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노소 꽃을 건네며 인사하는
- 이곳은 전체가 아름다운 꽃마을
- 조그만 가게와 가정의 창문서
- 유리병·장화 등에 담긴 꽃들이
- 화사한 얼굴로 행인을 맞는다

- 종류만 많거나 규격화되지 않은,
- 내 방식대로 만든 정원이 모여
- 펼쳐지는 도시의 꽃 축제
- 이곳의 자연은 그 자체로 특혜다

북유럽 발트 3국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을 여행하고자 하는 몇 년간의 계획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 찾아간 곳이다.

탈린 꽃 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에스토니아 탈린의 전경.

첫 방문지 에스토니아(Estonia) 수도 탈린(Tallinn), 어원을 따지면 ‘덴마크(Taani)의 도시(Linn)’라는 뜻이다. 탈린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역사지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97년 등재, 2008년 경계 조정)로 길을 나선다.

출발지 비루 게이트(Viru Gates)에 이르자 무스메 공원 언덕과 줄지어 늘어선 꽃가게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공원에서 만난 키스하는 연인 상.

공원 언덕에는 키스하는 조각상이 ‘나에게 키스하라’(Kiss to Me), ‘잠시 후 키스하라’(Kiss after Moment)의 이름으로 서 있고, 그 앞에서 키스하는 만큼 길고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꽃가게에는 여행자들은 없고 시민들로 붐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꽃을 가지고 다니는 시민들의 풍경은 서로 만나자마자 꽃을 건네며 인사한다는 에스토니아의 아름다운 풍습으로 전해진다.

게이트를 지나서 톰페아(Toompea) 언덕의 성으로 가는 길은, 중세에는 귀족의 길(Pikk Jalg, 긴 다리)과 평민의 길(Luhike Jalg, 짧은 다리)로 구별되었지만, 현재에는 꽃으로 인사하는 풍습만 전해지고 있다. 조그만 가게와 일반 민가의 입구와 창문 곳곳에 깡통이나 플라스틱 통, 유리병과 페트병, 심지어 낡아 다 떨어진 장화와 구두 등에서도 꽃은 화사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색깔 고운 웃음을 보낸다. 꽃의 웃음은 바람결을 따라 탑 광장(Tower’s Square)에서 성 밖으로 휘날리다가 축제의 현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 눈길 발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꽃 축제가 열리는 탈린 거리에서 만난 구두 화분.

탈린 꽃 축제(Tallinn Flower Festival). 플래카드와 걸개그림이 단출하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 옆 가죽구두, 단화와 장화는 자기 주인을 버리고 꽃의 생명을 지피는 화분으로 변해 방문객을 놀라게 한다. 방문객은 생명의 몸을 감싸고 있다가 칼로 벗겨져서 물기마저 빼앗기고 닳아 헤어진 몸뚱이로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구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가죽구두 화분은 꽃 축제가 놀고 마시고 떠들어대는 축제가 아니라는 듯, 넌지시 옆으로 눈길을 건넨다. 꽃은 자기만 보지 말고 친구들이 어울려서 살고 있는 정원을 보라는 듯 바람결에 몸을 눕히며 함께 모여 있다. 정원도 방문객들에게 어느 나라 정원은 어떤 식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에 집이나 동네에 조그만 빈터가 자기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를 문패 같은 팻말에 글로 보여주고 있다.

꽃을 이용한 설치 작품.

꽃 축제는 꽃의 종류를 되도록 많이 늘어놓는 전시회나 어느 나라, 어느 스타일로 규격화하여 관람하도록 요구하는 정원 박람회도 아니다. 꽃 축제는 그냥 놀고 있는 빈터에 어떤 꽃으로 어떤 정원을 어떻게 디자인하여 만드는지를 실례로 보여준다.

해마다 주제를 달리한 꽃 축제는 2009년부터 시작되어 2017년의 주제로 ‘가족 정원’과 ‘단색 정원’을 정한다. ‘가족 정원’은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며, ‘단색 정원’은 서로 다른 종류의 꽃이라도 하나의 색상으로 모일 수 있듯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정원 가꾸기는 탈린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Tallinn)만큼 오래된 것이다. 13세기 도시가 형성되면서 툼페아 성(Toompea Castle)의 건립과 정원 및 주변 녹지 가꾸기도 함께 시작된다.

정원.

■ 꽃과 정원으로 ‘스마트’한 시티

그 놀라운 전환이 된 곳은 카드리오르그 지역(Kadriorg, 일명 ‘캐서린의 계곡’)이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년 6월 9일~1725년 1월 28일)는 1724년 캐서린 1세(Catherine I, 재위 1725년 2월 8일~1727년 5월 17일)를 위해서 궁전과 공원을 짓는다. 이후 2006년 카드리오르그 공원 정보센터가 문을 열 때까지 복원과 재건의 과정을 거치고 2008년 탈린 역사지구로 편입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다. 이어 2009년 탈린 꽃 축제가 개최됨과 동시에 공원 전체가 축제 행사장이 된다.

탑 광장에서 열리는 꽃 축제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궁전, 박물관과 예술관, 공원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 공원(Rahva Park)의 루이게틱(Luigetiik, 민들레) 인공 호수와 ‘장미의 언덕’에서, 보통 공원(Regulaarpark)의 연못과 폭포, 화원과 의자에서, ‘높은 정원’의 활주로로 설치된 바로크 양식의 정원과 미라지 연못에서, ‘낮은 정원’의 분수대와 조각상들, 숲의 미로에서, 꽃 축제는 펼쳐진다.

탈린 꽃 축제는 에스토니아와 탈린을 검색하면 언제나 따라 붙는 수식어들 ‘노래하는 민족의 나라’ ‘스카이프(skype, 인터넷을 이용한 음성 통신 기술)의 개발’과 ‘노래혁명의 발생지’ ‘세계 10대 스마트 시티(최신 정보통신기술을 구축하여 도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시민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하는 도시)’로부터 자유롭다. 탈린은 ‘꽃과 정원의 도시’로, ‘도시를 꽃과 숲의 정원으로 만들어서 시민에게 자연의 혜택을 제공하는 스마트 도시’로 새롭게 다가온다. 부산은 어디쯤 가고 있나?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