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투 운동 확산에 재조명

- 성추행 혐의 시인협회장 논란에
- 박범신 소설가 성추행 재조명 등
- 문단 내 성폭력 문제 재점화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영미(57·사진) 시인이 지난해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불씨를 댕겼다. 최영미의 시 ‘괴물’은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시인 ‘En’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최 시인은 이 시에서 En을 두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고 썼다. 이어 En이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것을 봤다”며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며 권력 앞에 침묵하는 문단 현실을 개탄했다.

En으로 지목된 고은(85) 시인이 지난 6일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는 입장을 내놓자, 최 시인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구차한 변명”이라며 “(En은)상습범이다.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단의 성폭력과 관련해 “내가 등단할 무렵에는 거의 일상화돼 있었다”며 “(성적 요구를) 거칠게 거절하면, 그들은 반드시 보복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스러져간 여성 문인이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7일 인터넷에는 최 시인을 응원하고 문단 현실을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류근 시인은 실명을 언급하며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며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조차 얼마나 되나”고 성토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줄곧 제기돼 왔다. 출판계의 한 여성은 2016년 소설가 박범신(72) 씨의 성추행을 SNS를 통해 고발했다. 같은 해 배용제 시인(54)은 자신이 실기교사로 재직하던 고교의 미성년자 여학생 5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시인협회가 성추행 전력이 있는 시인을 회장으로 선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인협회장으로 선출된 감태준(71) 시인은 중앙대 교수로 있던 2007년 제자 성추행 혐의로 고발돼 이듬해 1월 해임됐다. 피해자 진술이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교수 해임을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에서는 ‘의심할 만한 처신을 했다고 볼 정황이 있고 또 다른 성추행은 사실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패소했다.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