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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귀촌 <11> 욕지도로 귀어한 조형미술가 이창섭 씨

붓·조각칼 쥐던 예술가…“낚싯배 키 잡고 매일 행복 그려냅니다”

  •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7 19:06:1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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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 가조도서 태어나 부산서 공부
- 1985년 화가 등단, 12번 개인전 열어

- 풍운의 꿈 안고 프랑스서 조각 공부
- 20여 년간 일본서 활발한 작품활동
- 지인 돌아가신 후 귀국, 욕지도 정착

- 소형선박해기사 면허 3번 낙방 끝 취득
- 빨간색 3t급 어선 ‘모던호’ 매일 몰아
- 입소문 나면서 낚시객들 즐겨 찾아
- 이젠 예술가보다 선장으로 더 유명

- 낚시실력 인정받아 내달 월간지 기고
- 자연산 고기 건조 유통사업 골몰
- 바다 보면 조각 작품 구상이 절로

돌고 돌아 섬으로 귀항한 서양화가이자 조각가가 있다. ‘바다는 나의 화실, 바다는 나의 생과 삶’이라고 말하는 이창섭(60)씨. 12번의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꽤나 이름 날렸던 그는 5년 전 욕지도에 정착했다. 낚시광인 이 씨는 포인트가 많은 욕지도를 가끔 찾다가 아예 정착해 버렸다.
   
조형미술가이자 낚싯배 선장인 이창섭 씨가 손님에게 대접할 초밥을 만들고 있다. 이 씨는 20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일식 요리법을 터득해 셰프 못지 않은 솜씨를 지니고 있다. 박현철 기자
■예순에 찾은 새 인생

이 씨는 지난달 3t급 낚시어선인 ‘모던호’를 진수했다. 모던호를 몰아 매일 바다로 나가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독창적이고 강렬한 색상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캔버스가 아닌 낚싯배에 담아 ‘모던호’는 보통 배들과 달리 빨간색으로 치장했다. 벌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손님이 제법 찾는다. 붓 대신 낚싯배 키를 잡으려고 소형선박 해기사면허를 3번 낙방 끝에 어렵사리 땄다. 조형미술가 이창섭에서 ‘모던호 선장 이창섭’으로 새로운 닉네임이 하나 더 늘어났다.

“인생은 예순부터라 하는데, 이 나이에 배도 만들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 살 맛이 납니다.” 그가 정착한 욕지도는 경남 통영 삼덕항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다. 통영이 보유한 570개의 섬 중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올망졸망한 여러 섬이 있고, 뒤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등 변화무쌍한 섬이다. 이 씨가 사는 유동마을은 남향이라 일조량이 가장 많고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바닷가가 바로 코앞이고 민가가 별로 없어 조용한 것도 그의 마음을 끌었다. 조용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도 하고, 낚시도 맘껏 하고 싶었던 것이 귀어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

■예술적 영감의 원천 바다로

   
이창섭 씨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느티나무펜션’. 종려나무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현철 기자
섬에서 무엇으로 먹고살까 고민하다 펜션업을 선택했다. 펜션 앞에 수백 년은 족히 된 듯한 위세등등한 느티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그래서 펜션 이름도 ‘느티나무펜션’이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단층건물의 소박한 펜션에서 바라보는 바다 비경은 환상적이다. 펜션 앞에 심은 종려나무 덕분에 이국적 분위기마저 난다. 해가 저물고 빨간 노을이 질 때면 분위기는 더욱 몽환적이다. 펜션 한편에는 그의 작업실이 있다. 철 조각가답게 온갖 장비가 빼곡하다. 이 씨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작품 구상이 절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욕지도로 들어오기 전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거제 부속 섬인 가조도에서 태어난 이 씨는 파도가 치는 넓은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어머니의 교육 열성으로 고등학교부터 섬을 떠나 부산에서 유학했다. 1985년 부산미술대전에서 ‘벽’이란 작품으로 출품해 화가로 첫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는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홀연 일본으로 떠났다. 미술대전에 초대받아 온 일본 작가의 행위 미술을 본 후 충격과 신선함에 매료돼 동경에서 2년 간 새로운 작품 생활에 몰두한다. 깨달음이 컸는지, 다시 가방만 메고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금속조각을 공부하고, 세계적인 철 조각가들의 작품세계에 빠져 들었다. 5년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귀국 후 전국 순회전을 가졌다. 그리고는 경남 고성의 한적한 바닷가에 작업실을 꾸몄다. 많은 관람객과 손님들이 찾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일본으로 떠났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교류전에 합류하는 등 20여 년간 일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늘 함께하던 스승 같은 화백이 세상을 떠나자 귀국을 결심한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욕지도다.

“바다 없이는 예술적 상상력도, 예술적 성취감도 이룰 수 없었죠. 섬에서 태어나 결국은 섬으로 돌아 온 것이 운명인가 봅니다.”

■낚시도 요리도 프로

   
이창섭 씨가 ‘모던호’에서 릴 낚시로 잡은 고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욕지도에 들어온 뒤 지인의 권유로 ‘귀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왕이면 섬에 살면서 생업과 더불어 작업도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시에서 주관하는 ‘귀어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이수했다.

낚싯배 선장이 된 예술가 이 씨는 낚시와 그림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낚시는 도화지를 펼치기 전 설렘과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처럼기쁨을 느끼게 해줍니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넓은 바다에 붓을 던지는 마음으로 낚시를 하죠.”

그가 지금까지 잡은 최대어는 욕지도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길이 1m 5㎝인 부시리다. 그렇지만 그는 대어 낚기를 고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여행 속의 즐기는 낚시가 더 좋다는 얘기다.

낚시 실력을 인정받아서일까, 다음 달부터는 낚시 관련 월간지에 기고도 한다. 욕지도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 고기를 건조해 전국으로 유통시키는 사업 방안에도 골몰하고 있다.

   
펜션 한편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철 조각을 하는 모습. 박현철 기자
그는 요리 실력도 뛰어나다. 어린 시절 어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뱃전에서 먹었던 음식이 그렇게 맛있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모던호’ 뱃전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회를 내밀면 낚시객 너나없이 감탄할 정도다. 어지간한 일식집 셰프보다 칼질이 뛰어나다. 20년 일본 생활에서 터득한 초밥은 더욱 환상적이다. 요리도 창작의 한 분야라고 이 씨는 강조했다.

요리와 펜션, 낚싯배가 3박자를 이루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작품 세계에도 푹 빠져 든다. 그래서 그는 섬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이 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스트레스도 없어 병 생길 일이 없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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