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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12> 경남 창녕군 유리마을 한창섭 씨

3년 내리 실패 뒤 깨우친 재배 비법… ‘최고의 고추’ 토양 되다

  •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
  •  |   입력 : 2019-04-21 19:07:1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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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바퀴 돌듯 경쟁 시달리던 아이들
- 자연 벗삼아 살게 하려 귀촌 결심

- 무농약·유기농 고추농사로 야심찬 출발
- 각종 병균에 노출돼 정착 초기엔 좌절
- 창녕생태귀농학교 4년간 공부 병행 뒤
- 대구·대전 등 청과시장서 ‘최상품’ 대접
- 실패담 토대로 귀농 준비생에 강의도

- “초보농꾼 1~2년 남의 농사서 배우고
- 큰 규모보다 작게 시작하길 권해”

- 주말엔 온 가족 풀 뽑기 등 함께 작업
- 일 끝나면 시내 나가 외식·영화감상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영산IC로 빠져 나온 후 지방도를 따라서 함안 쪽으로 달리다 보면 경남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을 만난다. 유리마을 인근에는 이름도 야릇한 ‘번개늪’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유리 고인돌’로 더 유명한 곳이다. 1962년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로 고인돌 유적이 발견됐다.
   
한창섭 씨 부부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고추하우스에서 고추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고추 줄 감기를 하고 있다.
2014년께 이 같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리마을로 귀농한 한창섭(58) 씨는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한 씨는 길이 100m, 폭 10m 규모의 하우스 2동에서 풋고추를 생산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고추는 대구와 대전청과시장 중개인들로부터 최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예초기로 앞마당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첫 만남, 그의 이마에서 시작된 피가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이자 그는 별일 아니다는 듯 “예초기를 사용하다 튄 작은 돌이 이마를 때린 것 같다”고 웃는다.

한 씨의 귀농은 여느 귀농인과 사뭇 다른 이유에서 출발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원인에 대해 그는 “아이들에게 책 속에서 그림으로 보는 흙과 나무, 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자연을 체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향이 경남 의령인 한 씨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 영도로 이사를 한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운대에서 식당과 건축업 등 자영업을 하며 어렵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도시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끝없는 경쟁 속에서 하루에 몇 군데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섭 씨는 2014년 직접 설계해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 언덕에 30평 규모의 유럽형 주택을 지었다.
결국 한 씨는 2010년 10월부터 귀농지를 찾기 시작했다. 반면 부인 권재숙(55) 씨의 반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한 씨는 “아내를 설득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자녀교육과 노후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에야 겨우 동의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곁에 있던 권 씨는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아이들 교육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결정을 잘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들었다.

한 씨는 교통, 생활환경, 의료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귀농지를 창녕으로 정했다.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에 땅 210평을 매입했다. 전공을 살려 집을 설계하고 30평 규모의 집이 완공된 2014년 10월께 부산 아파트를 팔고는 가족 모두가 유리마을로 들어왔다.

한 씨는 귀농 후 가축농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선 수익을 빨리 볼 수 있는 고추농사로 방향을 틀었다. 고추하우스 2동을 5년간 임대료 6000만 원에 구입해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그에게 시련은 바로 다가왔다. 고추 모종 3300포기를 심고 무농약·유기농으로 시작한 첫해 고추는 각종 병균에 감염됐다. 그는 “뒤늦게 유기농을 포기하고 농약을 뿌렸지만 한 번 병든 고추나무 잎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 결국 그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패의 아픔은 3년 동안 이어졌다.

한 씨는 농사에 실패하는 동안에도 창녕군이 운영하는 창녕생태귀농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이곳에서 시설채소, 약초, 효소 등 다양한 공부를 했다.

이 같은 노력과 그동안 실패를 통해 얻어진 경험은 마침내 ‘최고의 고추’ 수확이라는 명예로 돌아왔다. 2017년부터 한 씨의 농장에서 매년 20t 가량 생산된 고추는 청과시장에서 최고의 품질로 대접받고 있다.

한 씨는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면서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운 정보대로 해 보고, 또 응용해서 나만의 농사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창섭 씨가 고추하우스에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하우스를 덮고 있는 보온 가리개를 걷고 있다.
그는 이제 창녕생태귀농학교에서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강의 내용은 주로 자신의 실패담이라고 소개했다. 한 씨는 “처음에는 큰 규모보다는 작게, 자신 농사보다 먼저 남 농사를 1~2년 도와주며,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난 뒤에 자신의 농사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부인 권 씨는 올해 유리마을 ‘의용소방대장’이 됐다. 권 씨는 “마을에 노인이 많다 보니 젊은 사람에게 일은 맡긴 것 같다”고 부끄러워했다. ‘이 마을에 들어온 뒤 크고 작은 일에 늘 앞장서 왔다’는 주민들의 평가에서 그 직함이 갖는 남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씨는 “이제 고 3, 중 3으로 훌쩍 자란 아이들이 농촌 생활을 즐기고 있어 너무 고맙다. 주말이면 가족 모두가 풀 뽑기, 필요없는 새 순을 따고 고추에 줄을 감는 등의 작업을 하고는 창원시내로 나가 외식도 즐기고 영화도 본다”면서 “좀더 일찍 농촌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매년 10월 초부터 다음 해 6월 말까지 농사를 짓고 난 뒤에는 해외여행도 다니는 등 도시민 못지 않은 문화생활을 즐긴다.

한 씨는 “정성을 기울인 만큼 농사가 잘됐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며 “하지만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고, 다만 조금 늦을 뿐이란 걸 배워 나가는 것이 귀농 후 갖게 된 삶의 교훈이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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