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은 1947년 9월 1일 지령 제1호 신문을 내면서 출항했다.

	일러스트=김자경 기자

71년 전, 민족은 일제의 강점에서 막 해방돼 희망과 새 기운이 넘쳐 흘렀으나 갈 길은 짐작하기 어려웠고 모두 가난했으며 혼란이 한반도 모든 곳을 강물처럼 덮치던 때다. 부산도 울산도 경남도 그러했고, 부산에서 ‘산업신문’이라는 첫 번째 이름으로 창간의 첫걸음을 내딛던 국제신문 또한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 상황과 심정은 대다수 민족 구성원이나 부울경 지역민이나 국제신문 창간 주역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기록을 보자. 국제신문 창간을 주도한 김형두 초대 편집국장의 회고다. “‘산업신문’을 창간하던 9월 1일은 쓸쓸하고 무척 초라했다. 앞으로 잘되어 가리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랬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냉철한 입장에 서서 우리의 앞날을 점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적수공권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남보다 더 빨리 더 바쁘게 열심히 뛰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출발선에서부터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반전이 일어났고, 기적을 만들었다. 한민족도 그러했고 부울경도 그랬으며 국제신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제신문이 지령 제1호를 내던 71년 전과 지령 2만 호를 맞는 2018년 5월 3일을 견주면, 우리는 모두 위대한 도약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위기와 절망과 슬픔을 겪고 다시 희망을 품었다.

국제신문 지령 2만 호의 역사 속에 그렇게 우리가 함께한 기록과 증거가 있다. 이것이 국제신문 지령 2만 호의 보람이자 의미다. 한 부 한 부 차곡차곡 쌓아 올린 2만 번의 발행 역사를 돌아봤다. 네 가지 낱말이 빛났다. 지역, 독자, 창의, 의로움이다. 풀어쓰면 ① 지역을 위해 ② 독자와 함께 ③ 창의적이고 ④ 의롭게, 줄여 쓰면 ‘지(地)·독(讀)·창(創)·의(義)’다.

■지(地)-지역을 위해

창간 때 제호 ‘산업신문’ 자체가 지역의 운명을 깊이 모색한 산물이다. 일제강점기는 끝장났으나 남은 것은 혼란과 가난. 산업을 일으켜 생산해야 자립도 건설도 할 수 있었다. 창간에는 해양도시 부산의 주역, 수산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한국전쟁이 터져 피란수도 부산이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희망의 근거가 되자 1950년 8월 19일 자(지령 1039호)로 제호를 ‘국제신보’로 바꾼다. 세계에서 타전되는 전황을 깊이, 풍부하고, 빠르게 보도하는 것이 시대와 지역의 요청이었다. 제호는 1977년 6월 1일(지령 9919호) ‘국제신문’으로 바뀌어 정착한다.

1962년 4월 19일 자(지령 5218호)에는 국제신문이 시민 성금 모금을 통해 4월 혁명 희생자 위령탑을 용두산공원에 건립해 제막하는(현재 부산 중구 민주공원에 있음) 기사를 실었다. 이는 부산을 반독재 민주화의 4월 혁명(4·19 혁명) 성지로 인식되게 했다. 1949년 화랑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 창설, 1950년대부터 재일동포야구단 초청 경기 정례화 등 각별한 야구 사랑으로 구도 부산의 터를 닦았다. 1965년 제1회 부산항구제를 성황리에 연 것(2월 26일 자·지령 6120호)은 ‘해양문화 도시 부산’의 신호탄이었다.

■독(讀)-독자와 함께

지령 2만 호의 힘은 독자의 호응에서 나왔다. 1953년 2월 16일(지령 1906호) 화폐개혁 특종을 보도하자 가판만 10만 부 판매를 돌파한 신기록 등이 그런 사례다. 1952년 1월 15일 전국 첫 시사주간지로 꼽히는 ‘주간 국제’ 창간, 1978년 5월 19일 대중지 ‘주간 국제’ 창간과 전국 30만 부 보급 신화 달성, 1989년 2월 1일 복간(지령 1만993호), 1996년 7월 1일(지령 1만3268호) 전면 가로쓰기 단행, 1997년 5월 1일(지령 1만3524호) 과감한 조간화 등 두려움 없는 혁신 또한 변화하는 시대와 독자의 요청에 화답한 결단이다.

