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에 대화 종용 2차 폭력도
- 부산시에 보고 없이 ‘쉬쉬’ 처리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부산의 한 공공기관이 사내 성폭력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해당 기관은 상부기관인 부산시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가해 직원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해 물의를 빚고 있다.

부산시 출자·출연기관인 재단법인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은 최근 여직원 2명의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A 팀장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12일 밝혔다.

정보산업진흥원 측은 “지난달 성폭력에 대한 신고가 2건 들어왔고, 피해 여직원들로부터 ‘가해 직원을 그만두게 해달라’는 요청을 들은 즉시 변호사 및 노무사와 상담해 해당 팀장의 사표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여직원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가해자 사표만 받으면 된다고 해 그렇게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에도 A 팀장의 성폭력이 있었고, 피해 여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는 등 피해자가 더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데도 A 씨는 파면이나 해임과 같은 직권면직이 아닌 의원 면직으로 처리됐다.

정보산업진흥원 측이 이 과정에서 사내 성폭력 문제를 축소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복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해당 여직원이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간부급들은 대수롭지 않은 문제를 키우려 한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 B 씨는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A 팀장과 이야기를 잘 해봐라”며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도 현재 사표를 냈으며, 아직 수리는 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주장에 B 씨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 사표를 낸 건 원래 그만두려 했기 때문이며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정보산업진흥원은 관리·감독을 하는 상부기관인 부산시에 사내 성폭력 사건 및 처리 과정을 보고하지 않았다. 국제신문이 취재에 들어가자 그제야 시는 실태를 파악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담당 ICT융합과는 “매년 지도점검을 하는데 주로 사업이나 예산 집행을 보고, 인사 부문은 기관장 권한으로 두다 보니 제대로 관리가 안 됐다”며 “앞으로 성폭력 등 인사관리상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보고하도록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시 이병석 감사관은 “시 업무를 대행하는 공공기관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해당 기관에 대해서는 근무·복무·공직기강 등에 한정해 특별감사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처벌 없이 사표만 수리한 과정이 과연 적절했는지 등을 살펴보며, 이 기회에 부산시 19개 출자·출연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인사관리에 관한 특별감사를 벌이겠다”고 설명했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은 시의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육성사업을 위탁 수행하는 공공기관으로 연간 예산이 총 274억 원에 달한다. 직원은 계약직까지 포함하면 90명에 이른다.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