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여성가족재단 ‘생활사전’
- “남자·여자가” → “사람·어른이”
- 성 역할 단정 표현 대체어 제시

결혼 후 세 번째 명절을 맞는 김희선(31·가명) 씨는 연휴를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명절만 되면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남편 탓이다. 평소 집안일을 나눠 하는 남편은 명절이 되면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는 “남자를 부엌에 들이지 않는 집안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연휴가 끝나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지만 서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족 간 호칭에 대해서도 “굳이 조부모 앞에 ‘친’ ‘외’ 자를 붙여서 남녀 사이를 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혼 4년차인 김정미(31) 씨 또한 “결혼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삼스레 놀란다”며 “명절 연휴에 여성의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역할이 고정된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소 만나기 힘든 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내야 할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가 많은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20·30의 젊은 세대와 노년층의 세대 차이와 명절만 되면 돌아오는 남녀 간의 가사노동 차이 등 다양한 원인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기 전에 몸에 밴 차별적 언어 사용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은 21일 ‘성평등 생활사전 추석 특집편’을 내놨다고 밝혔다. 재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1170명의 시민에게 총 1275건의 의견을 받아 국어·여성계 전문가에 자문한 결과다. 설문에 응답한 시민 중 83.2% 이상이 명절에 성차별 언어나 행동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재단은 대표적이며 영향력이 큰 성차별 언어 세 종류를 꼽고 대체어를 제시했다. 남성 쪽 집안만 높여 부르는 ‘시댁’을 ‘처가’처럼 ‘시가’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아버지 측 부모를 가깝다는 뜻의 ‘친(親)’자를 붙이고 어머니 측 부모에게 바깥 외(外)를 붙이는 문화도 바꿔 차별하지 않고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로 통일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여기에 “남자가~” “여자가~” 등으로 시작해 각자의 성 역할을 단정하는 표현 또한 상황마다 “사람이~” “어른이~” 등으로 바꿔 쓰자는 의견이다. 많은 시민이 각기 성별을 들먹이는 표현이 차별적이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한편 여성의 전유물로 여긴 명절 스트레스에서 남성도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은 명절 성차별 사례로 ‘가사 분담(43.5%)’을 첫 손에 꼽았다. 여성만 집안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과 함께 남녀 모두 분담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했다. 부산대 김영(사회학과) 교수는 “우리의 무의식을 형성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은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도 “나아가 남성을 중심으로 조상을 기리고 며느리가 가사노동을 맡는 상황을 바꾸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