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1112개 사회적경제기업
- 대부분 자금난에 허덕이지만
- 신보 특례보증대출 까다롭고
- 한도 금액도 적어 큰 도움 안돼
- 사회적경제기업 자체 기금 조성
- 민간·일반시민 지원 금액 보태고
- 공공기관과 자금 매칭이 이상적
- 서로 연결·중개하는 기관도 필요
- 필요한 자금 선순환 구조 조성
- 창출한 이윤 지역 내에 재투자
2011년 처음 문을 연 자활기업 A사. 건물 위생관리 분야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으며 한때 매출액은 10억 원, 직원은 60명을 넘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A사는 올해 들어 극심한 자금난에 봉착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에 따라 지난해 공공기관 청소 업무에 파견됐던 직원들이 모두 해당 기관에 직접 고용되면서 수입원이 크게 줄어든 데다 이들의 퇴직금까지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매출이 급감한 것은 물론이고 직원도 1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경영난에 시달리던 A사는 특례보증을 통해 3000만 원을 대출하려고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당했다. 대표자의 신용등급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A사 관계자는 “자활기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다. 대표자 역시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이거나 신용불량자 등 자산이 없고 신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사업 등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수익구조가 좋지 못하다. 그런데 이를 기준으로 대출 심사하면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돈 구하기 어려워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사회적경제기업은 일반적인 자본기업과 여러모로 다르다. 자본기업은 경영-노동자-소비자가 단절된 형태로, 최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경영자는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생산한 물품을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면 이익이 달성된다. 여기서 창출된 이익은 경영자와 주주가 나눈다.
반면 사회적경제 기업은 경영-노동자-소비자가 결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익 추구가 우선이 아니어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노동자의 임금도 높은 편이다. 세 주체가 모두 지역에 뿌리를 둬 기업이 창출한 부가 지역 내에서 순환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현재 부산에는 모두 1112개(지난해 말 기준) 사회적경제기업이 있다. 형태 별로 보면 협동조합이 739개로 가장 많고, 사회적기업 199개(예비사회적기업 포함), 자활기업 99개, 마을기업 75개 순이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윤에 앞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다보니 이들 기업은 상당수가 자금난을 겪는다. 초기 자본금을 조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립 3~5년 후 인건비 지원 등 정부 보조금이 완전히 끊기고 자력갱생하는 단계가 되면 또 한 번 자금난에 봉착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여러 공공기관에서 이들을 위한 대출·보증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신용보증재단을 통한 특례보증 제도다. 자산 등 담보물이 부족한 사회적경제기업이 쉽게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부산시나 정부가 대출 상품을 기획하고, 신용보증재단이 대신 보증을 서 주는 형태다. 28일 부산시의 설명을 종합하면 2018년~2019년 5월 17일까지 부산에서 시행된 사회적경제기업 관련 특례보증 실적은 31건, 10억300만 원이다.
