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새마을경로당이 분주하다. 할머니들이 10㎏짜리 상자에 담긴 오이를 모두 채 썬다고 정신없다. ‘탁탁탁탁’ 도마 위 칼질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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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개금3동 10통 새마을경로당에서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직원 등이 콩나물비빔밥을 먹고 있다. |
할머니들은 새벽부터 경로당에 나와 오이 껍질을 벗겼다. 밥 짓기를 담당한 할머니는 혹시나 밥이 질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밥이 모자랄까 걱정돼 집에서 밥솥을 하나 더 챙겨 온 것이 ‘화근’이다. “야(밥솥)가 처음으로 집 밖에 나와서 그런지 긴장해서 김을 안 뿜어 낸다.” 밥솥 뚜껑을 열어 밥이 제대로 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한다.
사실 어르신들은 며칠 전부터 계속 바빴다. 연일 폭염경보와 주의보가 떨어진 더운 날씨에도 전통시장에 들러 장을 봤다. 쌀 오이 매운고추 꽈리고추 마늘 고구마줄기 등을 샀다. 그리고 경로당에 둘러앉아 3시간 동안 마늘을 다듬고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겼다.
어르신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준비한 이유는 하나다. 지난달 22일 개금3동 8통과 10통에서 어르신들이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도록 ‘쿨 루프(Cool Roof)’ 작업(본지 지난달 26일 자 5면 보도)을 한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직원들, 사회복지연대와 복지법인 우리마을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없이 살아도 받은 은혜는 절대 안 잊는다.”
어르신들은 며칠 전 직접 키우고 수확한 콩나물도 꺼냈다. 이날 ‘할머니 밥상’의 주요리는 콩나물에 고구마줄기와 김치, 고추장 등을 쓱쓱 비벼낸 무공해 콩나물 비빔밥이다. 여기에다 어르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반찬을 하나씩 만들어 한 상 가득 올렸다. 시원한 물김치와 오이냉국, 꽈리고추찜과 양념깻잎이다. 밥을 다 먹고 난 이후엔 손수 재배한 콩나물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선물했다.
거듭 설명하지만, 어르신들이 며칠간 정성스레 밥상을 준비한 이유는 하나다. 쿨 루프에 대한 보답이다. 이제 ‘빚’지고는 못 사는 어르신들이다. 사회공헌활동에 자주 참여해 본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직원들은 “자원봉사 이후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받기는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이날 할머니들이 준비한 밥상을 맛보려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사회복지연대, 우리마을에서 17명이 참석했다. 밥상을 대접받은 17명 모두 “진심으로 음식이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연금공단 류승락 본부장도 밥을 두 그릇 비웠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르신들도 신났다. 할머니들은 한입 가득 콩나물비빔밥을 문 청년들의 엉덩이를 예사로 두드렸다.
‘할머니 표’ 반찬·콩나물의 상품성도 확인했다. 다들 “밥상을 이대로 식당으로 옮겨 장사해도 대박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또 대부분 참석자가 “할머니들이 만든 콩나물과 반찬 등이 상품화된다면 반드시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마을 유동철(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표이사는 “어르신들이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