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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1-3> 개금 '노인마을' 리포트- 혼자가 좋다는 '거짓말'

"왜 그냥 가" "들어와" "밥 먹고 가" 홀몸노인은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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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팀이 동네 골목 돌때면
- 열린 대문 사이 어김없이 들어와 쉬었다 가라는 소리

- 똑같은 얘기 하고 또 하고 혼자가 편하단 말 하면서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 아예 자기집 들어와 살란다, 빈방 공짜로 주겠다며…

- 동네 어르신 71명 중 11명, 종일 만난 사람 한명도 없어
- 대안가족 구성 고민해야

"왜 그냥 가?"

취재팀은 여느 때처럼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골목을 돌고 있었다. 빼꼼 열린 대문 사이로 걸걸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목소리만 들어도 분명 김영희(82·가명) 할머니다. 3층 슬래브 주택 중 1층,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 한 칸이 김 할머니 집이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10통 마을에서 박옥자(85·가명) 할머니가 본지 기자와 함께 걷고 있다. 박 할머니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고 글을 몰라 이웃과 소통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보행기 없이는 걸을 수 없어 혼자 외출하기도 쉽지 않다. 김영록 기자
"애 아빠, 총각(김 할머니는 취재팀의 두 기자를 이렇게 부른다) 이거 먹고 잠시 쉬었다 가." 김 할머니가 요구르트 2개를 내준다. 어렸을 적 일본에 살았던 얘기, 6·25전쟁 때 죽을 고생했던 얘기를 듣는다. 사실 열 번도 더 들은 얘기다. 그래도 김 할머니의 '무용담'은 횟수를 더할수록 조금씩 부풀려지는 맛이 있다.

김 할머니의 무용담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즘 대문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옆집 2층에 사는 최미자(85·가명) 할머니다. 복지관에서 치매 예방 교육을 받은 후 집으로 들어가던 길에 취재팀을 발견하곤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선 참이다.

"우리 집에서 커피 한 잔 먹고 가." 최 할머니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최 할머니는 젊었을 적 손재주가 좋았다. 거실 벽엔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글자를 십자수로 놓은 대형 액자가 걸렸다. 원래 엄청 큰 호랑이를 놓은 십자수도 있었는데, 남편이 "보기 싫다"며 내다 버렸단다. 남편은 5년 전 TV를 보다가 최 할머니가 커피를 타러 간 사이 갑자기 숨졌다.

최 할머니는 커피 대신 주먹만 한 참외 3개와 "유통기한이 남았는지 모르겠다"는 사이다 반 병을 내왔다. 취재팀은 참외 하나를 껍질째 반으로 뚝 잘라 숟가락과 함께 최 할머니에게 건넸다(최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참외 속을 긁어먹는다). 참외를 나눠 먹으며 내년 봄 결혼하는 최 할머니 손녀 얘기를 듣는다. 최 할머니는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손녀사위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다.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됐다. 일어서려는 취재팀을 최 할머니가 자꾸 잡는다. "날도 더운데 내가 냉면 시켜줄게. 먹고 가." 취재팀은 한사코 사양하는데, 최 할머니는 열 번도 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주문하면 금방 온다."

최 할머니가 굳이 냉면을 같이 먹자고 한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혼자 먹는 밥이 싫었거나, 본인이 냉면을 먹고 싶은데 1인분만 배달시키기가 미안했거나. 취재팀은 그런 최 할머니 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 했다. 사실 그날 취재팀은 이수미(84·가명), 손숙자(80·가명) 할머니와 따로 점심 약속이 있었다. 바로 전날 이·손 할머니가 취재팀에게 먹이려고 경로당에서 감자를 삶았는데, 취재팀은 눈치도 없이 "다른 데 또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떴었다. 뒤늦게 두 할머니가 밤새 섭섭해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취재팀은 그날 이·손 할머니에게 아귀찜을 대접하기로 했었다. 취재팀은 최 할머니 집에서 나와 서옥순(73·가명) 할머니 집에 한 번 더 '붙잡힌' 다음에야 이·손 할머니를 만났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취재팀이 지난 3월 초부터 개금3동 8통, 10통에 머물며 65세 이상 어르신 71가구(홀몸노인 40가구, 동거노인 31가구)를 심층 면담했을 때 자녀가 있는 홀몸노인 대부분은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읽은 어르신들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어르신들은 사람이 그립다.

방을 공짜로 줄 테니 들어와 살라는 어르신도 있다. 10통 성호선(84·가명) 할머니는 "뭐하러 그리 먼 데다 집을 구했냐"며 취재팀에게 틈날 때마다 집의 빈방을 보여준다. "여기를 사무실로 쓰든 마음대로 써라." 취재팀의 월세방은 8통에 있다. 성 할머니 집과는 직선거리로 1㎞ 정도 된다.

'함께하고 싶은 어르신'은 때로 위험도 무릅쓴다. 취재팀이 8통, 10통 마을잔치를 연 지난달 29일 오전. 개금3동주민센터 앞에서 잔치를 준비 중인 취재팀의 눈에 길 건너 저 멀리서 혼자 있는 박옥자(85·가명) 할머니가 보였다. 보행기를 밀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나오셨나. 혼자서 어떻게 나오셨지…." 취재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박 할머니는 혼자 산다.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한글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다 보행기가 없으면 걸을 수 없다. 혼자서 마을을 벗어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취재팀은 마을잔치가 끝난 다음에야 이웃 할머니를 통해 박 할머니가 그때 왜 그 위험한 길을 걷고 있었는지 이유를 들었다. "할매가 너거 줄라고 수박 사러 갔다 온다더라. 맨날 오는데 줄 게 없다고…." 정말 고맙고, 너무 죄송한 일이다.

사람이 그립지만, 어르신들이 만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심층 면담에 응한 8통, 10통 어르신 71명 중 "종일 만나는 사람 한 명 없다"는 응답자는 11명이었다. 경로당이나 마을 내에서만 하루 10명 이하의 사람과 마주친다는 어르신은 57명이었다.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혈연에만 의존하는 가족의 개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비슷한 처지의 어르신들끼리 서로 협동하면서 외로움을 달랠 '대안가족'의 개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후원=개금3동주민센터


권혁범 김영록 기자 pear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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