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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보행친화 도시로 <3> 부산시민공원~어린이대공원~송상현광장

삭막한 새싹로 지나면 어린이대공원서 피톤치드 솔솔

  • 오광수 기자
  •  |   입력 : 2019-01-03 19:47:46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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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싹로 700m 구간 보행로 협소
- 가로수 심을 공간적 여유도 없어
- LG사이언스홀 부산 ‘위풍당당’
- 1950년대 럭키치약 국산화 자취

- ‘경상도서 가장 빼어난’ 성지곡
- 광해군 시절 성지대사와 연관설
- 과거 어두컴컴한 굴다리 ‘마루길’
- 밝아지고 벽면 공공미술로 산뜻

이번 코스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다시 부산시민공원을 지나 송상현광장으로 가는 코스다. 이 구간에서는 미국제 치약 ‘콜게이트’를 따돌린 럭키치약의 ‘전설’, 성지곡에 얽힌 사연, 동래부사 송상현의 동상이 왜 지금의 자리에 서 있게 됐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만날 수 있다.

■ 락희화학공업사 치약 얘기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전역 인근 송상현광장. 대한민국 최대의 도심 광장(공원)이다. 동래부사 송상현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만든 광장으로, 명칭은 시민공모를 통해 결정했다. 김종진 기자
부산시민공원 북1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한 편의점과 아파트 신축 현장 사이에 난 길에는 보행로가 없다. 차량 통행량은 많지 않아도 걷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게 아쉽다. 이어 새싹로(서면교차로~어린이대공원)로 접어들면 사정은 더 열악하다. 어린이대공원 정문까지 700m 구간에 가로수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보행로 구간이 비좁은 탓에 가로수를 심을 공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어 만나는 LG사이언스홀 부산. LG그룹의 원동력이라고 평가되는 락희화학공업사(지금의 LG화학)가 있던 자리다. 부산에서 태동한 국내 굴지의 그룹 중 사실상 유일하게 옛 자리를 유지하는 셈이다. 연암 구인회(1907~1969)가 1947년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서 화장품 제조업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는 그 유명한 ‘동동구리무’를 만들었다. 1974년 이름이 바뀐 ‘럭키’의 출발점이다. 이 회사는 1955년 부산진구 연지동으로 공장을 옮겨 최초의 국산 치약인 ‘락희(럭키)치약’을 대량 생산했다.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미국산 치약 ‘콜게이트’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산보다 저렴한 가격과 집요한 마케팅을 내세운 게 주효했다. 럭키는 콜게이트보다 30% 싼 가격에 치약을 내놓았지만, 처음에는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광고로 승부수를 걸었다. ‘미국 원료’ ‘독일 기계로 제조’ ‘미국산과 같은 품질’을 앞세워 광고에 열을 올렸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판촉전도 펼쳤다. 이러한 노력 끝에 국내 치약 시장을 평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비좁은 공장 부지가 걸림돌이 됐다. 이 때문에 럭키는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부산 시대를 접는다. 1998년 설립된 LG사이언스홀 부산이 그나마 ‘부산 기업’ 럭키의 존재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 모너머 고개와 송상현광장

길을 재촉하자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에 2010년 세워진 상징 조형물 ‘확장하는 꿈’(권달술 작)이 반긴다. 여기서 부산시민공원 방향 성지로에 접어든다.

편백 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가득한 어린이대공원은 원래 ‘성지곡 공원’으로 명명됐다가 1978년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성지곡(聖知谷)이란 지명은 풍수지리에 밝았던 성지대사(性智大師,?~1623)와 관련 있다고 전한다. 광해군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그는 인경궁 경덕궁 자수궁 등 궁궐터까지 잡았다. 대사는 성지곡을 보고 경상도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라며 이를 표시하기 위해 철장을 꽂았는데, 이후 성지곡으로 불렸다고 한다.

성지곡의 전설을 되새기는 사이 연지삼거리 국립부산국악원 앞 횡단보도를 지나 다시 부산시민공원 북문이다. 여기서 도시철도 부전역 방향으로 공원을 가로질러가면 남문과 만난다. 계속 가면 부산진구 범전동 철길 아래 마루길. 송상현광장에 당도하기 직전 만나는 마루길은 과거 어두컴컴한 굴다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대변신했다. 보행로가 밝아졌고 벽면에는 공공미술로 꾸며 산뜻하다.

도착지는 드디어 송상현광장. 이 일대의 옛 이름은 마비현(馬飛峴), 모너머 고개였다. ‘말이 나는 고개’라고? 이 무슨 소린가. 부산 남구 대연동 석포 목장의 말이 황령산에서 풀을 뜯다가 이곳으로 달아나는 일이 잦았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모너머 고개는 넘기 힘든, ‘못 넘는’ 고개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모너머 고개는 동래부사가 왜관으로 행차할 때 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당시 ‘중심지’ 동래부와 그 외 부산지역을 구분하고 이어주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동래부사 송상현이 있는 동래읍성을 침략하던 길이었다. ‘죽을지언정 길을 비켜주지 못하겠노라(전사이가도난, 戰死易假道難)’. 중과부적의 왜적에 맞서 장렬하게 산화한 송상현 부사의 뜻을 기리고자, 후대에 교훈을 남기고자 이곳에 공의 동상을 세우지 않았을까 ….

오광수 기자 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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