지령 2만 호 역사를 돌아보자 흥미로운 특징이 잡혔다. 이 신문은 ‘자기반성’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1952년 9월 1일(지령 1741호) 창간 5주 기념호에 발행인의 자화자찬이 아닌 ‘자기반성문’을 실었다. 1967년 12월 20일 지령 7000호 기념호 사설도 반성 논조다. 심지어 독재정권에 강제 폐간되면서 낸 1980년 11월 17일 자(지령 1만992호) 고별 사설조차 “마지막 신문을 내면서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막중한 언론의 사명을 얼마나 충실하게 다했는가 깊이 반성합니다”고 했다. 독자를 중심에 놓고, 자기를 돌아보는 태도가 지령 2만 호의 밑거름이었다.

■창(創)-창의적이고

1969년 7월 21일 자 국제신문은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인류 최초 달 착륙을 1면에 보도(지령 7493호)했다. 이 ‘우주적 사건’을 1960년대 신문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파격과 창의로 편집했다. 제호를 과감히 아래로 내리고 지면 가장 위에 3단 통으로 ‘우리는 달에 왔다’는 제목을 달았다. 1면에 37세 부산 시인 허만하의 시 ‘아, 나는 달을 밟았다’를 실었다. 1960년 3월 28일(지령 4465호)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 마산 항쟁 화보를 실으며 마산에 살던 김춘수 시인의 4월 혁명 시 ‘베꼬니아 꽃잎처럼이나…’를 수록했다. 4월 혁명 시의 효시다. 국제신문은 4월 혁명 시를 가장 많이 실은 신문이다. 6·25전쟁 때 국제시장에서 구한 통신장비로 세계 전황 보도를 모조리 듣고 보도한 것은 발상 전환의 전설이다. 1959년 문단의 기린아 이병주를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영입하는 파격을 단행한다.

익숙한 관행과 시스템을 통째 바꾸는 전면 가로쓰기와 조간화는 지역 신문 가운데 단연 앞선 혁신이었다. 기세는 21세기에도 쉼이 없었다. 지역 관점의 날카롭고 풍성한 보도와 함께 갈맷길 개척, 부산 과학 열풍 조성과 국립부산과학관 유치 운동, 지역 여가생활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전국 최장기 기획연재 근교산 시리즈, 거침없는 디지털화 등 시민과 소통하며 지역을 가꾼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

■의(義) - 의롭게

‘의롭게’는 가장 할 말이 많은 곳이다. 1960년 4월 26일(지령 4495호) 이승만 대통령이 4월 혁명에 굴복해 하야했을 때 제목은 ‘싸웠다 이겼다 새 질서다’였다. 국제신문의 4월 혁명 보도는 분량과 반독재 민주화라는 방향에서 독보적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민화운동 때 전국 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공식 취재진을 현장에 투입해 1980년 5월 29일 자(지령 1만838호) 국제신문과 주간 국제에 “폭동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화가 난 전두환 신군부는 국제신문을 강제로 폐간했다. 의로움을 소중히 여긴 철학은 영광과 고난을 함께 주었다. 1989년 2월 1일 국제신문은 복간했다. 복간 뒤로 영광과 고난을 잇달아 맞이하면서 지령 2만 호라는 ‘벽돌’을 튼튼히 쌓아 올렸다. 결코 만만치 않은 환경에서 분권·지역·첨단의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독자들께 선사하기 위해 국제신문은 최선을 다해 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역을 위해, 독자와 함께, 창의적이고, 의롭게!

조봉권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