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쳇바퀴 돌듯 경쟁 시달리던 아이들
- 자연 벗삼아 살게 하려 귀촌 결심
- 무농약·유기농 고추농사로 야심찬 출발
- 각종 병균에 노출돼 정착 초기엔 좌절
- 창녕생태귀농학교 4년간 공부 병행 뒤
- 대구·대전 등 청과시장서 ‘최상품’ 대접
- 실패담 토대로 귀농 준비생에 강의도
- “초보농꾼 1~2년 남의 농사서 배우고
- 큰 규모보다 작게 시작하길 권해”
- 주말엔 온 가족 풀 뽑기 등 함께 작업
- 일 끝나면 시내 나가 외식·영화감상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영산IC로 빠져 나온 후 지방도를 따라서 함안 쪽으로 달리다 보면 경남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을 만난다. 유리마을 인근에는 이름도 야릇한 ‘번개늪’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유리 고인돌’로 더 유명한 곳이다. 1962년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로 고인돌 유적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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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섭 씨 부부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고추하우스에서 고추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고추 줄 감기를 하고 있다. |
2014년께 이 같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리마을로 귀농한 한창섭(58) 씨는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한 씨는 길이 100m, 폭 10m 규모의 하우스 2동에서 풋고추를 생산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고추는 대구와 대전청과시장 중개인들로부터 최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예초기로 앞마당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첫 만남, 그의 이마에서 시작된 피가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이자 그는 별일 아니다는 듯 “예초기를 사용하다 튄 작은 돌이 이마를 때린 것 같다”고 웃는다.
한 씨의 귀농은 여느 귀농인과 사뭇 다른 이유에서 출발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원인에 대해 그는 “아이들에게 책 속에서 그림으로 보는 흙과 나무, 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자연을 체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향이 경남 의령인 한 씨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 영도로 이사를 한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운대에서 식당과 건축업 등 자영업을 하며 어렵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도시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끝없는 경쟁 속에서 하루에 몇 군데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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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섭 씨는 2014년 직접 설계해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 언덕에 30평 규모의 유럽형 주택을 지었다. |
결국 한 씨는 2010년 10월부터 귀농지를 찾기 시작했다. 반면 부인 권재숙(55) 씨의 반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한 씨는 “아내를 설득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자녀교육과 노후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에야 겨우 동의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곁에 있던 권 씨는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아이들 교육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결정을 잘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들었다.
한 씨는 교통, 생활환경, 의료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귀농지를 창녕으로 정했다. 창녕군 장마면 유리마을에 땅 210평을 매입했다. 전공을 살려 집을 설계하고 30평 규모의 집이 완공된 2014년 10월께 부산 아파트를 팔고는 가족 모두가 유리마을로 들어왔다.
한 씨는 귀농 후 가축농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선 수익을 빨리 볼 수 있는 고추농사로 방향을 틀었다. 고추하우스 2동을 5년간 임대료 6000만 원에 구입해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그에게 시련은 바로 다가왔다. 고추 모종 3300포기를 심고 무농약·유기농으로 시작한 첫해 고추는 각종 병균에 감염됐다. 그는 “뒤늦게 유기농을 포기하고 농약을 뿌렸지만 한 번 병든 고추나무 잎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 결국 그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패의 아픔은 3년 동안 이어졌다.
한 씨는 농사에 실패하는 동안에도 창녕군이 운영하는 창녕생태귀농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이곳에서 시설채소, 약초, 효소 등 다양한 공부를 했다.
이 같은 노력과 그동안 실패를 통해 얻어진 경험은 마침내 ‘최고의 고추’ 수확이라는 명예로 돌아왔다. 2017년부터 한 씨의 농장에서 매년 20t 가량 생산된 고추는 청과시장에서 최고의 품질로 대접받고 있다.
한 씨는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면서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운 정보대로 해 보고, 또 응용해서 나만의 농사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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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섭 씨가 고추하우스에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하우스를 덮고 있는 보온 가리개를 걷고 있다. |
그는 이제 창녕생태귀농학교에서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강의 내용은 주로 자신의 실패담이라고 소개했다. 한 씨는 “처음에는 큰 규모보다는 작게, 자신 농사보다 먼저 남 농사를 1~2년 도와주며,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난 뒤에 자신의 농사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부인 권 씨는 올해 유리마을 ‘의용소방대장’이 됐다. 권 씨는 “마을에 노인이 많다 보니 젊은 사람에게 일은 맡긴 것 같다”고 부끄러워했다. ‘이 마을에 들어온 뒤 크고 작은 일에 늘 앞장서 왔다’는 주민들의 평가에서 그 직함이 갖는 남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씨는 “이제 고 3, 중 3으로 훌쩍 자란 아이들이 농촌 생활을 즐기고 있어 너무 고맙다. 주말이면 가족 모두가 풀 뽑기, 필요없는 새 순을 따고 고추에 줄을 감는 등의 작업을 하고는 창원시내로 나가 외식도 즐기고 영화도 본다”면서 “좀더 일찍 농촌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매년 10월 초부터 다음 해 6월 말까지 농사를 짓고 난 뒤에는 해외여행도 다니는 등 도시민 못지 않은 문화생활을 즐긴다.
한 씨는 “정성을 기울인 만큼 농사가 잘됐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며 “하지만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고, 다만 조금 늦을 뿐이란 걸 배워 나가는 것이 귀농 후 갖게 된 삶의 교훈이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