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낸 뒤 아동 납치극까지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의 느린 사건 대응 탓에 하마터면 아동에 심각한 피해를 줄 뻔했다.
14일 부산 기장경찰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낮 12시15분 기장군 정관중학교 앞 도로에서 정모(54) 씨가 몰던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인 스파크 승용차와 투싼 승용차 오른쪽을 잇따라 들이받았다. 정 씨는 사고현장에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이후 정 씨는 이날 오후 2시45분 사고지점에서 2㎞ 떨어진 정관도서관 앞에 있던 A(10) 군을 위협한 뒤 500ｍ가량 끌고 갔다. 당시 정 씨는 벽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이를 본 시민의 신고로 오후 2시52분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정 씨는 “불안감 탓에 아이와 함께 있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정 씨는 24년 전 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계속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경찰이 뺑소니 현장에서 적극적인 수색으로 정 씨를 검거했다면 A 군 납치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인이 신고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었다. 주민 박한결(여·34·부산 기장군 기장읍) 씨는 “경찰 대응이 안일했다. 뺑소니도 큰 사고인 만큼 신고를 받고 곧바로 도주한 범인을 잡았어야 했다”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정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A 군을 해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며 경찰을 성토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정영인(정신과) 교수는 “조울증 환자는 기분이 고조되면 정상인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엉뚱한 과대망상에 빠질 수 있다”며 “돈도 없는데 돈을 펑펑 쓰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