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 개인 배상 청구권 인정

- 일본 법원·국내 1·2심선 패소 판결

- 대법 “日 법원 판결 국내 효력 없다

-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 승계 인정

-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해야”

# 한일관계 파장 주목

- 日 외무상 “한일 우호관계 뒤엎어” 

- 주일 한국대사 초치… 강경대응 밝혀

- 정부 “한일관계 부정적 영향 없어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3년8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도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배상책임을 부인해 온 일본 측은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강경 대응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故)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이춘식(94) 씨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원합의체는 “한일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불법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려는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 민사적 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며 피해자들에게 배상 청구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신일본제철은 옛 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론으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판단도 유지했다. 신일본제철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났다고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2005년 국내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보고 신일본제철 측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 때 기간 군수업체였던 옛 일본제철에서 1941년부터 1943년까지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자다. 이 사건은 이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본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1997년 여 씨와 신 씨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옛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이후 2005년 김 씨와 이 씨까지 가세해 피해자 4명이 신 일본제철을 상대로 우리나라 법원에 소송을 냈다. 1, 2심은 모두 “일본 판결 내용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한 적 없는 김 씨와 이 씨에게는 “옛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옛 일본제철은 신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일본 법원의 판결은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신일본제철은 옛 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고 판단하고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취지대로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일본제철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등의 주장으로 재상고했다.

이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즉각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저부터 뒤엎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즉시 강구하길 강하게 요구하며, 그렇지 않다면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 국제재판을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대응을 강구할 것이다”는 담화를 냈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항의했다.

외교부는 “이번 판결이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성을 일본에 전달하고 있다”며 “곧 총리 주재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이번 판결에 대한 정부 입장을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 씨는 판결 후 법정을 빠져나와 “같이 살아서 봤더라면 마음이 안 아픈데…. 오늘은 나 혼자라 눈물 나고 슬프다”고 말했다. 다른 원고인 김 씨의 부인 최정호(85) 씨는 “조금만 일찍 이런 판결이 났으면 (남편이) 가시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들었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