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9월 18일 오전 9시 18분
- 선양시민 자동차 정차 후 경적
- 만주사변·14년의 항일투쟁 기억
- 9·18역사기념관 자료 1700여 점
- 인체실험 장면 등 침탈 역사 알려
- 조선혁명군 양세봉 장군 사진도
- 평정산참안기념관 천장과 벽면
- 희생된 민간인 이름 빼곡히 적혀
서슬퍼런 일제의 탄압에도 의연하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던 날. 국가는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3·1절을 제정했다. 그러나 태극기 게양 등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겪은 중국은 일제 침탈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알리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 국제신문은 아픈 과거이기에 더욱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국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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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정산참안기념관 내부에 기록된 희생자 이름. 박호걸 기자 |
■9·18 만주사변의 기억
인구 700만 명의 대도시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서는 매년 9월 18일 오전 9시 18분이 되면 거리의 모든 차가 멈춰 선다. 정차한 차들은 약 3분 동안 경적을 울린다. 1931년 9월 18일 있었던 일본의 중국 침략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날 일제는 선양시에서 7㎞ 가량 떨어진 류타오후에서 일본 관리 아래 있던 철로를 몰래 폭파시켰다. 그리고는 “중국이 일본 소유의 철로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군대를 동원한 응징에 나섰다. 이른바 ‘만주사변’의 시작이다. 일본은 4개월 만에 동북3성을 모두 점령했고, 이듬해 3월 청나라 황제 푸이를 내세워 괴뢰국 만주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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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9·18역사기념관 입구의 조각상. |
취재진은 지난달 19일 선양시에 있는 9·18역사기념관을 찾았다. 이곳은 중국의 3대 기념관 중 하나로, 중국에서 벌어졌던 14년간의 항일투쟁을 기억하기 위해 만주사변의 발생지에 설립됐다. 기념관 입구 광장에는 ‘1931년 9월 18일’이라고 적힌 거대한 조각상을 세워 의미를 기렸다.
기념관에서 본 전시물은 충격이었다. 이곳에는 1700여 점의 사진과 자료가 전시돼 있는데, 보탬이나 덜어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침탈 역사를 알리고 있었다. 일본군에 의해 중국인이 참수되는 장면, 효수된 수급, 고문 도구 등 다소 잔인해보일 수 있는 것들도 적나라하게 전시됐다. 일본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가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 등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장면도 재현돼 있었다.
한 여성이 창살 안에 갇혀 있는 전시물이 눈에 띄었다. 중국 여성 항일투사 저일만이다. 저일만이 아들에게 남긴 편지의 해석을 부탁했다. 유홍유 해설사는 “내 사랑하는 아이야. 천 마디말로 너를 가르치는 것보다 지금 내 행동 하나로 너를 가르치려 한다. 네가 큰 후에 엄마가 항일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라고 말했다.
중국과 함께 공동 전선을 형성해 일본군을 격퇴시켰던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의 사진도 전시돼 있었다. 9·18역사기념관 장이엔펭 관장은 “이곳은 중국 근현대 역사의 전진 기지로 매년 50만 명이 방문한다”면서 “한국과 중국은 일제 수탈의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독립기념관과 교류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양세봉 이진룡 장군과 관련한 학술대회를 비롯해 여러 차례 포럼·전시품 교환 등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3000명 민간인 백골도 보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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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순시 평정산참안기념관에 전시된 중국인 희생자의 유골. |
이튿날 취재진은 차를 달려 랴오닝성 푸순시로 향했다. 푸순시는 ‘땅만 파면 석탄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하에 저장된 자원이 많은 곳이다. 일본은 전쟁 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청나라로부터 이 일대의 석탄채굴권과 철도 부설권을 가져갔다. 그러다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동북3성의 시민들은 일제에 대항하고 나섰다. 1932년 9월 15일 자정 무렵 요녕 민중자위군은 푸순 탄광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을 소탕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끔찍한 보복을 저지른다. 일본은 바로 다음 날수비대 헌병대 경찰 등 수백 명의 무장 인력을 동원해 평정산 마을을 에워쌌다. 그리고 마을 주민을 산 아래로 모이도록 한 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격을 가했다. 3시간 동안 3000여 명이 총탄 아래 쓰러졌다. 만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일본군은 시체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중국 정부는 1970년 유해 발굴을 본격화했다. 평정산 아래 묻혀 있던 희생자 시신 3000여 구가 발견됐다. 중국 정부는 1972년 그 자리에 평정산참안기념관을 건립했고, 2006년에는 중국 최고의 기술자를 수소문해 유골을 영구 보전하고 이를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직접 살펴보니 그날의 참상이 뼈 속 깊이 파고들었다. 길게 이어진 전시관에는 3000여 구의 백골이 형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어린 아이를 껴안고 있는 유골, 총상으로 구멍난 두개골,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사용됐던 기름을 담은 통도 있었다.
기념관 안에서는 당시 참상을 담은 각종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기념관 끝 천장과 벽면에는 당시 희생된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한중문화콘테츠연구소 안상경 소장은 “참사가 일어난 날이 음력 8월 16일로 추석 바로 다음날이었다. 평정산 마을 주민은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추석 명절을 지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 소장은 “중국인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나 일제에게 짓밟혔던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시민에게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며 “참상을 되풀이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랴오닝성=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