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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3> 함양 휴천면 금반마을 김재기 씨

눈꽃 같은 배꽃사진에 ‘낚여’ 덜컥 산골로 … 환상 버리니 삶이 열리더라

  • 이완용 기자 ywlee@kookje.co.kr
  •  |   입력 : 2018-11-25 18:43:0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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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답사지서 만난 저렴한 배 과수원
- 비닐하우스에 살아도 ‘흐뭇’했건만
- 배나무 400그루 30년생 노목일 줄은 …
- 야생산채 채취해 ‘묶음판매’도 도전
- 온 산을 헤매도 물량 맞추기엔 한계

- 3년 차에 자신 있던 고추농사로 전환
- 외부 도움 없이 부부 힘으로 꾸려가
- 연간 3000~4000근·매출 1억 수확
- 친환경 농산물 품평회서 동상 쾌거도

“임대농지를 보러 처음 간 곳이 경남 함양입니다. 배꽃이 하얗게 핀 사진을 보고는 일주일 만에 덜컥 계약해 버렸죠. 무모했던 탓에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요모조모 따지지 않고 처음 결심대로 실천한 덕에 오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촌 10년 차인 경남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김재기 씨 부부가 시설 하우스에서 고추를 수확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 씨 부부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고추 농사는 어려워 몇 년 더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경남 함양군 휴천면 금반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산길을 10여 분 달리면 현대식 창고가 있는 김재기(54) 씨의 농장에 닿는다. 올해로 귀촌 10년 차.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에서 자라 농사의 ‘농’ 자도 몰랐던 김 씨지만, 이제는 ‘산골 농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검게 탄 얼굴과 거칠게 변한 손에는 산골생활의 어려움이 짙게 뱄다.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그의 표정에서 제법 만족스러운 농촌 생활임을 읽을 수 있었다.

김 씨는 부산에서 자원봉사자 관리단체와 노인복지문화원 등에서 활동했다. 오랜 도시생활에 찌들다 보니 가정에 소홀했다는 죄책감만 쌓여갔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삽시다.” 고민을 눈치챈 아내 설계순(51) 씨의 한마디에 김 씨는 귀촌을 결심했다.

■ 마음 먹었으면 결행은 단호하게

   
김재기 씨의 부인 설계순 씨가 마당에서 닭모이를 주고 있다. 부산 출신 김재기 씨의 구덕초등학교 친구들이 지난 9월 찾아 밤을 주웠다.
아무 준비도 없었다. 적은 돈으로도 농지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땅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경남을 벗어나기는 싫었고, 부산에는 자주 들를 수 없는 먼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요즘은 1년가량 농촌에 살아보고 결정을 하라며 ‘체류형 귀촌’을 운영하지만, 그때는 없었다. 그저 오지로 가야 멋있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디에 붙었는지도 몰랐던 함양이 첫 답사지였다.

배 과수원은 관리하기 쉬울 것 같았고 값도 싸서 안성맞춤이었다. 봄에 찍었다며 보여준 배꽃 사진은 하얀 눈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배나무도 굵어 두세 달 지나면 수확이 가능할 것 같았다.

부산에 돌아와서는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다. “어디를 다녀봐도 비슷할 거고, 가을에 수확할 수 있으니 여기로 합시다.” 아내의 말에 짐을 쌌다. 중학생인 두 딸은 자취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결행’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 6월이라 처음에는 과수원에 딸린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했다. 방을 만들면서 두어 달 텐트 생활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산골생활은 불편했지만 흐뭇했다. 그러나 환상은 금방 깨졌다. 2000평에 심어진 배나무 400그루는 30년생 노목이었다. 농사는 못 짓고 팔기도 아까워 땅을 임대로 내놓은 것이었다.

■ 첫해 농사는 망쳤지만, 오뚜기처럼

   
김재기 씨의 부인 설계순 씨가 마당에서 닭모이를 주고 있다. 부산 출신 김재기 씨의 구덕초등학교 친구들이 지난 9월 찾아 밤을 주웠다.
2008년 처음 수확한 배 100상자를 빌린 트럭에 싣고 진주의 농산물 공판장에 갔다. 당분간 생활비 정도는 건질 줄 알았는데 웬걸, 공판장에서는 “하차비도 안 나온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배는 30년 전에 보급된 재래종이었다. 20㎏들이 한 상자에 배 40개를 담아갔는데 한 상자에 9, 10개 들어가는 신품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농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공부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묶음 판매’였다. 연회비 30만 원을 내고 가입한 회원에게 봄철에는 야생 취나물과 고사리, 두릅 등을 보내줬다. 여름에는 감자, 가을에는 배와 밤, 김장용 배추 등을 배송했다. 봄나물은 자연상태에서 채취하니 원가가 들지 않아 좋았다. 농산물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해 인기가 좋아 첫해에 30명이 넘는 회원이 등록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제가 생겼다. 산채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었다. 야생 산채를 채취하려고 비까지 맞아가며 밤늦도록 온 산을 헤매도 물량을 못 채웠다. 감자나 배추도 공급 물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몇몇 고객은 계속해달라고 떼를 썼지만 2년 만에 접었다.

■ 쉬운 일은 없지만 자신 있는 일부터

귀촌 3년째는 자리를 옮겼다. 같은 마을의 다른 골짜기에 밭이 딸린 5000평의 임야를 사서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 1000여 평에 고추 하우스 6동과 건조장 1동을 만들었다. 자신 있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고 자금회전도 빨랐다. 6월부터 11월까지 반년가량은 생산할 수 있고 부부가 외부 노동력을 빌리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규모였다.

쉬운 일은 없지만 그래도 고추 농사는 지을 만했다. 지금은 연간 3000~4000근은 생산한다. 작황에 따라 기복은 있지만 연간 매출도 1억 원 정도 올린다. 함양군 친환경 농산물 품평회에서 동상을 받아 마을 어르신의 축하도 받았다. 고추는 대부분 학교급식용으로 납품하고 남는 것은 지인들에게 판다. 내년에는 반자동 이중하우스를 지어 단위 생산량을 늘리려 한다.

김 씨는 “작은 면적이라도 소득이 생기는 농사를 짓다 보면 자신 있고 돈이 되는 작목을 선택하는 지혜가 생긴다”며 “환상이나 막연한 기대로 귀촌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yw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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