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 생전 뜻에 따라 묘소 이전
- 남과북 이념적인 문제를 떠나
- 음악적 업적 제대로 평가돼야
- 통영음악제 개막식 맞춰 추모식
- 개막작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유해가 지난 20일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 영원히 안장됐다. 고국을 떠난 지 49년 만에, 독일 베를린에서 타계한 지 23년 만에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통영시와 통영국제음악재단은 30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식에 맞춰 유해 이장 추모식을 갖고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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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당 대표가 29일 윤이상 선생의 유해 이전 의미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주제인 ‘귀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베를린 카토우 공원묘지에 묻혀 있던 선생의 유해 반환을 성사시키는 데는 통영국제음악당 플로리안 리임(50)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 출신인 그는 선생의 유해를 모셔 오자는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땐 찬성하지 않았다.
“독일 입장에서 보면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이전해갈 경우 중요한 자산을 잃게 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유족과 통영시의 간절한 뜻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음악가로 존경해온 고인이 생전 그토록 원했던 고향 땅에 묻히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는 독일정부와의 가교 역할에 기꺼이 나섰다. 선생의 유해는 당초 국제우편 항공편으로 이송될 예정이었으나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그가 직접 모셔 왔다.
“윤이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국가적 중요한 자산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념적 문제를 떠나 이제는 그의 음악적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리랑’이 남과 북에서 모두 즐겨 불리듯 그의 음악도 남과 북, 양쪽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길 바랄 뿐입니다. 윤이상에게는 남과 북이 모두 조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의 묘소는 통영국제음악당 야외쉼터에 봉분 없이 땅 밑에 유해를 모시고 그 위에 베를린 묘지에 있던 표석을 그대로 옮겼다. 표석에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새겼다.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한다는 의미로 연꽃을 상징하는 뜻이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앞으로 윤이상의 일생과 음악, 생각 등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귀향’(Returning Home)이라는 주제로 30일 막을 올리는 통영국제음악제다.
“귀향이라는 주제는 유해 이전이 최종 결정되기도 전인 지난해 여름 이미 정했어요. 고향에 그토록 돌아오길 원했던 윤이상의 간절했던 마음을 음악을 통해 그려내고 싶은 의도로 정했지요. 근데 우리의 의도가 간절했는지 유해 이전이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음악제 개막일에 맞춰 영원히 통영에 안장되니 이보다 더 극적일 수가 있나요.”
통영 섬을 모티브로 제작된 음악제 포스터도 유해 이전 결정 전에 제작됐다. 선생은 1994년 일본을 찾아 배를 타고 먼발치서 통영을 보고 울며 돌아갔고 그 이듬해 11월 베를린에서 영면한 아쉬움을 못내 그리워하며 담은 것이다.
음악제 개막 작품은 윤이상의 1981년 작 ‘광주여 영원히’다. 조국을 그리워했던 작곡가가 조국의 근대사를 직시한 작품이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특별기획한 음악극 ‘귀향’은 세계 초연된다.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길 원했던 선생의 염원을 담아 몬테베르디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향’에 한국 전통 가곡을 접목했다.
리임 대표는 대학까지 첼로를 전공하며 어릴 때부터 윤이상 음악을 접하며 자랐다. 이후 음악 전문경영인 코스를 밟아 통영에 오기 전 일본에서 10년간 음악당을 운영했다. 2014년 통영국제음악당이 개관하면서 국제 공모를 통해 초대 대표로 취임한 후 지난해 재임됐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