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가 철수…대체건물 못 구해
- 건강검진·웃음치료 등 사업 중단
- "활기 잃어…지자체가 도와줘야"

부산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은 한때 '시간이 멈춘 마을'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해안을 메워 생긴 곳이다. 일본군이 막사를 짓고 말 축사로 이용하면서 형성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란민과 노동자들이 모여 살며 부산의 근현대사를 함께했다. 지금은 2400여 가구가 산다.

	3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의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던 '마실'이 폐쇄돼 있다. 마실은 민간 주도 도시재생의 거점시설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2015년부터 매축지마을은 민간이 주도하는 국내 첫 도시재생사업장으로 주목받았다. 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이 건강·복지·문화센터 역할을 하는 마을관리사무소 '마실'을 개원하면서부터다. 마실은 재무상담이나 세탁·홀몸노인 돌보기까지 하며 지난 2년간 원주민들의 친구가 됐다.

그런 마실이 지난 5월 31일 폐쇄됐다. 지난 4월 건물주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며 비워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까지 나서서 조율했으나 건물주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마실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활동가들도 일단 철수했다. 대체 건물을 물색했으나 주변 임대료가 급등해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던 동네잔치나 건강검진·웃음치료 프로그램도 한 달 넘게 중단됐다. 노인들의 이불 빨래를 하던 세탁 사업도 멈췄다.

한순간에 사랑방을 잃은 매축지마을 노인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부는 우리마을 사무실로 전화해 울먹이기도 했다. 이태분(여·81) 씨는 3일 "마실 덕분에 마을에 활기가 돌고 외롭지 않았는데 없어졌다니 너무 허전하다"며 "다시 할 순 없는 거냐"고 되물었다.

마실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마을관리사무소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작은 복지관·보건소·주민센터의 개념을 더한 형태다.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관리사무소의 원조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운영비는 부산은행의 기부금 2억 원을 비롯한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지난 2년간 마을활동가들이 마음을 터놓자 원주민들도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청소를 하거나 노후화된 이웃집을 수리했다. 입소문을 타고 다른 도시도 벤치마킹을 했다. 최근에는 국토해양부의 마을재생 모범 사례로 선정됐다.

우리마을 박민성 지원단장은 "한창 주민들과의 관계 회복이 진행되는 시기에 마실이 문을 닫게 돼 안타깝다. 몇몇 도시재생 사업장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도 비슷하다"며 "부산시가 빈집을 매입해 재생 공간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2015년 기준 매축지마을은 2401가구에 4760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4.1%로 부산 평균인 14%보다 월등히 높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