, 10통 심층 면담이 갖는 의미는 크다"며 "마을 단위로 쪼개 어르신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이 '10만 원의 간극'을 극복해낼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pearl@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후원=개금3동주민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