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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퍼스트…연대경제를 찾아서 <5> 지역순환경제 열쇠 앵커기관

공공발주 때 관내 제품 우선 구매… 지역경제 활력 ‘마중물’

  • 하송이 박호걸 기자
  •  |   입력 : 2019-06-18 19:33:20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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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교육청·기초자치단체
- 공공구매액 연간 1조5000억
- 지역 제품 이용 74% 달하지만
- 실상은 외지 기업 상품도 포함

- 의회·경찰청·대학·병원 등
- 지역에 뿌리 둔 기관이 출자
-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만들고
- 생산된 물품 조달 높여가면
- 재화유출 막고 지역선 돈 순환

- ‘앵커’ 역할 맡을 기관 발굴하고
- 지역조달 사회적 합의도 필요
- 최저가 중심 낙찰방식 벗어나
- 공공이익 사회적 가치도 고려를

10년 전 영국 랭커셔주의 주도(州都) 프레스턴(Preston)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탈산업화 영향으로 일자리가 줄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인구도 감소해 더는 버티기 힘든 지경에 달했다. 2011년 지방선거로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기존 방식으로는 고사 직전인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기업이 아닌, 대학 병원 등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관으로 눈을 돌렸다. 지역성을 갖추고 고용과 구매력이 높은 이들 기관을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시청이나 경찰청, 교육청 등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지역 대학과 병원도 앵커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부산의 대표적인 대형 병원인 부산대학교병원 전경. 부산대학교병원제공
이에 시장이 직접 나서 기관을 설득해 주의회 경찰청 프레스턴대학 등 6개 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시는 기관 조달 담당자 모임을 만들고 지역 구매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공유하고 공부했다. 또 해당 기관에 용역이나 재화를 조달하는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하고 종업원에게는 생활임금 수준의 소득을 제공하기도 했다. 참여 기관은 지역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중소기업의 제품을 우선구매하는 방식 등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시도는 지역 경제 선순환 구조를 불러왔다. 사업 이전까지만 해도 7개 기관의 연간 조달 지출 1조8000억 원 중 프레스턴 내 조달 금액은 5%에 불과했으나 사업 시작 4년 만에 18%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프레스턴이 위치한 랭커셔주의 비중도 같은 기간 39%에서 80%로 급상승했다. 이전엔 지출의 61%가 외부로 유출됐으나 지금은 그 비중이 20%로 줄어든 것이다.

■앵커기관 돈, 부산에 돌고 있나

앵커기관은 조달 등을 통해 많은 이를 고용하고 많은 돈을 쓰며, 닻(anchor)을 내린 것처럼 지역 내에서 쉽사리 이탈할 수 없는 기관을 말한다. 대표적인 앵커기관은 지자체나 정부 기관이다. 부산시, 부산시교육청, 부산경찰청을 포함해 소속 공공기관이나 출자·출연기관도 앵커기관에 해당한다. 여기에 대학, 대형병원 등도 일반 기업과 달리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앵커기관으로 볼 수 있다.

앵커기관의 구매 능력은 굉장히 크다. 부산시만 보더라도 지난해 공공구매(물품구매, 공사발주, 용역 등 포함)로 5240억 원을 썼고, 부산시교육청도 1861억 원을 지출했다. 기장군 1186억 원, 강서구 716억 원, 해운대구 673억 원 등 16개 구·군도 지난해 7827억 원을 썼다. 한 해 동안 부산시 부산교육청과 기초단체만 합쳐도 약 1조5000억 원을 사용한 셈이다.

부산시의 지난해 공공구매 추진실적을 보면 부산 지자체(부산시, 16개 구·군 등)가 사용한 1조3068억 원 가운데 9678억 원이 지역 구매로 분류됐다. 총구매액의 74.1%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기에 통계의 함정이 숨어 있다. ‘판매처 주소’를 기준으로 지역업체와 타 지역 업체를 구분하다보니 다른 지역에 본사가 있더라도 부산에 영업점 대리점이 있으면 부산 제품으로 집계된다. 예를 들어 부산 소재 대기업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서 구매를 해도 ‘지역 제품 구매 실적’으로 잡힌다.

