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량동 ‘화통한 할매도시락’
- 영주동 ‘화통한 할매밥상’
- 구청 위탁받은 복지법인이
- 60~70대 ‘직원’ 고용해 운영
- “일하러 갈 곳 있다는 게 기뻐”
- “내가 벌어 손주 용돈도 줘요”
- 자활 이룬 뿌듯한 경험담에
- 전력질주 할매들 자신감 얻어
- 적극성 보이며 ‘현장교육’ 성공
“할매들끼리만 모여서 일하는 데가 있다고? 그럼 구경하러 가야지.”
‘활기찬 자활공동체’를 꿈꾸며 전력질주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달리는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이젠 의욕을 부린다. 취재팀이 말 꺼내기가 무섭게 자발적으로 견학을 제안한다.
기왕에 하기로 마음먹은 일, 멋지게 잘하고 싶다. 지금도 “나이 많은 노인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쳐다보는 외부의 시선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싶다. 반찬을 만들고 콩나물을 키워 팔 때 어떤 시설을 갖추고, 어떤 걸 신경 써야 하는지도 배우고 싶다. 무엇보다 어르신 조합원들의 힘으로 이 모든 일이 진짜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싶다.
마침 가까운 곳에 할머니들이 도시락을 만들고, 밥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니 궁금증에 서둘러 채비를 했다. 지난 16일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마을을 벗어나 산복도로에 올랐다. 동구 초량동 ‘화통한 할매 도시락’과 중구 영주동 민주공원 내 ‘화통한 할매 밥상’을 견학하기 위해서다.
‘화통한…’은 구청의 위탁을 받은 복지법인 청광이 어르신들을 고용해 운영하는 공동작업장이다. ‘화통한…’은 협동조합이 아니고 여기서 일하는 할머니들 역시 ‘직원’이라, 조합원 모두가 ‘사장’이고 ‘주인’이 돼 스스로 협동해서 운영하는 전력질주협동조합과는 다르다. 그러나 ‘유쾌하게 일하는 노인’과 새 인연을 맺는 것만으로도 전력질주협동조합원 어르신들에겐 큰 힘과 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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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민주공원 내 ‘화통한 할매 밥상’ 조리실에서 식사 준비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김영록 기자 |
■ 호기심 가득했던 현장 견학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은 이날 오전 일찍 ‘화통한 할매 도시락’을 찾았다. 새벽부터 나온 할머니 직원들이 450인분의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칼질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견학 온 어르신들의 시선이 주방으로 쏠린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조리시설을 둘러본다.
어르신들의 마음이 바쁘다. 보고 배워야 할 게 많다. 다시 장소를 민주공원 ‘화통한 할매 밥상’으로 옮긴다. 주방에서 점심 준비에 한창이던 60·70대 할머니 직원들이 8통, 10통 어르신들을 반긴다. 잠시 짬을 내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어색함은 없다. 금방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된다.
할머니 직원들이 8통, 10통 어르신들의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오신 분 중에 막내가 75살이라고요? 형님들 겉보기로는 그래 안 보입니다. 우리보다 더 젊어 보이는구먼.”
옆에 앉은 할머니 직원 한 명이 “진심”이라며 한마디 거든다. “형님들 보니 경로당에 앉아만 계실 분들이 아닙니다. 작은 거라도 같이 어울려서 일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저는 자고 일어나면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고 싶습니데이. 형님들 다 본인 나이가 실제보다 한두 살씩 적다고 생각하시고 용기를 내이소.”
8통, 10통 어르신들이 “이 사람들(공동기획팀)이 협동조합을 하자는데, 정말 우리 나이에도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화통한…’ 직원 채원선(71) 할머니가 답한다. “저는 여기서 하루 4시간 반씩, 일주일에 3번 일합니다. 음식 만드는 데 힘든 건 전혀 없어요. (평생을 잘해온 일인데)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직원 이순선(71)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다. 손주들이 ‘할머니 최고’라고 할 때 기분이 참 좋다”고 하자, 10통 황옥희(80) 할머니가 월급이 얼마인지 끈질기게 묻는다. 황 할머니는 결국 대답을 들었다.
“형님들, 앞으로 주방에서 음식을 많이 하면 땅이 미끄러우니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보다 후각이 둔해서 가스 불이 켜진 걸 모를 수도 있어요. 가스 불은 매번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화통한…’ 할머니 직원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오늘부터 5살 더 젊게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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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화통한 할매 밥상’ 할머니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10통 박영수(84) 할머니는 누구보다 적극성을 보였다. 위생복을 빌려 입고 식당 조리실을 둘러보더니 “배수·조리 시설이 깔끔하다”고 부러워했다. “여긴 물이 참 잘 빠지겠네. 우리 마을에도 이 정도 시설이 있으면 (협동조합 운영을) 잘할 수 있겠다”고 자신했다. 박 할머니는 전력질주협동조합을 안정화한 후 올해 말쯤엔 마을에 사는 비교적 젊은 60대 할머니들도 조합에 가입시킬 계획까지 세웠다. 벌써 협동조합의 지속성까지 고민하는 박 할머니다.
8통, 10통 어르신들은 노하우를 공유하며 협동조합의 성공을 다짐했다. 10통 어르신들은 지난번 반찬 시식회(지난달 24일 자 9면 보도 ‘어울려 살아갈 준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8통 깻잎무침 비법을 궁금해했다. 깻잎을 무쳤던 8통 강명희(81) 할머니는 “모르겠다”며 부끄러워하다가도 “액젓과 마늘을 김치 담는 것처럼 해서 조금 달게 하고 양념 많이 올리면 맛있다”고 했다.
자신감이 생기니 ‘화통한…’ 할머니 직원들 앞에서 자랑도 했다. ‘콩나물 장인’ 10통 이수금(85) 할머니는 “우리가 키운 콩나물이 그래 좋은지 얘들(공동기획팀)이 큰 마트에 파는 것보다 맛있다고 자꾸 팔아 보잔다”고 뽐냈다. 박영수 할머니도 “콩나물 키워서 여러 사람 불러서 함께 먹었다. 꽈리고추 물김치에다 콩나물 비빔밥을 해서 먹었는데, 맛있다고 팔아보자네”라며 가세했다.
8통, 10통 어르신들은 ‘화통한…’ 할머니들이 차려준 밥상도 받았다. 메뉴는 불고기와 된장찌개다. 어르신들은 밥을 다 먹고 난 후 음식 맛을 평가했다. 또 이를 토대로 전력질주협동조합에서 만들 반찬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견학을 마친 어르신들은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10통 황원선(80) 할머니가 식당을 나서며 활짝 웃는다. “동생들이 신나게 일하는 걸 보니 나도 젊어진 것 같아. 오늘부턴 나도 75살이라고 생각하고 살 거야.” 이날 전력질주협동조합원 어르신들은 5살씩 젊어졌다.
권혁범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후원=개금3동주민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