문제는 대출 문턱이 여전히 높고 한도는 낮다는 점이다. 시 특례보증은 이자의 절반을 부산시에서 부담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총액이 10억 원으로 적은 데다 기업당 대출 한도가 3000만 원에 불과하다. 담보 비율이 낮게 책정되는 것도 대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 조합원 출자금의 경우 자산이 아닌 부채로 인식돼 담보가 될 수 없다. 이 같은 어려움 등으로 지난해 부산 특례보증 실적은 13건, 5억8200만 원에 그쳤다. 경남사회적경제활성화 민관추진단 정원각 단장은 “사회적경제기업이 회계 처리를 일반은행 대출 기준에 맞춰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 연 매출이 3000억 원에 달하는 아이쿱생협도 수익률은 0.01%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 단적인 예”라며 “사회적 가치를 정량화할 수 없으니 기업 가치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나 기금과 같은 형태보다는 보증 등을 통한 대출이 주류를 이뤄 인내자본으로서 역할이 미흡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례보증도 결국은 이자를 내고 갚아야 할 대출이어서 수익을 낼 때까지 참고 견디는 버팀목이 되기는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동환 본부장은 “지역 사회적 금융 시장에는 사회공헌 성격을 띤 기금이 별로 없고, 기금 운용 등 전문적으로 중개 역할을 할 지역의 기관도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의 과제는
견실한 기업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은 자본금인만큼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안전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양한 기관이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고 운용해 각 사회적경제기업의 상황에 맞게 장기간 지원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국 단위로 모아진 자금이 지역 사회적경제기업에도 고루 분배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우선 지자체나 정부가 보증하는 공공 자금 이외에 민간기금 활성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부산에서는 지난해에서야 부산지역 8개 공공기관이 뭉쳐 처음으로 사회적경제 지원기금(BEF)을 조성했다. 첫해 기금은 7억5000만 원으로 향후 5년간 50억 원을 확보해 사회적경제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같은 기금은 대출과 달리 무상으로 지원되거나 대출을 하더라도 무이자여서 인내자본 역할을 한다.
더불어 전국 단위 도매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끌어와 이를 운용하고, 지역 사회적경제기업과 중간 고리 역할을 할 중개 기관의 확보도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회적경제에 투자되는 기금을 운용하는 중개기관(민간 소매금융 기관)은 모두 16개(융자 전문 7곳, 투자 전문 9곳)다. 그러나 국내 16개 소매 금융기관 전체가 서울에 몰려 있다. 서울과 달리 부산을 비롯한 지역에는 사회적경제기업 투자 경험을 가진 민간주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천대 양준호(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부산참여연대가 주최한 ‘사회적경제를 통한 도시재생, 그리고 사회적금융’ 콜로키움에서 “도시 재생이나 지역 활성화를 위한 금융 중개를 일반 금융이 맡으면 저소득층에는 자금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정부기관이 공적 자금을 투자할 때도 전문성이 부족해 부실채권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도 자금 공급과 수요 사이에 전문성을 가진 민간 사회적금융(자금 중개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돼, 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자조기금을 확대 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부 자금을 조달하기 이전에 사회적경제기업 당사자들이 기금을 조성해 당장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환 본부장은 “당사자 기금 위에 민간 기금이 얹어지고, 그 위에 일반 시민의 지원금이 더해지며, 마지막으로 지자체 등 공공기관의 자금이 매칭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꿈틀대는 지역 사회적 금융
올해 초 경남에서는 경남사회연대경제사회적협동조합이 결성됐다. 이름 그대로 지역의 부 창출 등을 이루는 사회연대경제를 실현하려고 조직되었으며, 사회적기업 6곳과 자활기업 1곳, 마을기업 2곳, 협동조합 5곳이 각각 500만 원을 내놓고 개인이 낸 1000만 원을 보태 모두 8000만 원 기금을 모아 출범했다. 이 조합이 사회적 금융 분야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우선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 당사자가 주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업 등이 내놓은 기금이 아니라 사회적금융 수혜자인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자조기금의 성격이 강하다.
또 하나는 전국에서 모이는 사회적금융 자금과 지역 사회적경제조직과의 연결고리인 중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조합은 우선 지난해 출범한 사회적 금융 도매금융 성격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과 매칭을 논의하고 있으며, 방법으로는 서울에 위치한 중개기관(민간 소매금융 기관) 지사를 유치하는 방안과 자금운용사를 직접 설립하는 방법 등을 두루 고민하고 있다.
조합 상임이사를 겸임한 정원각 단장은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와 중개기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등 도매금융기관, 경남지역 협의체 기금 등이 고루 참여해 리스크를 분담하는 자금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인내자본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은 투자 불확실성이 크고 투자자금 회수 기간이 긴 프로젝트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자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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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송이 박호걸 기자 songya@kookje.co.kr
공동기획: 국제신문·부산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