부산시의회 곽동혁(수영2) 의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물품을 부산으로 가져와 팔더라도 ‘지역 제품’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역제품 구매 비율을 진짜 지역 제품의 판매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제 지역에 도움이 되도록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이 비중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부산시는 지역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흉내’라도 내는 편이다. 부산시 박경휘 계약팀장은 “조달청에 맡기면 우리는 편하다. 그러나 0.38~1%의 수수료도 발생하고 지역업체 우선 계약을 위해 90% 이상을 시에서 직접 계약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부산시교육청은 법으로 의무화된 중소·여성·장애인기업제품만 공공 구매할 뿐 지역 제품에 대한 실적은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공공입찰 참여 경험이 많은 사업가 A 씨는 “조달청 계약은 국가를 당사자로 한 계약이라 지역 안배가 어려운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부산시교육청은 감사 지적사항을 피하기 위해 조달청 계약을 많이 해 지역 업체 참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병원·대학도 참여해야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앵커기관을 통해 추락하는 도시 경제를 반등시킨 미국 클리블랜드시다. 클리블랜드시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5대 도시로 손꼽혔다. 하지만 제조업의 황금기가 끝나자 공장은 외부로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도시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대규모 자금 투자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지역경제는 앵커기관의 힘을 빌리면서 탈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클리블랜드시는 관내 대학, 대형 병원과 협력해 저소득 주민을 주축으로 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에버그린협동조합으로 이름 붙은 이 단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역할을 수행했다. 세탁협동조합은 지역 내 병원과 호텔에서 나오는 빨랫감을 세탁하고, 에너지협동조합은 대학과 병원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판매했다. 또 하나의 협동조합은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앵커기관과 도·소매업소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7년 대학 병원 등 클리블랜드 3대 앵커기관의 총구매액 4조5000억 원 중 12%(5400억 원)이 클리블랜드 내에서 쓰였다. 2016년 관내 구매액은 5%였다.

부산에도 이 같은 앵커기관이 적지않다. 대학병원만 해도 5곳, 4년제 대학도 15개다. 다른경제협동조합 남기수 앵커팀장은 “예를 들어 부산대병원(양산부산대병원 포함)에서 나오는 세탁 물량만 보면 한 해 26억 원이다. 병상 수로 추산한 결과 부산 중·대형 병원 세탁 물량만 한해 3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남 팀장은 “그러나 부산에는 각종 규제 탓에 세탁 공장이 없다. 지역 앵커기관의 일감이 모두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이런 물량을 부산에 돌릴 수 있으면 앵커기관 입장에서는 물류비용이 줄고, 지역에는 돈이 돌아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에 뿌리 내리려면

국내의 공공조달 시장은 GDP(국내총생산)의 10~15% 수준인 123조 원 규모다. 이 때문에 공공 조달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과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다. 공공 조달을 통해 사회적 경제를 육성하고 지역 경제 순환, 취약계층 고용 기회 증대 등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경제협동조합 전중근 이사장은 “우리 공공조달 체계는 대체로 최저가 중심의 낙찰 방식이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다”며 “서울처럼 조례를 만들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항목으로 하면 대기업에 유리한 가격 경쟁력보다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앵커기관과 연계한 사업을 부산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앵커기관의 출자로 사회적기업 혹은 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들로부터 구매비율을 높여가려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주체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철저한 기초조사도 중요하다. 지역에서 앵커기관의 역할을 할 만한 기관을 발굴해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의 고용 현황, 지역 조달·구매액을 파악해야 향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전 이사장은 “해당 앵커기관 고위층의 확고한 의지와 이를 한데 묶어내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상부의 지속적인 리더십 없이는 현장 실무진이 힘을 갖고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부산시장 중심으로 강력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연구하고 실행할 수 별도의 기관을 만드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송이 박호걸 기자

※ 공동기획: 국제신문·부산참여연대

◇ 2018년 부산시,구·군 공공구매 실적
 (자료:부산시)

기관

총구매액

지역제품
 구매액

비율

부산시

5240억 원

4102억 원

74.0%

중구

244억 원

244억 원

100%

강서구

716억 원

710억 원

99.1%

사상구

437억 원

418억 원

95.5%

연제구

271억 원

257억 원

94.5%

사하구

661억 원

612억 원

92.5%

수영구

378억 원

336억 원

88.9%

부산진구

469억 원

393억 원

83.7%

북구

340억 원

283억 원

83.3%

서구

332억 원

271억 원

81.5%

동구

276억 원

222억 원

80.4%

동래구

320억 원

250억 원

78.0%

영도구

459억 원

335억 원

73.0%

해운대구

673억 원

485억 원

72.0%

남구

405억 원

228억 원

56.3%

기장군

1186억 원

537억 원

45.2%

금정구

651억 원

288억 원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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