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 고분군에서 안락교차로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만나는 온천천 시민공원. 온천천 연안교 쪽 낙민파출소 앞에 장중한 비석이 서 있다. 이섭교비(利涉橋碑)다. 다리 이름은 한자 그대로 따지면 ‘다리를 건너는 데 이롭게 한다’는 뜻. 이에 관한 사유가 비석에 적혀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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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천 시민공원 연안교 쪽 낙민파출소 앞에 서 있는 이섭교비(利涉橋碑). |
‘(…) 나무판으로 다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썩어 버렸다. 해마다 고쳐 만들었으니 실로 백성에게는 큰 병폐가 됐다. 이 다리를 넓히는 역사를 하는 것이 다 옳다고 하였으나, 생각만 있었지 시행하지 못했다. 갑술년(1634년, 인조 12) 겨울에 부(동래부) 안의 몇 사람이 앞사람들의 뜻을 이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재물을 거두었다. 돌을 옮기는 부역은 주민들이 스스로 응하니, 다음 해 봄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날 이루지 못한 뜻을 불과 며칠 만에 성취한 것이다. (…) 강물이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고 나루가 넘쳐도 수레바퀴는 젖지 않는 것이니…’.
동래(동래읍성 남문)와 좌수영을 연결했던 이섭교는 긴요한 교통로였다. 그런 것이 나무다리였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돌다리를 놓아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다가 마침내 돌다리를 놓게 됐으니 잔치를 벌이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비석에는 돌다리를 놓자고 팔을 걷어붙인 사람과 다리를 완성한 이의 공을 어찌 잊겠느냐고 적었다. 또 기부금을 낼 형편이 안 되면 돌덩이를 가져오는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돌다리를 만들었다는 ‘참여와 울력’도 눈길을 끈다. 다리 건설에 협력한 각 면의 계는 동면 10계, 서면 6계, 북면 8계, 남촌 9계, 동평면 13계, 사천면 9계, 읍내면 14계 등 총 69계라고 비문에 나오는데, 사실상 동래부 전체가 동참한 대역사였다.
이섭교는 4개의 홍예(무지개)가 있는 돌다리였다. 안경 2개의 모양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는 훗날 자취를 감추었고, 비석마저 1930년께 지금의 동래 금강공원인 일본인 유력자의 별장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겪는다. 동래부의 자존심과 같던 독진대아문, 내주축성비 역시 같은 신세였다. 이들은 2012년에야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오광수 기자