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3-4> 대안가족, 혈연을 넘어- 한국형 로푸키리 달린다

노인들 의지가 만든 헬싱키의 기적, 부산도 문제없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고령화 먼저 겪은 헬싱키
- 노인 자발적 공동체의 탄생
- 개금3동 대안가족과 닮은꼴

- 당장 함께 모여살 순 없어도
- 가까이서 살며 서로 돌보고
- 센터서 생산활동·취미생활
- 공동체 회복하는 첫 출발점

“우리는 작고, (노인끼리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없고, 몹시 가난했지만 강한 의지와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삶을 스스로 지키고자 합니다. 이게 바로 ‘마지막 전력질주’랍니다.”
   
핀란드 헬싱키의 노인 주거·생활공동체 코티사타마(제2 로푸키리)에 입주한 어르신들이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통, 10통 전력질주협동조합 ‘친구’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
핀란드 헬싱키의 노인 주거·생활공동체 로푸키리(LOPPUKIRI·본지 지난 18일 자 8면 보도)에 입주한 어르신들은 낯선 취재팀을 반기며 이렇게 인사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온 손님과 만나는 일이 행복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이니까요.”

로푸키리 입주 어르신들의 자부심은 ‘작은 가족(Little Family)’이라 부르는 든든한 배경에서 나온다. 지난주 보도에서 소개한 것처럼 10~12명으로 구성된 작은 가족은 함께 식사 메뉴를 정하고, 장보고, 밥하고, 공용 공간을 청소하고, 운동하고, 취미를 즐기며, 저녁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이들은 로푸키리를 ‘스스로 찾아낸 노년의 대안’이라고 자신 있게 내세운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전력질주협동조합 어르신들이 추진하는, 혈연을 넘어선 ‘대안가족’의 모델로 삼을 만하다. 물론 우리가 로푸키리의 시스템을 당장 완벽하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공동기획팀은 지난 7개월 가까이 개금3동 8통, 10통에 살면서 이곳 어르신들을 통해 대안가족의 희망을 봤다. 그리고 이 희망을 구체화했다.

■똑같이 달려온 길

   
로푸키리 공동조리실에서 입주 어르신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직항 거리로 7300여 ㎞. 부산과 헬싱키의 거리는 멀고도 멀지만 그동안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펼쳐온 전력질주는 로푸키리의 탄생 과정과 매우 닮았다.

핀란드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로 인한 각종 사회 문제에 직면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이미 2000년 15.0%를 넘었다. 노인 인구 비율이 전국 13.6%, 부산 15.4%인 2017년(1월 기준 통계청 자료)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핀란드 노인 인구 비율은 2010년 17.5%에 달했고, 2020년엔 22.6%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통계청은 앞으로의 노인 인구 비율을 2030년 25.6%, 2040년 26.3%, 2050년 27.3%, 2060년 28.8%로 예측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빨라 노인 인구 비율이 2030년 24.5%, 2040년 32.8%(통계청 장례인구추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지 천국’ 핀란드도 1990년대 불황이 장기화하자 노인에 대한 서비스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곧장 노인 고립과 자살이 급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로푸키리는 노인이 직접 만들어낸 대안이었다. 언제까지 정부 정책에만 기댈 수 없었다. 로푸키리 입주 어르신들은 “2000년까지 우리에겐 대안이 없었다. 자율적이고, 활기차고, 서로 도우며, 우리 삶을 스스로 결정할 새로운 가족이 필요했다. 우리의 꿈과 의지가 결국 기적을 이뤄냈다”고 입을 모은다.

로푸키리가 탄생한 2000~2006년 핀란드 사회는 빈곤, 사회적 배제, 자살, 고독사에 시달리는 지금의 한국 노인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이 지난 3월 초부터 반년 넘게 달려온 길은 ‘한국형 로푸키리’를 세울 출발점이다.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은 전력질주협동조합을 토대로 활기찬 자활공동체를 구성했다. 행정이나 시민사회가 주도하지 않았다. 오로지 어르신들의 자활 의지가 만들어낸 성과다.

개금3동 8통, 10통 어르신들의 전력질주에 최대 걸림돌은 주변의 편견이었다. 이를 극복해내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노인은 주는 것만 받는 의존적 존재다. 자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편견이 어르신들의 전력질주를 잠시 멈추게 하기도 했다.

