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 불편한 82세 할머니는
- 84세 할머니가 부축해 오기도
- 50여 명 한곳 모여 함박웃음
박말순(88·가명) 할머니는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으로 이사 온 지 3년밖에 안 됐다.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후부터 혼자 살았다. 지금 사는 집은 아들이 구해줬다. 할머니의 일과는 매일 똑같다. 대부분 시간을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며 보낸다. 경로당에 가입은 했지만, 아직 다른 어르신들과 사이가 서먹해 거의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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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오후 개금3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마을잔치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조상영 웃음치료 박사의 행동을 따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전민철 기자 |
김옥희(84·가명)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점점 약해졌다. 지금은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김 할머니가 다른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방법은 없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하릴없이 집에서 누워 지낸다. 가끔 경로당에 가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다.
홀몸노인 비율이 37.2%로 매우 높은 개금3동 8통, 10통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무는 어르신이 많다. 집, 혹은 마을에서만 답답하게 지내는 어르신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 취재팀은 '노인마을' 재생 두 번째 프로젝트로 마을잔치를 준비했다. 잔치는 지난달 29일 개금3동 주민센터 3층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잔치의 막이 오르기 전까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바깥출입을 꺼리는 어르신들이 마을에서 제법 거리가 먼 주민센터까지 찾아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주민센터까지 와도 3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다. 잔치가 시작되기 직전 비까지 내렸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지난번 '쿨 루프(Cool Roof)' 사업 때처럼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도 취재팀의 걱정은 '괜한 짓'이었다.
어르신들은 마을잔치가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주민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1등으로 도착한 8통 김성숙(85·가명) 할머니는 "이웃과 어울려 놀며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일찍 집을 나왔다"고 했다.
일부 어르신은 끝까지 잔치 참여를 거부했다. 몸이 불편해 주민센터를 방문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즐겁게 노는 이웃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또 다른 어르신들이 앞장섰다. 이정선(84·가명) 할머니는 일찌감치 주민센터에 왔다가 자신보다 2살이나 어린 강명한(82·가명) 할머니를 데리러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혼자서 걷기 어려운 강 할머니를 부축해 주민센터로 돌아왔다.
마을잔치 내내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조상영 웃음 치료 박사가 함께 노래하고 율동할 때마다 손뼉을 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어르신들은 "몇 년 새 이렇게 많이 웃은 날이 없는 것 같다"며 "많은 이웃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좋다. 마음껏 떠들고, 배부르게 먹었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팀이 개금3동 8통, 10통에서 셋방살이를 한 넉 달 동안 단 한 번도 못 봤던 박말순 할머니의 웃음도 이날은 볼 수 있었다. 김옥희 할머니도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다"고 버티다 이웃 할머니 손에 이끌려 잔치에 온 강명한 할머니는 누구보다 가장 크게 웃었다. 집 안에만 있어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어르신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김영민 활동가는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은 큰 힘을 얻는다"며 "어르신들이 지속해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날 잔치에 8통, 10통 어르신 50여 명이 참석했다. 부산 사상구 모라동 ㈜리더스푸드 이동철 사장이 돼지고기 수육 100인분을 직접 삶아 보내왔다. 던킨도너츠 울산 동구 홈플러스점 장하연 대표는 어르신들이 간식으로 먹기 좋게 포장해 도넛 100인분을 선물했다. 노인이 주축이 된 부산 동구시니어클럽 '화통한 할매 도시락'은 저렴한 가격에 국과 밥, 반찬을 제공했다. 국민연금공단 류승락 부산지역본부장과 직원들도 잡채 100인분을 들고 행사장을 찾았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