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의 수도 ‘후에’
-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역사 지켜낸 흔적 남아

- 240년 전 지어진 기와지붕 교각에 앉아
- 절로 노래가 나오는 강과 들판을 바라본다

- 어디서든 시를 읊는 마을 주민의 노래가
- 귓가에 맴도는채로…

베트남 후에(Hue)로 떠난 여행은 부산에서 다낭(Da Nang)까지 처음으로 취항하는 저가 비행기의 할인행사로 갑자기 다가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취항 노선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인 호이안 고대 도시(Hoi An Ancient Town, 1999년 지정)와 후에 기념물 복합지구(Complex of Hue Monuments, 1993년 지정)를 둘러볼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가 1990년 문화재로 지정한 탄 토안 마을의 기와지붕 다리.

자정이 지난 무렵 다낭 국제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후에의 여행자 거리 프랑스 지구(France Quarter)이다. 향강(Perfume River) 강변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 여행가이드 빌딘(Bill Dinh·38)과 함께 탐짱(Tam Giang) 라군(Lagoon, 해안이나 해저의 퇴적물이 파도나 연안 해류의 작용을 받아 형성된 석호)으로 가는 행운이 찾아온다.

■노래를 불러주는 할머니

	여행에서 만난 베트남 할머니가 도롱이를 쓰고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취향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는 랑 자 바우(Lang Xa Bau) 마을 장터에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한 농가로 걸어 들어간다. 농가는, 곧 바스러질 듯한 폐가도, 갓 지어 거푸집 흔적이 있는 슬래브 집도 아니다. 베트남 마지막 응우옌 왕조(Nguyen, 1802년~1945년)의 수도로서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 12월 19일~1954년 8월 1일, 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의 폭풍을 맞고서도 견뎌낸 낡은 기와집이다.

집안에 들어서자 경작 도구(쟁기, 괭이, 써레, 쇠스랑 등), 제초 도구(갈퀴, 낫, 칼 등), 관개 도구(양동이, 물막이 등), 탈곡 도구(홍두깨, 고무래, 탈곡기 등)으로 정렬해 놓은 농사 기구들이 오랜 연륜을 자랑하고 있다.

식구들은 논으로 나가고 집안을 지키고 있던 할머니는, 그 친구가 건네는 말(추측건대 한국에서 온 자기 친구라고 소개한 듯했다) 말을 듣고는 집안의 도구를 이용하여 노래를 곁들이면서 여러 동작을 재현해 보여준다. 한 손으로 그네를 흔들고 다른 손으로 손 부채질을 하며 자장가를 불러서 아이를 잠재우는 모습, 도롱이를 쓰고 노래를 부르면서 비 오는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노래를 부르면서 물수레를 돌리거나, 방아를 찧거나 하는 모습.

그는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자기도 어릴 적에 들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자장가 ‘좋은 밤 잠’이라고 말해준다. 그 노래는 모내기를 마치고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기에게 먹이겠다는 내용이란다.

■기와지붕 다리의 사연

	탄 토안 기와지붕 다리 입구.

농가를 나와 후앙 쿡 강변(Hoang Quoc River)을 따라서 걷다가 탄 토안 기와지붕 다리(Thanh Toan Tile-Roofed Bridge)에 이른다. 다리는 1990년 7월 14일 베트남 문화부에 의해 ‘국가 문화 유적’으로 인정된 만큼 오랜 역사 속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는 1306년 무렵 푸 쑤안(Phu Xuan, 후에의 옛 지명)이 형성되면서 이주민들의 이입으로 1471년 무렵 탄 토안 마을이 새로운 정착지로 확장되는 데서 비롯된다. 이주민들 가운데 중부 지역에서 온 진(陳)씨 가문(the Tran family)의 6대 손녀 트란 티 다오 (Tran Thi Dao)가 1776년 다리를 건설한다. 다리는 길이 43ｍ, 너비 14ｍ에 2열 난간과 나무로 된 플랫폼 그리고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다.

다리만큼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녀가 마을 사람의 편의를 위해 다리를 세워 기증하자, 당시 르 히엔 퉁 왕(King Le Hien Tong, 1717년~1786년)은 지역 토산물의 공납을 면제해 준다.

고위 관리의 아내로서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마을 사람들을 돌본 그녀의 이야기는 후에 축제(Hue Festival)로 이어진다. 다리에서 축제의 개막식과 ‘시골 축제 합창단’의 개막 공연, ‘시(詩)의 밤’과 ‘시골 장터 축제’도 열린다.

■그 가사, 귓가에 맴도는 듯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길에 만난 강변 마을.

다리의 역사 속에서 숨어 있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누가 더 빨리라고 할 것도 없이 더위를 식혀줄 가게를 찾아 나선다. 냉커피와 아이스크림이 더위를 조금이라도 쫓아내어주고, 탐짱 라군으로 가는 배에 올라탈 때까지 그는 여전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느꼈는지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은 가게 앞 물통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게 여주인의 사진이다. 그 제목은 ‘다리에 대한 시 전문가 물장수 응우엔 티 캄(Nguyen Thi Kinh’)이다. 손님이 물이나 음료수를 사러 가게에 오면 그녀는 즉흥적으로 시를 읽어준다고 한다.

그녀는 ‘여기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다리, 강, 들판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 시를 즉흥으로 노래한다’ 하면서 ‘나는 현장을 보고 노래를 하고 만든다’라고도 한다. 그녀의 노래 가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아름다운 다리의 절곡/다리 이름 탄 토안/녹색 나무 박물관을 보는 바람을 마시는 다리/나는 시골의 다리에 있다’.

라군에 도착하여 여행의 행운으로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넓은 호수를 바라본다. 저 멀리서 요산 선생님이 ‘사람답게 살아가라’, 김중하 선생님이 ‘시가 뭐지?’ 하며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들려온다. 탄 토안 마을에서 다시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