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소 수탈, 귀환동포·피란민 정착촌
- 곳곳에 아래층보다 위층 넓은 가분수 집
- 소막마을 골목길 어른 두 명 겨우 통행
- 남구, 소 막사 복원·복합센터 조성 진행
- 동항로 오르면 ‘수용소 나래비집’ 만나
- ‘도시숲’ 가는 길 부산항 절경 파노라마
‘또각또각 푸른 청석 위를 걸어/소들이 떠나갔다/(중략)/한참이 지나서 우리 집 누렁이도 돌아왔다/늠름한 황소가 된 누렁이가(중략)’. 부산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 이야기’ 안내판에 쓰인 글귀다. 그런데, 일제가 헐값에 끌고 간 소들이 돌아오다니…. 사실과 다르다.
이번에는 소막마을과 수용소 나래비집 마을, 산수도(山水道) 마을 등지를 둘러보는 코스다. 일제강점기 소 수탈의 아픔과 귀환동포 이야기, 그리고 6·25전쟁 피란민의 신산한 삶이 녹아 있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 소막마을에 깃든 신산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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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뒤편에서 바라다 본 부산항 일대. 동항성당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출사지이지만, ‘우암동 달동네 성자’로 불리는 하 안토니오 몬시뇰의 삶을 되새겨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김종진 기자 |
우암동(牛岩洞)은 말 그대로 ‘소바우 마을’이다. 옛날 소가 편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의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예부터 우암동은 배가 드나들기 좋은 천연의 포구라는 의미에서 ‘바다의 요새’로 불렸다. 우암동에 부산항 북항 제7부두가 떡하고 자리 잡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본인들은 ‘땅이 붉다’고 해서 우암동 일대를 붉은 반도, 즉 ‘적기(赤崎, 아카사키)’로 불렀다. 항구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항이라고도 한다.
남부중앙새마을금고 버스정류소에서 우암번영로로 꺾어 들어간다. 30m쯤 갔을까. 왼쪽에 ‘소막마을 이야기’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 바로 옆에 파란 지붕의 소막집이 보인다. ‘ㅅ’ 자 지붕의 단층집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해마다 전국의 수많은 조선 소를 일본으로 빼갔는데, 이들 소의 검역·관리를 하기 위해 소막(牛舍)과 검역소를 우암동에 뒀다. 조선의 소 70%가 우암동 소막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한다. 당시 소 60여 마리를 수용할 수 있었던 소막이 19개동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그때 소막의 지붕이나 환기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이 중 1942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 막사를 지난해 5월 등록문화재(제715호)로 지정했다.
해방되자 일본에서 귀환동포가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임시로 소막에 살았다. 소막의 3~5평을 얻어 집단으로 거주했는데, 이렇게 소막마을이 생겨났다. 소막마을 일대 골목은 어른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다. 곳곳에는 공동화장실이 있다. 집이 워낙 비좁았던 터라 화장실을 집 안에 둘 수 없었던 까닭이다. 화장실 상당수는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 부모의 마음 담은 가분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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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층보다 위층이 몇 뼘 정도 더 넓은 ‘가분수’ 집. |
하지만 소막마을의 길과 역사 등을 안내하는 시설이나 쉼터 등은 아직 태부족이다. 다만 남구가 올해 중 소막사 원형 복원과 복합커뮤니티 센터 조성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이 사업이 끝나면 상당 부분 문제점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안내판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쉼터 겸 운동시설이 있는데, 주변 곳곳에서 이른바 ‘가분수’ 집을 확인할 수 있다. 가분수 집은 수학 용어 가분수처럼 아래층보다 위층이 몇 뼘 정도 더 넓고 큰 형태다. 국제신문 지면을 통해 가분수 집을 소개한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수이재 대표)이 명명했다. 그는 가분수 집을 ‘부모의 마음’으로 표현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업은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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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바우 마을’ 우암동의 소 막사 집과 이에 관한 조형물 및 안내판.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소막마을에서 다시 우암로로 나와 7부두 버스정류소에서 동항로로 오르다 보면 감화교회 주변에서 ‘적기 피란민수용소’가 있던 마을을 만난다. 소막마을 서쪽이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해 건물 40여 동을 지어 임시 거처로 만들어준 곳이다. 건물이 일본식 표현으로 ‘나래비를 섰다’고 해서 주민들은 ‘수용소 나래비집’으로 부른다. 지금도 좁은 골목 사이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 가운데 슬레이트 지붕이 그대로인 곳이 더러 있다.
동항로에서 다시 올라간다. 장고개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솔밭로를 따라 오르면 우암동 도시숲. 도시숲 공원으로 오르는 길에 산수도 마을과 만난다. 우암동에서도 ‘산만디’로 통하는 지역이다. 이곳 역시 피란민 정착촌으로, 산에서 대나무 관을 이용해 물을 끌어다가 팔았다고 해서 산수도 마을이다. 도시숲으로 가는 길에 공립 한샘어린이집 앞 계단에서 뒤돌아보면 가까이는 허치슨터미널(제5부두)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멀리 용두산공원 부산타워가 보인다.
오광수 기자 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