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46명 수형기록 찾아
- 군·경남독립연구소, 서훈 신청
경남 하동에서 1927년 3월 3일 주민 1000여 명이 가담한 ‘제2의 3·1운동’이 일어났던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는 1919년 3·1운동 이후 영호남 지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주모자 50여 명이 연행돼 이 중 30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던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
| 하동군이 서훈을 신청한 독립운동가 강대용(왼쪽부터) 여국엽 선생. 하동군 제공 |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1927년 하동에서 ‘제2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46명의 수형 기록을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2일 밝혔다. 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군내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했다. 지난해 1차 조사 때도 25명을 발굴해 서훈을 신청했다.
이번 조사로 1927년 3월 3일 하동 장날을 맞아 제2의 3·1운동이 일어났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주도자는 악양면의 강대용 여국엽 선생 등 20여 명으로, 이들은 1926년 12월 강대용 선생 집에서 일제의 한반도 강탈정책을 규탄하는 시위를 모의했다. 이후 하동과 광양 등지의 인사 100여 명에게 연락해 하동 장날을 맞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날 참가한 300여 명은 군청과 경찰서를 향해 행진하며 ‘조선 민족 억압하는 모든 법령 철폐하라’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반대한다’ ‘경작권 확립을 보장하라’ ‘부당한 납세를 반대한다’ ‘모든 학교 교육은 조선인을 중심으로 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제를 규탄했다. 행진이 계속되자 장터에 모인 주민과 상인, 장꾼까지 500여 명이 가세했고 나중에는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 1000여 명에 달했다.
 |
| 경남도가 3·1운동 당시 일본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지사를 조사해 기록한 명부다. |
시위가 확산되자 다급해진 일본 경찰이 무력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해 진압 경찰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일경은 강대용 여국엽 여태원 임성필 송우복 선생 등 중심인물 50여 명을 연행해 고문했다. 그 결과 30여 명이 재판에 넘겨져 주동자 강대용 여국엽 선생 등 13명은 진주법원과 대구 복심법원에서 소요·상해 등의 죄목으로 징역 8월~2년까지의 옥고를 치렀다.
이외에도 이번 서훈 신청에는 3남매 독립운동가 조복애(옥종면), 대를 이은 한 집안 세 식구 독립운동가 박성무(적량면), 옥중 순국한 정석용 이형석 이기호 선생, 호남 출신의 최백근(광양시) 김용상(정읍시) 선생이 포함됐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국가기록원 등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에서 3·1운동이 발생한 지 8년 만에 하동에서 제2의 대규모 독립 시위가 벌어진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13명의 수형 기록 등 46명의 수형 문건을 찾았는데, 하동과 인근 광양 등지에서 활동하던 신간회 중심의 애국지사들이 거사를 도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