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주 등 체포…성매수 76명 적발
- 위장결혼 밀입국 브로커도 구속

감금된 상태에서 불법 성매매에 동원된 태국 여성이 슈퍼마켓 종업원에게 '쪽지 신고'를 한 덕에 간신히 구조됐다. 쪽지를 받은 종업원은 용의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경찰에 제공해 성매매 알선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감금된 채 성매매하던 태국인 여성이 슈퍼마켓에서 종업원에게 몰래 건넨 쪽지. 어설픈 한국말과 영어·태국어로 "4층에 잡혀 있는 태국인"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5월 16일 새벽 4시20분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한 슈퍼마켓. 태국인 여성 5명이 생필품을 구매했다. 가게 앞에는 여성들을 감시하는 한국인 남성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음료수 하나만 계산대에 올려놓은 20대 초반 태국 여성은 슈퍼마켓 종업원에게 손바닥만 한 쪽지를 몰래 건넸다. 쪽지에는 'help the police' '경찰을 지원' '나는 건물의 4층에 잡혔다'는 서툰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위기 상황을 직감한 종업원이 건네받은 쪽지에 '112 call helping you'라고 적어 태국여성에게 보여줬다. 태국 여성은 감시 중인 한국 남성을 의식해 쪽지에 급히 '×' 표시를 하고 자리를 떴다.

종업원은 이날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쪽지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태국여성 일행이 물건을 사고 포인트를 적립할 때 썼던 휴대전화 번호를 쪽지에 기록해 경찰에 건넸다. 휴대전화 주인은 태국 여성들의 성매매를 알선한 이모(38) 씨였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 씨가 과거 유사 성행위 업소를 운영한 전력을 확인했다. 또 CCTV를 분석해 '철학관' 간판이 내걸린 슈퍼마켓 주변 건물의 4층을 태국 여성들이 감금된 장소로 추정했다.

이틀이 지난 18일 오후 5시45분. 경찰이 철학관 건물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준비하던 때 경기 오산의 한 외국인지원센터도 태국 여성이 SNS에 올린 글을 보고 "부산에서 태국 여성이 성매매에 동원되고 있다"고 신고했다.

SNS 글에서 철학관이라는 단서가 나오자 경찰은 즉시 철학관 건물을 수색해 업주 이 씨와 종업원 박모(24) 씨를 붙잡았다. 현장에는 태국인 여성 5명이 있었으며 피임기구와 성매매 장부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지난 1월 브로커에게 소개료를 주고 태국여성들을 채용한 뒤 사실상 감금한 상태에서 성매매를 알선했다. 이 씨는 성매수자에게 1회당 9만~16만 원을 받아 40%를 태국 여성에게 지급했다. 소개비 명목으로 첫 달 월급은 주지 않았다. '쪽지 신고' 여성은 마사지사를 하려고 한국에 들어왔다가 성매매에 내몰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브로커 김모(40) 씨와 성매수 남성 53명을 포함해 7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이 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전화번호 2만여 개를 토대로 성매매가 의심되는 남성 300명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2007년 9월부터 2009년 4월까지 태국 여성 8명을 국내 남성과 위장결혼시켜 한국에 밀입국시킨 뒤 마사지 업소에 종업원으로 소개해 6600만 원을 챙긴 김모(59) 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