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만든 40만기준 도시계획
- 100만 넘긴 1961년 뒤늦게 손질
- 부산은 이미 난개발로 기형화
- 고질적 용지부족 문제 봉착하자
- 고지대 개발·해수면 매립 눈돌려
- 환경 강조하면서 자연훼손 ‘모순’
- 주택보급 100% 넘어선 2005년
- 478곳 재개발 지정 정책 엇박자
도시계획은 한 도시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많은 계획 중 가장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즉, 도시 계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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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이 산중턱에 우후죽순 판잣집을 지으면서 부산은 무계획적이고 평면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부산 원도심 일대 전경. 국제신문 DB |
어떤 목표를 잡고 어떤 방향으로 수립되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 모습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부산의 도시계획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어느 시기에 어떤 계획이 수립되어 지금 부산의 모습이 되었을까. 부산시가 지난해 펴낸 ‘부산광역시 도시계획사’를 바탕으로 부산 도시계획 80년 역사를 짚어보았다.
■잃어버린 30년
부산의 도시계획은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수립된 것이 시초다. 일제 당시 수립된 부산시가지계획은 1965년을 목표연도로 잡고 계획인구는 40만 명으로 설정됐다. 그러나 부산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부산항을 통해 귀국한 재일동포 상당수가 부산에 체류하는 경우가 늘어나 1946년 이미 부산의 인구가 36만 명을 넘어선 것.
특히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부산에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불러왔다. 전국 각지 사람이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1952년 부산의 인구가 85만 명을 넘어섰다. 1951년 시행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부산 인구 중 40만~50만 명은 피란민이었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변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이들이었다. 당장 살 곳이 막막했던 피란민들은 산 중턱에 판잣집을 지었고, 이때부터 부산은 무계획적이고 평면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광복과 전쟁을 겪으면서 30년 넘게 도시계획이 수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1961년 제1차 도시계획구역 확장이 있기 전까지 약 30년 동안 1937년 수립된 부산시가지계획구역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40만 명을 기준으로 수립된 시가지계획은 이미 100만 명을 넘긴 당시 인구를 감당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주거 상업 공업지역이 어지럽게 섞이면서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개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있던 용도지역도 전쟁을 거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부산은 한동안 일제강점기에 만든 계획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이러한 방침은 1968년 수립된 토지이용계획 기본방침 첫 항인 ‘최대한 기존 계획을 활용한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공원 부지는 일제강점기에 지정된 이후 최근까지 해제도, 조성도 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고지대 개발을 허(許)하라
부산의 도시계획 수립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가용 용지 부족이다. 도시계획 구역 전체 면적이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산이 많아 사용할 수 있는 땅이 부족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별로 수립된 도시기본계획마다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것이 ‘고지대 개발’과 ‘해수면 매립’이다.
1968년 수립된 ‘도시계획 재정비의 토지이용계획’ 기본방침 중 하나가 ‘토지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지대 개발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었을 정도다.
‘유휴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도 있다. 해안선에 가깝게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같은 계획에 따라 고지대 재개발·불량 주거지 정비가 시작돼 경사도가 20도 이하인 용지 79만3000㎡가 택지로 개발됐다. 산복도로가 개설된 것도 이때다.
이 같은 흐름은 1980년대 계획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985년 부산도시기본계획은 고지대 녹지의 택지개발과 해수면 매립에 의한 도시 공간 확대를 최우선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 이 시기 수립된 토지이용계획 기본 방향에도 ‘고지대 녹지의 택지 개발과 해수면 매립에 의한 도시공간 확대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당시 주택용지 확보는 주로 토지전면매수방식으로 시행돼 용지 구매 부담이 적은 녹지지역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돼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일자 해안선, 산에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숲으로 대변되는 부산의 전경은 이때 만들어진 셈이다.
‘부산시 도시계획사’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1960년대)당시 고지대지역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수용될 수는 있으나 정책상 아쉬움도 있다. 당시 여건이 허락되었다면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외국선들이 부산의 경관을 주야간으로 즐길 수 있고 해당 지역도 부산 최고주거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개발사업과 곳곳에서 충돌한다. 1992년 수립된 ‘2011 부산도시기본계획’에서는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과제로 내세웠으나 다른 부문 계획에서 자연 훼손을 수반하는 해안 및 구릉지 활용을 도시 성장 극복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같은 계획 안에서도 모순을 드러냈다.
■거꾸로 가는 주택정책
부산은 1960, 1970년대 신발 봉제 철강 분야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산업환경 변화와 사업구조 고도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1996년까지는 과도한 도시 팽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성장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산업 재구조화에도 실패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이후부터 지역내 주요 산업체와 중소기업의 역외이전이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기반 산업의 약화는 결국 부산의 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던 인구 증가추세가 1980년을 기점으로 점차 둔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0~1980년대 부산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5.4%였으나 1980년 이후엔 2.7%로 반 토막이 났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기존시가지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1970년대부터 구·군별로 부분적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부산시 통계연보를 보면 1970, 1980년대엔 전입률이 전출율을 앞서지만 1990년대엔 이것이 역전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부산의 택지개발사업은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1980년대부터 불이 붙는다. 대단위 신도시가 계획된 것도 이때부터로, 실제 1990년대 화명·해운대신도시 건설로 이어졌다.
주택보급률과 재개발 정책도 엇박자를 보였다. 부산의 주택보급률은 2005년 101.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주택보급률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나 그해 수립된 ‘2010 부산시 도시및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서는 478개소를 무더기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2002년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긴 서구와 남구도 각각 48개소와 52개소가 지정됐다.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부산에서는 부동산 시장 훈풍을 타고 재개발·재건축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부산시의회 박민성 의원(더불어민주당·동래1)은 “지금까지 부산의 도시계획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한 것은 몇 번의 전환점에서 부산시가 제대로 맥을 짚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계획 속에 시민의 ‘삶’이 없다.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 계획을 수립했다기 보다는 도시가 급속히 성장하고 팽창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니 여기에 대처하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송이 박호걸 기자 songya@kookje.co.kr
공동기획: 국제신문 부산시의회
※ 이 취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