로푸키리를 설립한 핀란드 어르신들이 겪은 시련도 같다. 로푸키리가 추진될 때 판란드에선 “핀란드 사람들은 결코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어” “노인끼리 생활한다고? 불가능한 프로젝트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군”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망설이거나 포기하고 떠나는 예비 입주자들이 늘었다. 로푸키리 입주 어르신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때때로 스트레스와 불안, 걱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핀란드 사람들은 노인을 단순한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로푸키리를 계기로 헬싱키엔 2015년 ‘제2 로푸키리’인 코티사타마(KOTISATAMA)가 생겼고, ‘제3 로푸키리’ 설립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로푸키리를 통해 편견이 사라지면서 국가의 정책 방향도 바뀌었다. 핀란드 정부는 노인 스스로 주체가 돼 건강한 삶을 누리며 자활하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돌렸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일

   
이들이 직접 만들어 내부에서 판매하는 양말.
달려온 길이 같으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로푸키리 입주 어르신들은 ‘공동 주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주거공동체 속에서도 10~12명 정도 소규모의 ‘작은 가족’을 강조한다.

이들이 밝힌 이유를 가감 없이 옮기면 이렇다. “공동 주거는 나눔과 참여, 공유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거공동체 속 ‘가족’의 크기는 적당히 작아야 한다. 빈번한 상호 교류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작은 가족’이 효율적이다.”

이는 우리가 개금3동 8통, 10통에서 전력질주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대안가족을 추진하는 이유와 통한다. 그동안 관 주도로 진행돼온 마을 재생 사업처럼 수백~수천 명에 이르는 마을 단위 공동체는 구성하기도 어렵고, 당면한 홀몸노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헬싱키시가 저가로 제공한 땅에 아파트를 지은 로푸키리처럼 개금3동 8통, 10통 대안가족이 당장 한 집에 모여 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8통, 10통 어르신들은 이 마을에서만 평균 35년을 살았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 노인 밀집 빈곤 지역의 형태도 비슷하다. 이런 점을 잘 활용하면 소규모 대안가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만 잘 형성하고 경제·취미·여가활동을 공유한다면, 가까이서 살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구조다.

경제·취미·여가활동을 함께할 공용 공간은 필요하다. 이 공간은 개금3동 8통 창고를 리모델링해 다음 달 말 또는 오는 11월 초께 탄생할 대안가족센터가 책임진다. 대안가족센터엔 공동 조리실도 들어서 전력질주협동조합의 생산활동을 돕는다. 대안가족센터는 또 개금3동 어르신을 대상으로 합창단 등 취미·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소규모 대안가족을 활성화해 공동체를 회복하는 역할도 한다.

부산시의 시범사업으로 진행될 대안가족센터는 ‘시민이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리마을’이 맡아 관리하며, 자체적으로 마을 리더를 양성해 5년 후 주민에게 통째 넘겨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티사타마 주민대표 마이렌 퇴른비스트(65) 씨는 개금3동 8통, 10통의 대안가족 사업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두려워할 것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안가족 구성원을 너무 많게 해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 모이고 함께 밥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공용 공간은 꼭 필요하다”며 “전력질주협동조합 생산활동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다. 코티사타마 입주 노인들도 지금은 취미활동만 하지만 조만간 영리활동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고 말했다.
   

헬싱키=권혁범 김영록 기자 pearl@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공동 기획=사회복지연대, 복지법인 우리마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 녹색도시부산21추진협의회 ▷후원=개금3동주민센터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3. 3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4. 4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5. 5[도청도설] if, 손아섭
  6. 6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7. 7[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8. 8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9. 9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10. 10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1. 1[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4. 4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5. 5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6. 6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7. 7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8. 8‘남북 MDL 상호확인·군통신선 복원’ 정부, 군사회담 北에 제안
  9. 9김민석, 소방노조 만나 “정책·예산으로 안전·처우 개선” 약속
  10. 10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3. 3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4. 4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5. 5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6. 6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7. 7[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8. 8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9. 9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10. 10"해양 위협하는 발전소 온배수, 5년간 바다에 3700억t 배출"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2. 2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3. 3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4. 4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5. 5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6. 6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7. 7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8. 8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9. 9[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10. 10[속보]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오세훈 2심 무죄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57년 평생 심한 말더듬에 고통…소통 연결고리 이어주길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