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령 91세 강재순 할머니도 공연내내 좁은 의자서 허리 꼿꼿
- 여전히 하고 싶은 거 많은 ‘청춘’
김봉엽(79) 할머니의 어깨가 아리랑 노랫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춘다. 흥겨운 장단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공연 내내 손뼉을 치다가 이내 구슬픈 아리랑 노랫가락을 따라 부른다. 공연 진행자가 따라 부르라고 외치기도 전에 아리랑이 목에서 새어 나온다. 황원선(80) 할머니도 연신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인다. 일어나서 춤출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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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한반도 아리랑 환타지아’ 연주회를 감상하러 온 개금3동 8통 10통 할머니들이 좌석표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김영록 기자 |
취재팀은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버킷리스트’를 이뤄주려고 지난 19일 오후 어르신 14명과 함께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한반도 아리랑 환타지아’ 연주회를 감상했다.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성악가와 합창단 등이 부르는 아리랑 노랫소리가 하모니를 이뤘다.
이들 어르신은 자녀와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팍팍한 삶을 보내며 꿈도, 하고 싶은 일도 잊고 살았다. 음악회나 연극 공연 등 여가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날 연주회를 감상한 어르신 중 대다수가 음악회를 처음 봤다. 어르신들은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자식들이 공연을 함께 보자고 해도 “공연 같은 것 재미없으니 본인은 빼고 다녀오라”고 늘 말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어르신들은 공연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속마음을 보였다. 손뼉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르신들은 이날 하룻밤 꿈 많던 청춘으로 돌아갔다.
취재팀은 지난 3월부터 진행한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 71명(홀몸노인 40가구, 동거노인 31가구) 심층 면담에서 “30년 전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무엇을 가장 해보고 싶냐”고 물었다. 전체 면담 참가 어르신 중 절반 이상인 53.5%가 “젊은 시절 너무 바쁘게 살아 나이가 들어서도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전혀 생각 못 했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14.1%는 “여행을 가거나 음악 공연을 보러 가는 등 요즘 젊은이들처럼 여흥을 즐겨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날 8통 최고 연장자인 강재순(91) 할머니도 공연을 봤다. 고령에 두 시간 가까이 좁은 의자에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염려됐다. 부족한 체력에 혹시나 강 할머니가 피곤할까 봐 취재팀은 “혹시 지루하거나 힘이 들면 잠을 주무셔도 좋고 취재팀에게 말하면 언제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드리겠다”고 말했다. 취재팀의 걱정에 강 할머니는 역정을 내며 “아까운 공연을 보러 왔는데 끝까지 두 눈 딱 뜨고 지켜봐야지”라며 연주가 이어진 1시간 50분 동안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감흥에 젖었다.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지도 않았다.
다른 어르신들도 비슷했다. 공연 시간이 길어 힘들 법도 하지만 이날 공연을 관람한 어르신 모두 연주와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한 차례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남은 듯 어르신들은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배혜경 활동가는 “어르신들은 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씀하신다”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어색할 뿐, 어르신들도 젊은이들처럼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청춘’”이라고 말했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