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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다시 만주를 주목하다 <1> 항일명장 양세봉 장군

만주 호령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 현상금 4000원(현재 1억 3000만 원가량) 걸리기도

  •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19-01-31 19:25:14
  •  |   본지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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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건너가 소작농 생활하다
- 3·1운동 계기로 항일투쟁 시작

- 친일파 ‘선민부’ 처단하며 명성
- 한중 연합전투 지휘관 활약
- 속성군관학교 세워 군인 양성도

- 밀정 농간으로 총탄 맞고 최후
- 마지막 순간까지 항일투쟁 외쳐

일제강점기는 온 민족이 말살당한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독립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3·1절이나 광복절이 되어야 ‘그래,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중국, 그 중에서도 만주(滿洲)는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이 압록강 넘어 선명한 망국을 바라보며 귀향의 한을 품고, 독립의 칼을 갈았던 곳. 척박한 땅을 일구던 민초의 땀과 싸우다 흘린 피 냄새가 지금도 진하게 풍기는 곳.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금, 다시 만주를 주목하는 이유다.

중국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일대를 일컫는 만주는 국외 독립투쟁의 주무대였다. 이미 정착한 조선인이 많았다는 점, 복잡한 삼림 지역이 넓게 분포돼 산악유격전에 유리한 점, 중국과의 공동 항일 연합 전선을 만들기 이롭다는 점 때문에 수많은 독립투사가 100년 전 만주로 향했다. 2019년 국제신문은 독립 투쟁의 흔적을 찾아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만주로 향했다.
   
원래 양세봉 장군의 흉상이 처음 설치됐던 터. 박호걸 기자
만주 항일투쟁 역사를 취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중국 랴오닝성 푸순시. 지난달 찾은 이곳은 한낮임에도 영하 12도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첫 방문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은 항일 투쟁사에서 ‘군신(軍神)’으로 평가받는 양세봉 장군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차에서 내려 잔뜩 웅크린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한참 걷다 5.4m 높이의 석재 흉상을 맞닥뜨렸다. 흉상 주변은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하고 부스러졌지만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에선 그의 기개가 느껴졌다. 흉상 아래에는 ‘항일명장 양세봉’이라는 일곱 자가 적혀 있었다.

■중국 의용군 연대해 항일투쟁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9·18기념관에 전시된 양세봉 장군의 사진.
양 장군은 1896년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15세 무렵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항일에 눈을 떴다고 전해진다. 1917년 식구들과 만주로 망명, 중국인 소작농 생활을 하던 양 장군은 3·1운동을 소식을 전해 듣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선다. 1922년 천마산대 독립군에 입대한 후엔 국내 경찰서와 면사무소 우체국 등 일제의 통치 기관을 습격해 일제 관리와 친일파를 처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양 장군이 이름이 크게 떨친 것은 1929년 친일세력이었던 ‘선민부’를 응징하기 시작하면서다. 양 장군은 토벌 지휘부의 부사령관으로 작전에 나서 선민부 본부를 야습해 ‘악질 순사’로 악명높던 문영선을 사살하는 등 상당수 간부를 숙청했다.

만주의 상황은 이후 더욱 급박하게 흘러갔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으로 일본의 중국 침탈이 본격화했고, 1932년 1월 신빈현에서 회의 중이던 조선혁명당 주요 간부 수십 명이 일제의 급습을 받아 체포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오른 양 장군은 중국 의용군과 연대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32년 5월에만 모두 6차례 전투가 벌어졌는데, 연합군은 적 10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일제는 양 장군에게 현상금 4000원까지 내걸었다.

양 장군은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은 만주만이 아니다. 압록강이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우수한 대원을 국내로 은밀히 파견해 국내 진압 작전도 진행했다. 또 퉁화시에 속성군관학교를 설치해 400여 명의 장교와 사병을 양성하기도 했다.

■백성·부하와 함께한 ‘소작농 장군’
중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현의 한 시골마을에 세워진 양세봉 장군의 흉상.

   

총사령관이 된 양 장군은 백성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했다. ‘조선혁명군과 양세봉 장군 항일투쟁사론’을 보면 양 장군은 1932년 9월 ‘군사기율 21개 조항’을 각 부대에 하달했는데, 이 중 7개 조항이 백성의 생활과 관련한 것이었다. 양 장군은 “한 가지만 위반해도 사형에 처한다”고 엄포했다.

양 장군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그가 소작농 출신으로, 생활고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양 장군은 “백성에게 1전의 손해라도 주지 말아야 한다. 달걀 하나라도 돈을 내야 한다”며 “민가에서 식사를 할 경우에는 꼭 식권을 내야하고, 식권 한 장에 10전씩 계산해 군자금에서 면제하라”고 지시했다. 군자금도 군과 가정이 협의해 집집마다 재산 정도에 따라 신중히 결정토록 했고, 농번기에는 부대원과 함께 일손을 거들었다. 그는 조선혁명군의 우두머리인 총사령관이었지만, 부대원과 밥을 먹었고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었다. 숙영지에 도착하면 병사와 함께 불을 피워 물을 끊였고, 부상병의 발을 씻어주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에게 이러한 양 장군은 눈엣가시였다. 이에 밀정 박창해에게 양 장군 암살 작전을 지시했다. 박창해는 과거 양세봉과 왕래가 있었던 마적두목 왕 씨를 거금을 주고 매수했다. 왕 씨는 양 장군을 만나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조선혁명군에 합세하겠다. 자신의 부대가 있는 곳에 급히 가서 이 문제를 논의하자”며 꾀었다.

1934년 9월 16일 밤. 앞장서 가던 왕 씨가 옥수수 밭으로 사라지고, 매복하고 있던 일제의 공작대가 총을 쏴댔다. 양 장군은 가슴에 2, 3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를 호위하던 병사가 대응 사격을 하자 적은 사라졌다. 호송된 양 장군은 부하들에게 “나는 살 가망이 없소. 모두들 (항일투쟁을) 끝까지 견지해주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중국 내 항일잡지 흑백반월간은 그의 죽음에 대해 “조선혁명의 걸출한 영수 중 한 사람이다. 이제 그가 희생되니 조선독립운동의 앞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애도했다.


※양세봉 장군의 연도별 행적

1896년 평안북도 철산군 출생

1917년 만주로 이동·中 소작농 됨

1919년 아내, 두 동생과 만세운동

1922년 독립군 천마산대에 입대

1924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저격 지휘

1929년 지휘부 부사령관으로 친일 단체 선민부 토벌

1932년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선임, 中 연합해 영릉가·흥경성 등 200여 회 전투

1933년 국경지대로 활동 옮겨 사리원경찰서 습격 작전

1934년 일제 밀정 박창해와 마적 왕 씨의 음모로 피살


중국 랴오닝성=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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